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던 날의 기억과 복원된 사랑채 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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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영 기자 / 2023년 0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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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 경주최부자댁과 관련한 박근영 기자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주최부자는 현시대 우리나라 시대정신인 ‘나눔과 상생’을 가장 분명히 알려주는 명가이지만 아직까지 알려지지 소중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본지를 통해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출향인면에 연재되던 ‘셔블&서울·경주사람들’은 중요한 출연자가 있을 경우 간헐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복원된 경주최부자댁 사랑채 별채


마을 청년들과 어른들은 너나없이 불을 끄기 위해 쫓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채 전부가 타서 무너졌다.

그날 큰불이 났다. 최부자댁이 온통 벌겋게 타올랐다. ‘불이야, 불이야’ 하는 외침이 끊임없었고 기왓장 튀는 소리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어른들의 눈에 공포와 불안, 놀라움과 염려가 서려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불은 새벽녘에야 겨우 꺼졌다. 이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잠을 설치다시피 하며 최부자댁 불난리를 지켜보았다. 마을 청년들과 어른들은 너나없이 불을 끄기 위해 쫓아다녔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채 전부가 타서 무너졌다. 여섯 살, 어린 내 기억에 너무나 선명한, 하늘을 찌를 듯 타올랐던 무시무시했던 불길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내가 쓴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가 2018년 4월에 나왔다. 당시 이 책을 내고 이어 2권과 3권을 연이어 낼 작정으로 작업을 모두 해놓았지만 뜻밖에 생각이 바뀌어 출판을 미뤄뒀다. 소설도 한 권 분량 써두었는데 그 역시 오래 갈무리해 둔 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경주최부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무려 5년 동안 다른 일 모두 접어두고 이 책에만 매달렸다. 경주최부자에 집중했던 이유는 21세기 경주가, 세계화의 전위에 선 대한민국이 가장 가치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시대정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내 열정과 땀으로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경주최부자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5살 되던 해 교촌으로 이사한 우리집은 경주최부자댁과 대각선으로 불과 50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대학 진학하기 이전인 1985년까지 교촌에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경주최부자댁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경주최부자댁 하면 최부자댁 본가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교촌의 대부분, 특히 기와집의 대부분은 경주 최부자댁 권속들이 사는, 동네 전체가 경주최부자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곳에 살았으니 누구보다 최부자댁 분위기를 많이 알 수 있었고 동네 돌아가는 형편도 잘 알면서 청소년기까지 넘겼다.

대학진학 후에도 여전히 본가가 교촌에 있었기에 40대 초반까지는 일 년에 네댓 번은 교촌을 찾았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살던 마을이었지만 장성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찾는 교촌은 이전과 다른 무엇인가가 늘 가슴 한쪽을 끌어당겼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나는 1990년부터 2012년까지 해외여행업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를 내 고향 경주와 비교하는 습관을 길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세계의 표준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다방면에서 대한민국이 앞서 있지만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했던 1990년만 해도 세계는 온통 배울 것이 많았다. 우리보다 선진화된 나라를 둘러보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도시마다 그 도시를 대표할 만한 역사적인 인물과 그 인물의 사상, 이야기가 아주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단순한 구성요소로서의 인물이 아니라 그 도시가 오히려 그 도시에 살고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 인해 더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피렌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라는 거장이 그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빈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이라는 악성들이 이 지역 관광의 뼈대를 이루었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와 소크라테스가, 런던은 세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파리는 루이 14세 왕과 로베스 피에르 같은 혁명가, 화가 들라크루아와 피카소, 에밀졸라나 모파상 같은 작가 등이었다.



경주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해외여행을 하며 끊임없이 고민하던 문제의 해답을 얻었다.

그런 도시들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경주는 어떤 인물이 세계사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그러나 경주는 신라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무수한 인물이 많은 이야기를 남겼지만 세계에 내놓을 만한 인물로 선뜻 누군가를 꼽기 힘들었다. 우리가 아는 김유신과 김춘추는 마침 불어닥친 민족사관과 가상역사의 열풍에 휘말려 평가절하되었고 그나마 기껏 전쟁영웅일 뿐이었다. 문무대왕이 무기를 산에 묻고 스스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염원을 내비치며 호국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세계화에는 어딘지 약해 보였다. 경주 문화의 현주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덕왕과 최고의 석학 최치원이 있지만 그들의 가치는 경주사람들조차 잘 모를 정도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경주에서조차 동학의 시초를 전라도 고부로 아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다 2008년 경주중고등학교 서울동창회에서 간사를 맡으면서 뜻밖에 경주를 대표할 만한 역사적 인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경주최부자’였다. 마침 동창회에는 경주고 1회 졸업생인 경주최부자 종손이자 경주최씨 중앙종친회 명예회장이신 최염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해 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실 때였다. 최염 선생님을 만나는 그 순간 교촌에서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물론 경주최부자댁에 전해오는 오랜 정신이야말로 세계화 시킬 수 있고 시켜야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에 앞서 2003년부터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등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던 나는 2007년 3월, 어린 시절 교촌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엮어 ‘니 꼬치 있나?’라는 책을 펴낸 바 있었다. 단순하게 우리 시절의 놀이와 작은 이야기들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쓴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낸 것인데 당시 치솟던 내 블로그의 인기에 힘입어 그 해 daum 베스트 책 17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런 한편 여행업과 별도로 2010년경부터 별도로 광고기획사와 출판사를 겸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자서전 출판이었다. 이때부터 정치기획도 하고 자서전도 내면서 생업을 유지했고 급기야 여러 가지 요인으로 변동이 심한 여행업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서전 출판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2012년 12월, 운명처럼 경주 힐튼 호텔에서 열린, 경주최부자선양회(당시 이사장 고 조동걸 교수)가 주최한 ‘경주최부자 심포지엄’에 사용된 논문집을 우리 출판사에서 인쇄하게 되었다. 당시 경주최부자선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최창호 사무국장(현재 경주최부자선양회 이사 겸 사무국장)이 적극 추천해준 덕분이었다.  최창호 사무국장은 내 초등학교 동기로 경주최부자 정신을 밝히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혼신을 다해 경주최부자선양회를 지키고 가꾸어온 장본인이다.

 이 책 인쇄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경주최부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는 이듬해 최염 선생님을 찾아뵙고 경주최부자댁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겠다고 말씀드리고 협조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최염 선생님은 한 동네 산 인연과 동창회의 인연, 최창호 사무국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책 내는 것을 도와주기로 약속하셨고 이때부터 다른 모든 일을 폐하고 본격적으로 경주최부자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오랜 인터뷰와 자료조사 끝에 2018년 4월, 만 5년의 작업 끝에 경주최부자 시리즈 제1권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 잊고 지내던 경주최부자가 다시 내 마음에 들어온 계기가 있었다. 코로나19 기간 시작된 경주최부자댁 사랑채 별채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7월 최부자댁을 방문했다. 잘 복원된 사랑채 별채는 한순간에 내 기억을 50여 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시뻘겋게 불타오르던 최부자댁 불길을 보며 느꼈던 가늠할 수 없는 열기가 가슴에 ‘확’ 달려들었다.

문득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나만의 언어로 내 마음속 추억과 내가 겪고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최부자댁과 교촌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써두었던 또 다른 경주최부자 이야기도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내보낼 때가 된 것이다. 불타 없어졌던 사랑채가 별채까지 복원되었으니 최부자댁 감추어진 이야기도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이 지면을 통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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