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는 사립유치원?

식기 세척 예산 사립유치원만 無

이필혁 기자 / 2024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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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로 자녀들을 사립유치원에 보내는 A 씨는 아이들이 차별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한다. 어린이집 등 또래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 지원되는 식기 세척 예산이 사립유치원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A 씨는 매일 식판을 보내고 씻어지지 않은 식기를 볼 때마다 씻는 귀찮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맞벌이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이에게 미안한데 사립유치원만 식기 세척 비용이 제외되면서 차별받는 것 같아 더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1만원이라는 예산이 없다며 지원하지 않는 지자체와 교육청을 보며 과연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 맞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 식기 세척 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아이들을 지원하는 교육청과 경주시는 근거와 예산 부족을 들며 차일피일 미뤄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는 경주시 정책이 무색해지고 있다.

경주시와 경주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교육지원청에서 요청한 사립유치원 식기 세척 비용 예산이 2024년도 추경 예산에서 제외됐다.

식판 세척 지원 사업은 2024학년도 지역 내 만 3세~5세 사립유치원 원아를 대상으로 식기 세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예산은 원아 1220명을 대상으로 원아 당 월 1만원씩, 8개월 지원하는 것으로 예산은 9760만원에 불과했다. 
많지 않은 예산에도 경주시는 2024년도 추경에서 예산 부족을 들며 끝내 지원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추경은 우선순위에 따라 편성되며 예산 부족으로 지원되지 않았다”면서 “하반기 또는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만 빠진 식기 세척 사업


경주시 식판 세척 지원 사업은 어린이집에만 지원되고 있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급식시설이 없어 개개인이 가정에서 세척한 식기를 들고 다니며 사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유해 세균이나 곰팡이 발생으로 위생 문제가 불거져 왔다. 반면 공립 유치원은 초등학교 급식시설을 함께 이용하거나 단독 급식시설을 구비해 위생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

급식 위생 문제 예방을 위해 경주시는 지난해 7월부터 사립유치원을 제외한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예산을 지원했다. 전체 108개 어린이집 가운데 직장어린이집과 가정어린이집 등 4곳을 제외한 104곳에 사업비 약 5억4000여만원의 예산이 마련됐다. 올해는 상반기 동안 어린이집 원아 3700명을 대상으로 약 2억1700만원의 예산이 집행된 상태다. 경주시가 어린이집 예산을 지원하고 사립유치원을 제외한 것은 주무 부처가 달라서다. 현행 어린이집은 경주시(보건복지부), 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이기 때문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으로 경주시가 지원할 수 없다”면서 “어린이집 식기 세척 예산도 지난해 처음 시행됐다”고 말했다.

사립유치원을 관리하는 교육청은 예산 자체가 없다며 지원을 꺼리고 있다.

경주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이 맞지만 식기 세척 관련한 예산 자체가 없다”면서 “경주시만 유치원 식기 세척 예산을 마련하면 도내 지원청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립유치원장과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해 경주시에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예산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지원청이 요청한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은 결국 예산 문제로 추경에서 제외됐다.


추경 예산은 1680억원


경주시는 유치원 식기 세척 사업에 대해 예산이 부족하다며 추경에서 제외했다. 경주시 2024년도 추경 1회 예산은 일반회계와 기타 특별회계, 공기업특별회계 등 약 1680억원이 증액됐다. 아이들을 위해 쓰일 식기 세척 예산은 추경의 1/1680도에도 못 미치는 9760만원이 없어 예산이 편성되지 못한 셈이다.

표면적으로 예산 부족과 우선순위에 밀려 식기 세척 지원이 무산됐지만 두 기관의 의지가 있었다면 예산 통과도 가능했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교육 관계자는 “교육청 예산이 없다면 올해 본 예산에 반영되도록 경주시에 요청했어야 한다. 하지만 본 예산 신청 시기를 놓쳐 추경으로 신청돼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주시도 내년 유보통합정책(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하나로 통합하는 계획)이 시행되면 예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영천은 이미 시행 중, 안성시는 100% 지원

사립유치원 식기 세척 사업은 인근 지자체에서 발 빠르게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영천시는 지난 4월부터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식기 세척 이용료를 지원하고 있다. 영천시 교육경비 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영천지역자활센터 맘편한 식판사업단과 연계해 사립 유치원 원아 1인당 월 이용료 1만 원 중 80%인 8000원을 보조하고 있다.
 
경기 안성시는 식기 소독비를 100% 지원하고 있다. 안성시는 급식 식판을 가정에서 세척한 후 다음 날 다시 유치원으로 가져가는 과정에서 유해 세균과 곰팡이 발생 등 위생 문제 우려된다며 사립유치원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시 예산 타 지자체 업체로 유출, 모범 업체 선정 필요해

사립유치원 식기세척 예산 미반영에 따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주시 예산으로 집행되는 식기 세척 예산이 다른 지역 민간업체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부 민간 업체의 공격적 영업이 자칫 식판의 비위생적 관리로 이어질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주시는 사립유치원을 제외한 어린이집 104곳에 원아 식기 세척비로 약 5억4000여만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며 올해 2억1700만원을 사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어린이집들이 기존 계약 유지 등의 이유로 안정성이 공인된 지역 식기 세척 업체를 외면한 채 다른 지역 민간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민간 식기 세척 업체의 가장 큰 문제는 위생이다. 식기 세척 업체는 식품위생법에서 규정한 식품 관련 업체로 보기 어려워 위생 점검 대상에 제외됐다. 이런 이유로 식기 세척 업체들은 ‘잠재적 위생 관리 사각지대’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어린이집 학부모는 “식판 수거 차량이 비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면서 “식기도 안전한 환경에도 세척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식판 대여 및 세척 사업을 운영하는 경주지역자활센터 정희근 센터장은 “식기 배송에서 세척, 소독, 살균, 건조, 진공 포장 등 위생, 청결 처리 과정을 거치면 사실상 돈이 남기 힘든 구조가 세척 사업이다”면서 “자활센터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기에 위생과 청결 유지가 가능하다. 민간업체가 위생과 청결이 담보될지는 미지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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