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출지-신라 소지왕 목숨 구한 전설의 무대

약밥, 서출지에서 만들어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식

경주신문 기자 / 2023년 08월 10일
공유 / URL복사
↑↑ 쥐와 까마귀가 왕을 살리고, 대보름 약밥 설화가 유래한 경주 서출지. 여름이면 붉게 핀 연꽃 사이로 물에 비친 이요당이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쥐는 십이지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물이다. 설화에선 어떤 사실을 암시하고,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예지적인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금갑’(射琴匣) 이야기는 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표적 설화다.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아라’란 뜻의 사금갑은 ‘둘 죽이고 하나 살리기’, ‘오곡밥 먹는 유래’라는 옛 이야기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 사금갑 설화의 배경이 된 곳이 경주 남산 동쪽자락에 있는 서출지(書出池)다.



사금갑 설화 깃든 작은 연못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는 쥐와 까마귀의 도움으로 신라 21대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사금갑 설화가 기록돼 있다.

소지왕 재위 10년(488년) 정월 보름날 천천정(天泉亭) 행차 때의 일이다. 소지왕 앞에 까마귀와 쥐가 몰려와 울더니 쥐가 사람처럼 말했다.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을 살피시오”

소지왕은 장수에게 명해 까마귀를 뒤쫓게 했다. 장수가 남산 동쪽 기슭 한 연못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나 왕에게 전하라고 말했다. 봉투 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

이 봉투를 전해 받은 소지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열어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점을 치는 일관(日官)은 “두 사람은 보통 사람, 한 사람은 왕”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일관의 뜻을 따라 봉투를 열어 보니 ‘거문고 갑을 쏘아라’고 적혀 있었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향해 활을 쐈는데, 그 안엔 왕비와 정을 통하던 승려가 있었다. 소지왕은 왕비와 승려를 함께 처형하고 죽음을 면했다. 그 덕에 소지왕은 여든세 살까지 장수했다.

이 일 이후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전해준 못을 서출지라 불렀다고 한다. 서출지는 ‘편지가 나온 연못’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매년 정월 첫 쥐날인 상자일(上子日)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하며, 정월 보름은 오기일(烏忌日, 까마귀 제삿날)이라고 해서 찰밥으로 까마귀에게 공양하는 풍속이 생겼다는 게 삼국유사가 전하는 내용이다.



정월 대보름 약밥도 이곳에서 기원

이 사금갑 설화는 약밥의 유래가 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정월 보름 까마귀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검은 밥을 지어 제물로 바쳤는데 그 밥이 약밥이라는 것이다.

이후 찰밥이 약밥을 대신했다. 약밥은 대추, 밤, 잣, 참기름, 꿀, 간장을 섞어 찐 음식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비싼 재료가 들어가는 약밥 대신 쌀, 조, 수수, 팥, 콩으로 오곡밥을 지어먹었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1611년에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엔 특별히 경주의 약밥이 별미라는 기록이 나온다. 도문대작은 조선의 팔도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책이다. 방풍죽은 강릉, 다식은 안동, 칼국수는 여주라고 소개하면서, 경주에 대해서는 ‘약밥(藥飯): 경주에서는 보름날 까마귀에게 먹이는 풍습이 있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까마귀 제사가 이어졌다는 것과 찰밥 대신 약밥을 제삿밥으로 올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밥은 경주가 원조이고 서출지 사건에서 만들어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 서출지에 줄지어 있는 배롱나무는 여름이면 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자연 닮은 이요당, 고즈넉한 운치 더해

서출지는 넓이가 7000㎡ 가량 되는 아담한 연못이지만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와 팽나무,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운치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서쪽 물가엔 소박하게 자리 잡은 ‘이요당’(二樂堂)이란 정자가 있다. 조선 현종 5년 때인 1664년에 임적(任適)이 지은 것이다. 건물 이름은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취했다. ‘산과 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임적은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 덕망이 높았던 인물이라 한다. 가뭄이 심할 때면 물줄기를 찾아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했다 전한다.

정자는 이름처럼 자연을 닮아 있다. 뒤로는 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정자 앞엔 연꽃을 품은 서출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정자는 동쪽 정자 다리를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정자를 떠받치는 다리를 연못에 밀어 넣어 정자가 자연스럽게 연못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맑고 깨끗한 물 앞에서 발을 물속에 담그고픈 ‘탁족’의 심리를 정자의 건축구조에 담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서출지 남쪽엔 남산동 마을이 높은 남산과 낮은 남산들 사이에 평안히 좌선해 있다. 너른 들이 주는 풍요의 기운과 오래된 마을이 주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 속에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식당,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밥집, 현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가게가 여럿 있고, 그 사이 남산으로 향하는 숱한 길이 있다.

들을 내다보는 남산경로당을 지나 조금 들어가면 석탑 2기를 만난다. 보물 제124호인 남산동 동서삼층석탑이다. 얼핏 같은 모양으로 보이지만 동탑은 모전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형태이고 서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석탑 맞은편엔 ‘양피못’(壤避池)이라고 불리는 저수지가 있다. 한때 이곳이 진짜 서출지라는 주장이 있었다. 지금은 현재의 서출지가 진짜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못 옆에는 임적의 아우 임극을 기리는 산수당(山水堂)이 있다.

서출지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초여름 저녁이다. 연못엔 연꽃이,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운다. 이런 풍경 속에서 연못에 비친 이요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폭의 그림 속에 빠져드는 느낌까지 받는다.

해가 지고 야간조명이 들어오면 연못에 비친 이요당의 반영은 한층 아름답게 다가온다. 서출지의 야경은 사진작가들의 사진촬영 소재로도 유명하다.

김운 역사여행가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