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자신을 모방하는가?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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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철 교수
동국대 파라미타 칼리지
지난 3월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흥미롭게도 휴머노이드(인간의 외모를 닮은) 로봇이다. 인간을 대신해서 하역을 담당하는 로봇인데, 물류 창고에서 무거운 짐을 옮기다 힘없이 쓰러졌다고 화제다. 개발 목적이 아무리 그럴지라도 오랜 시간 쉬지도 않고 작업하다 넘어졌으니 분명 ‘과로’로 쓰러진 셈이다. 하지만 놀랍지 않은가! 쇠로 만든 로봇에게 기어이 감정을 부여하는 인간의 집요한 습관이 말이다.

소프트웨어나 센서의 오류에서 벌어진 단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지만 우린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영상을 보면 들고 있던 무거운 짐과 함께 스르륵 쓰러지는 로봇이 정말이지 짠하게 보인다. 나흘 동안을 그것도 20시간 이상을 쉬지도 않고 부려 먹을 때 알아봤다, 아이고 못된 인간들, 삐쩍(?) 마른 모습에 공감되는 부분도 없진 않지만, 대상을 가리지 않고 감정을 이입하는 인간의 관계 지향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문득 ‘가장 웃기는 야생동물 사진전(best of the Comedy Wildlife Photo Awards)’에 출품한 어느 작품이 떠오른다. 미국의 사진작가 디나 스페인손은 남극 어느 섬에서 턱끈펭귄 무리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연히 세 마리의 펭귄들이 자연스레 앵글 속으로 들어왔고 작가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작품에는 날개가 서로 겹쳐 보였을 뿐인데 마치 서로 손을 잡고 꽃놀이라도 가는지 두 펭귄이 보인다. 사귄 지 일주일 된 아주 따끈따끈(?)한 커플이다. 근데 아뿔싸, 커플 세 발짝 정도 뒤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한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축 처진 날개를 보니 남겨진 전 남자 친구인 듯 처량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저 팔짱은 내가 끼고 있었는데!’ 하는 질투와 분노가 느껴진다. 기발한 작품들을 보면서 점점 단단해지는 사실 하나. ‘인간은 인간의 관점에서 모든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가까운 미래엔 주변에 더 많은 휴머노이드형 로봇을 보게 될 것이다. 4족이나 발통 달린 로봇이 넘어질 염려도 없고 효율적이지만 인간 닮은 이족(二足) 로봇이 우리 주변을 지키는 건 당연해 보인다. 우리에게 중요한 덕목은 공감이기 때문이다. 성능 좋은 로봇청소기(줄여서 로청)를 ‘로청 이모’라고 부른 지도 꽤 됐다. 집 안 구석구석을 가사 도우미 이상으로 쓸고 닦는다고 청소기에 이모님이란 훈장을 부여한 거다, 무정물도 인척이 될 수 있다는 상징적 사례다. 집 안에서의 로봇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야망가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자동차 생산 현장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는 소위 ‘만능 이모님’ 휴머노이드를 목표로 교육 중이다. 인간 지능과 유사한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 시스템을 장착한 로봇을 대상으로 말이다. 방식은 그러나 좀 촌스럽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엄청난 양의 행동 데이터를 하나하나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그러나 만능 이모님 로봇과 일상에서 교감하려면 꼭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게 손가락 제어다. 휴머노이드형 로봇의 손가락 제어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 중이지만 아직 멀었다. 로봇 손의 움직임은 유연하지도 않고, 제어 속도도 사람 손가락에 비해 엄청 느리다. 특히 손가락 힘 조절은 그렇게 어렵단다. 테슬라(옵티머스 2세대)의 경우 엄지와 검지로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아기 얼굴을 ‘장난치듯 어루만져’ 재우는 정도의 고급 미션은 언감생심이다.

더 큰 문제는 인간처럼 표정 짓기 아닐까 싶다. 희로애락 인간의 모든 감정의 보고(寶庫)로서 얼굴은 로봇 공학이 반드시 정복해야 할 극점이다. 눈에 띄는 연구 성과라면 일본 동경대의 시도다. 로봇 얼굴(아크릴 기반 수지로 만든)에 인간의 피부 세포를 부착한 것인데, 씨~익 웃을 때 보면 광대가 올라가는 인간의 얼굴을 따라한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웃고 있는 핑크빛 얼굴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비웃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음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얼굴을 얼(정신의 줏대)의 꼴(모양)이라고 했겠나. 약 43개의 근육과 14개의 뼈로 만들어내는 얼굴의 다양한 감정 처리는 인간 블랙박스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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