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최초의 성지 천진암을 아시나요?

정약용 선생 형제들, 천주교사에 역할 커

박근영 기자 / 2023년 0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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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암 천주교 성지에 모셔진 5위의 성인 묘

우리나라 천주교의 시작은 이벽(1574~1785)이 천진암에서 천주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천진암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 산골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이벽, 정약종, 권철신, 이승훈, 권일신 등 다섯 명의 초기 천주교 성인들의 묘를 이장하며 우리나라 천주교 발상지로 공인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자생적이라는 것에 의미를 둔다. 위의 초기 학자들이 스스로 천학 또는 서학을 연구하다 종교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 신앙자 이승훈은 동지사인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갔다가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받았다.

천주교 박해가 처음 일어난 것은 정조 때인 1785년이다. 천주교에 대해 특별한 반감이 없었던 정조는 전라도 진산의 양반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해 신주를 불태우자 이를 강상죄로 벌해 윤지충과 권상연을 엄벌한다. 초기에는 전통적 윤리 문제로 천주교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났지만 교인이 늘어나면서 차츰 역모의 문제로 발전된 것이 천주교 박해의 원인이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일으킨 병인박해는 황사영 백서 사건이 원인인데 이 황사영 백서에는 조선의 천주교 보호를 위해 조선을 청나라 속국으로 삼아 달라거나 프랑스 함대를 동원해 천주교를 구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에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는 사건이 생기자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어 이때 무려 8000여명이 순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세계사에서 천주교가 쇠락하던 시기에 조선에서는 이런 처절한 신앙이 싹튼 것이다. 프랑스혁명(1789)을 비롯, 사회 전반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었고 통일 이탈리아에 의해 비오 9세 교황이 교황령을 잃고 바티칸에 갇히는 수모를 겪을 때였다.

천주교 사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정약용 선생 집안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생의 형제는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순이다. 정약현은 천주교를 신봉하지 않고 집안을 지켰다. 정약전은 배교하고 흑산도로 유배되어 자산어보를 남겼다. 정약종은 아들들까지 집안 모두 순교했다. 정약용은 배교하고 강진으로 유배되어 목민심서 등 불후의 명저들을 남겼다. 최초 세례교인 이승훈은 자형이고 이벽은 맏형인 정약현의 처남이다. 진산사건으로 순교한 윤지충은 외가쪽 친척이고 이때 함께 처형된 권상연은 외사촌이다. 황사영 백서 사건의 주인공 황사영은 정약현의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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