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으로 보는 경주 과거 ‘추억과 향수 소환’[마지막]

이상욱 기자 / 2023년 09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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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의 나정 경주시는 현재 나정 복원 사업 1차로 기단을 복원한 상태다. 향후 예산이 확보되는대로 우물과 정자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사진: 이상욱 기자>

1930년대 당시의 나정 오릉에 동남쪽으로 바라보면 소나무 숲이 보이고 그 가운데 조그만 비각이 있다. 그 비각 옆에 있는 우물 ‘나정’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깃든 곳으로 사적 제245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시 탑동에 위치해 있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1930년대 옥산서원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조선 선조 5년에 경주부윤 이재민이 건립했다. 이 옥산서원 안에는 회재 선생의 글씨, 퇴계 선생의 글씨, 삼국사기 완전 1질 등이 보관되어 있어 학술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1930년대 금척리고분군 경주군 건천읍 금척리 국도 좌우에 위치한 크고 작은 무덤 50여기가 금척리고분군이며, 사적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고분들 중 어느 한 곳에 신라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인 金尺(금으로 만든 자)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어 금척리라 동네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1930년대 괘릉의 모습 광대한 능역 가운데 석조호석을 돌린 원형토분의 능침이다. 양각된 12지신상이 자유롭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석조기술의 능숙함을 맛볼 수 있으며, 전형적인 신라능묘제도를 갖춘 능으로 사적 제26호다.

1930년대 안압지(동궁과 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정원으로 주목된다. 지난 1975년 3월부터 약 2년간 실시한 문화재관리국의 발굴조사에서 화려한 금은장식품과 궁중에서 사용하던 여러 가지 생활용구, 놀이할 때 사용하는 주사위, 나무배와 많은 기와 등 약 1만5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돼 통일신라시대 궁중생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1930년대 석굴암 본존불상 국보 제24호인 석굴암 석굴은 토함산 중턱에서 동남쪽으로 동해를 향해 화강암을 이용해 석굴을 건축하고,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주벽에 39체의 불상을 조각했다. 원숙한 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에 가까운 본존불상은 3.26m로, 한국불교조각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1930년대 백률사 경주시내 북쪽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백률사는 신라 23대 법흥왕 때 불교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그의 머리가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지금의 소금강산에 떨어졌으므로 그 자리에 절을 세워 자추사라 불렀다고 한다. 백률사에는 현재 주춧돌, 석동옥개석, 바위에 새긴 7층 석탑과 조선시대에 세운 대웅전이 남아 있으며, 국보 제28호인 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도 이 절에 있던 불상이다. <자료제공: 서울 아리재 주인 최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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