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아들이 읽는 목월의 시

박목월과 박동규 부자(父子)간 문학적 교감

경주신문 기자 / 2024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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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리목월문학관에서 강의하는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박목월 시인의 미공개 작품이 동리목월문학관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되었다. 앞서 박목월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평생 시인의 아들로 살아온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강의 중간중간에 목월의 시를 읽으며 진행했다. 1939년생인 팔순 중반의 교수가 눈시울을 적시며 시를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감동적이었다.

미공개 유작 작품들은 다 읽어보지 못했기에 다음 기회에 미루기로 한다. 박동규 교수가 읽은 아버지 목월의 시를 고향과 가족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향 사랑

박동규 교수는 아버지의 남다른 고향 사랑에 대해 많은 부분을 언급했다.

경주는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 동시에 목월 시의 정신적 원형이며 시의 전부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미공개 시들을 경주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이유이며 당연한 일로 설명했다. 아버지 시는 경주의 산과 들 특히 모량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목월의 시 「논두렁길」이라는 시를 이야기했다. 밑 빠진 신발로 논두렁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조합 근무할 적 동그라미 하나를 잘못 보고 돈을 잘못 내어주는 바람에 몇 년에 걸쳐 분할해서 변상해야 한 아픔이 있었다. 업무보다는 시에 골몰했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작인 「나그네」 또한 어려운 시대에 팔자 좋은 시라고 폄하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디론가 가고 싶어 하는 열망과 못해 본 것에 대한 그림을 그리려는 것으로 이버지를 이해했다. 고향은 시의 시작점이며 고향에 대한 노래는 세월이 지나도 이어지며 계속 시로 태어났다.

목월은 고향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면 정중히 모셨다고 한다. 흰 두루마기 입은 고향의 친구분들이 서울로 올라오면 아들인 본인에게 덕수궁으로 경복궁으로 안내자 역할과 저녁 식사까지 대접하는 역할까지 맡겼다고 했다. 고향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극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고향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 몇 편을 인용했다. 그 가운데 목월의 시 「산」 이란 제목의 시 몇 구절이다.


건천 고향
역에 내리자,
눈길이 산으로 먼저 간다.
(중략)
내일은 어머니 모시고 성묘를 가야겠다
종일 눈길이 가는 산
누구의 얼굴보다 친한
그 산의 구름
그 산을 적시는 구름 그림자
- 시 「산」 일부


위 시에서 보듯 고향에 내려오면 가정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산이었다. 선조들이 묻혀있고 자신이 묻히고 싶은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슷한 듯 또 다른 시 「고향에서」를 읽으면 왜 눈길이 산으로 갔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팔목 시계를 풀어놓듯
며칠 고향에서 지냈다.
옛 친구며
친구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도 함께하고
선산에도 가보고
나의 묏자리를 생각하며
산도 둘러보았다.
- 시 「고향에서」 일부


위 시에서는 알 수 있듯 목월은 고향 선산에 묻히고 싶었지만, 시인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 공원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 박 교수는 아버지 장례와 장지 선정에 관해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모친인 유익순 여사 또한 고향인 경주에 모시고자 하였으나, 아버지 주변 시인들의 권유로 부득이 경기도 용인에 장지를 마련했다고 했다. 고향 땅에 못 모신 아쉬움을 대신해서 800여평의 적지 않은 묘역을 조성했다.

이후 박 교수는 201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곳에다 목월의 시비 8개를 세워 ‘박목월 문학정원’을 꾸며 오가는 이에게 볼거리와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이 다녀가기도 하는 곳이다.

목월의 자작시 해설집 「보랏빛 소묘」를 읽고 시인을 꿈꾸었던 나태주 시인은 시의 정원 개원식에 맞춰 「100년, 아버지」라는 헌시로 아래와 같이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짧지 않은 한국시사 100년에서/ 오롯이 아버지 같은 시인 한 분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서슴없이 대는 이름, 박목월 (이하 생략)

박목월은 박동규 교수의 아버지, 즉 한 사람의 아버지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시인의 아버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목월 생가를 방문한 대구의 시 낭송가 선생님들.


가족 사랑

목월의 가족사랑은 유별나며 가족에 관한 멋진 시들이 많다.



고모요/ 막내 고모여/ 화천골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는데 사람평생 잘 살믄 별난기요/ 그렁/ 저렁 / 살믄 사는 보람도 서고, / 아들이 컸잖는기요 / 저 덩치 보이소/ 며누리 보고 손자보믄/ 사람 일 다 하는거로 / 유달리 넓직한 / 경상도 뽕잎에는/ 밤이슬은 왜 이리 굵은기요 - 시 「 노래 」 일부

이 시는 화천에 사는 막내 고모에 대한 시다. 지금은 경주역 앞에 고층아파트 들어서고 있는 이곳으로 시집가서 고생하며 사는 고모에 대한 애잔한 심정을 유달리 넓은 경상도 가랑잎에 유난히도 굵은 밤이슬로 표현했다. 박동규 교수는 이 시를 참 좋아한다고 어느 책에서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강의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화천 경주역 공터에도 많은데 이 시비 하나 정도 세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박목월 시인의 가족사랑은 대한민국 문인들 모두가 알 만큼 유별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시인의 작품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시가 「가정」이다. 1964년에 발간한 시집 《청담》에 수록된 작품으로 많은 사람이 애송하고 낭송되는 시 가운데 한편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이 땅의 가장들을 생각하며 마지막 연만 언급해 본다.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시 「가정」 일부

↑↑ 박목월 미발표시가 담긴 노트 원본. (제공: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



아버지와 아들

박목월 시인은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자식에게 애정한 아버지로 정평이 나 있지만, 박 교수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사랑 또한 이에 못지않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국문학자라는 커다란 명함 있었음에도 언제나 박목월 시인의 아들로 더 많이 불러지곤 했다. 불편했던 삶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박목월 시인과 아들 박동규 교수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많다. 평소 목월은 아들과 같이 책을 내고 싶어 했던 만큼 두 권이나 공저로 출간했다. 2007년 1월 『아버지와 아들』, 2014년 6월 『아버지는 변하지 않는다』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아들은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편도 아니다.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순례』,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 같은 책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소통되지 않고, 서먹서먹한 부자 관계가 더 많을 것이다. 두 사람의 부자 관계가 샘이 날 정도로 부럽다. 애증의 관계, 세대 차이,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가로막히기 쉬울 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연애하는 사람 같은 부자간의 소통이 부럽다. 두 사람은 고향이 경주다. 오늘 밤 밤차를 타고 모량역에 내릴 것 같다. 건천역에 내릴 것 같다. 아니 고모가 살던 동네 화천 경주역에 내릴 것 같다. 「사향가」를 부르며 내릴 것 같다.

화천 ktx 역사 옆 동네가 목월 생가터가 있는 모량이다. 목월 생가에는 꾸준히 문학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목련 꽃 피는 어느 봄날 대구의 시 낭송가 선생님들이 생가를 방문하여 목월의 시들을 낭송했다. 필자가 안내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생가 근처로 목월 문학관을 이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목월의 시 「사향가」를 들으면 더 그렇다.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화자가 그리워하는 고향 경주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영혼의 나라인 고향 경주
천년을 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
이슬 자욱한 풀밭으로
맨발로 다니는
그 나라

백성. 고향사람들.
땅위와 땅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연꽃하늘 햇살속에
그렁저렁 사는
그들의 항렬을, 성(姓)받이를.
대대로 평화롭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

이제라도
갈까부다.
무거운 머리를
차창에 기대이고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너듯
하룻밤
새까만 밤을 달릴까부다.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
무슨 소리를.
발에는 족가(足枷).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온 영혼의
무서운 형벌을.
이 자리에 앉아서
돌로 화하는
돌결마다
구릿빛 시뻘건 그 무늬를.
- 시 「사향가(思鄕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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