미래 내다보며 장기적인 계획 수립해 복원 ‘나라 평성궁’

일본 나라시의 핵심유적 복원

이상욱 기자 / 2024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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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라시대 궁궐 내 중심 건축물인 ‘대극전’. 지난 2010년 복원됐다.

일본 나라시의 헤이조쿄(平城京)는 710년부터 78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헤이조쿄의 도성 영역은 남북 4.8km, 동서 4.3km의 남북으로 긴 방형을 띤다. 이곳은 지난 1998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헤이조쿄는 일본 고대 왕궁인 헤이조큐(平城宮·평성궁), 주작문, 동원정원 등 유적을 포함한 방대한 왕궁터다. 이 왕궁터에서 발굴·복원된 문화유산들은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주 월성 등 핵심유적 발굴·복원 사업에서 참고해야 할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 당국은 이곳 유적의 발굴과 복원을 위해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며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실천해왔다. 헤이조큐 옆에 자리한 나라문화재연구소는 도성과 왕궁터에 대한 방대한 역사적 근거를 하나씩 쌓아가며 지난 1952년 설립 이후부터 기획발굴을 해오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왕궁터에 대한 첫 조사는 19세기 중반에 이뤄졌고, 이후 주춤하던 학술발굴조사는 1950년대 본격화됐다. 대규모 발굴을 시작한 계기는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시작된 개발과 관련 깊다. 먼저 1953년 11월 헤이조큐 동쪽 부지에 미군 캠프의 요청으로 농로 확장공사 중 대형주혈 등 대규모의 유구가 발견됐다.

1959년에는 당시 사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부지에 킨키철도주식회사의 조차장 건설 소식이 전해지자 학자와 민간인 등에 의해 전국적인 헤이조큐 보존운동이 전개됐다. 이어 논의 끝에 1963년 헤이조큐 전역이 사적으로 지정되고, 이곳의 보존과 발굴조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64년엔 국도24호선 우회도로 건설계획이 입안돼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동원이 발견됐다. 이 같이 큼직한 이슈를 거치면서 헤이조큐의 보존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 본격적인 발굴이 진행됐다.

이즈음 나라문화재연구소는 1963년 헤이조큐 발굴조사부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을 위한 계획과 시행은 치밀하게 이뤄졌다. 20세기 초 헤이조큐 전체 유적군 분포지도를 작성했고, 1980년대에는 헤이조큐를 포함한 도읍 전체 유적들의 항공사진과 유물지도화 작업도 마쳤다. 지도 하나로 전체 발굴 현황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작업과 발굴, 고증연구 등을 거쳐 헤이조큐 내에는 1990년대 이래 남쪽 정문 주작문을 비롯해 관청터, 동원터 등이 복원됐다. 이들 유적은 50~60년대 그 실체를 확인하고, 수차례 가상 모형실험 등을 하면서 10~20년간의 복원 과정을 거쳤다. 2010년 복원된 정전인 대극전의 경우 원래 유적터 흔적을 보존하고 그 위쪽에 기단을 만들었으며, 지진에 대비한 내진 설계까지 갖췄다.

↑↑ 지난 2022년 복원된 대극문과 2026년 완공 예정인 동루.

2022년엔 주작문과 대극전 사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대극문(大極門)을 복원했다.
발굴과 복원 방식을 두고 학계와 주민들 간 논의도 수십년간 끊임없이 이뤄졌다. 1852년 헤이조쿄 유적의 복원연구가 처음 진행된 이래 메이지시대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 기다 사다키치 등의 논쟁이 있었고, 숱한 주민과 전문가 토론회 등을 통해 궁궐터의 복원 범위와 활용 등에 대한 원칙을 공유해왔다. 또 어떠한 경우든 발굴조사를 통해 얻어진 유적 정보는 조속히 상세하게 공개돼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주민들과 소통해왔다.

나라문화재연구소 우치다 카즈노부(井上 雅博) 박사는 “과거에는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렸고, 지금은 복원 현장을 공개하고, 동영상을 제작해 공개하는 등 소통을 지속해오고 있다”면서 “헤이조쿄는 50~100년 단위의 장기 발굴계획을 수립·추진해 세계유산 등재 전 이미 복원 계획이 수립됐고, 이들 계획을 일괄적으로 추진해 현재의 복원까지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 나라문화재연구소 우치다 카즈노부 박사


나라시대 중심 건축물 대극전 복원

나라시대 궁궐의 중심 건축물인 대극전은 지난 2010년 4월 복원을 완료했다. 대극전은 일본 천황의 즉위 등 국가의식을 행할 때 천황이 출어(出御)하는 고대 왕궁의 중심 시설이다. 현재 복원된 대극전은 제1차 대극전으로 나라시대 전반의 건물이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대극전은 1970년, 1971년, 1980년 발굴조사를 실시한 뒤 1982년 복원 초안을 완성했다. 1992년부터 대극전 복원 연구에 들어가 1/100, 1/10 모형을 제작했고, 기본 설계와 시설 설계 등을 거쳐 2001년 복원공사를 시작해 2010년 준공했다.

복원된 대극전은 정면 44m, 측면 20m, 높이 27m로 평성궁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나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대극전 복원은 유구와 기와, 석재 등 발굴된 유물이 가장 큰 근거가 됐다. 이를 토대로 기단 형태와 건물의 평면, 규모를 고증연구를 통해 복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문헌 사료나 회화 자료도 근거가 됐다는 것.

다만, 목조건물은 형태를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한정돼있어, 일본 내 현존하는 고대 건축물을 연구해 복원된 기단과 건물 평면에 일치하는 건물을 추정해 복원했다. 특히 중층 건축의 기본 구조는 현재 유일한 중층인 호류지(法隆寺, 법륭사) 금당을 토대로 했고, 건물의 공포나 처마 등의 형태는 시대가 비슷한 야쿠시지 동탑을 근거로 했다.

연구소가 대극전 건물의 근거로 삼은 ‘호류지’는 나라현에 있는 고찰로, 일본 최고(最古)의 목조건축물이다.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의 아들 쇼토쿠태자(聖德太子)가 601∼607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대극전 복원에는 현존하는 고대 건축의 구조, 의장, 기법을 철저히 재분석하고, 기술의 원리를 지키면서 유구에 맞는 형태를 갖춰나갔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설명이다.


↑↑ 헤이조쿄 정문인 주작문은 지난 1998년 복원됐다.


평성궁 위용 짐작케하는 주작문 복원

나라시의 평성궁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1998년 복원된 주작문이다. 평성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주작문은 폭 25m. 측면 10m, 높이 22m 규모로, 나라시대 당시 평성궁의 위용을 짐작케하고 있다. 주작문의 위치와 규모는 1964년 발굴조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후 수차례의 조사를 거쳐 1989년 복원·정비를 앞두고 전면 재발굴해 기둥 중심 간 거리 5m, 정면 5칸(약 25m), 측면 2칸(약 10m)임을 밝혀냈다.

주작문의 복원은 반다이나곤에코토바(伴大納言絵詞)에 그려진 헤이안궁의 주작문이 이중문인 점을 근거로 했다. 또 주작문의 기본 구조는 호류지 중문을, 주작문의 부재 크기와 비례 관계 등은 나라시에 있는 도다이지 데가이몬(東大寺 轉害門·전해문) 등을 참고했다. 또 주작문은 나라시대 전기의 건축물로, 양식은 같은 연대인 야쿠시지 동탑의 기법과 의장을 참고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연회의 의식 행해진 ‘동원정원’ 복원

평성궁 동쪽에 위치한 동원정원은 10여년에 걸친 발굴과 고증연구를 거쳐 지난 1995년 10월 복원됐다. 동원정원의 특징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 연못에는 물가를 따라 못 아래로 큰 옥석을 띠 모양으로 빈틈없이 깔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후기는 못 아래부터 기슭까지 전면에 걸쳐 자갈돌을 깐 얕은 연못 모습이다. 연회와 의식 등이 행해진 장소로 이용된 동원정원에는 중앙건물과 북동건물, 누각, 정문, 평교, 반교 등 목조 다리 등이 복원됐다. 이들 건물 역시 호류지 등의 고대 건축물을 근거로 삼았다.


↑↑ 니시다 노리코 상석연구원


미래 세대에 물려줄 프로젝트 연구도 병행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 헤이조쿄는 현재까지도 발굴과 고증,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26년 복원 예정인 동루(東樓)에 이어 향후 서루(西樓)와 성벽 및 회랑(回廊) 등의 복원도 추진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당국은 복원된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체계적인 유지 관리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나라문화재연구소 니시다 노리코(西田 紀子) 상석연구원은 “근래 들어 복원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작문 등 복원 후 상당 시간이 지난 문화유산들을 보존하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면서 “복원 유산들을 유지하고, 미래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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