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중 축사·격려사 하지 않겠습니다!”

신경주역 주변 메트로폴리탄이나 수도권 신도시 같은 거짓 공약 남발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선거풍토가 문제 !!

박근영 기자 / 2023년 0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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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이 코너를 통해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후보자들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가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실상을 보면 단순히 준비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끔찍할 만큼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대필작가로 활동한 배경에는 광고기획사를 오래 한 내 직업이 있다. 광고기획이란게 개인이나 기업의 이미지나 좋은 기능을 종합적으로 부각시키고 알리는 일인데, 하다 보니 그 중에서도 정치기획 쪽으로 일이 많아져 이 분야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쌓게 됐다. 정치하려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서전을 쓰는데 이 역시 광고의 한 실례다. 특히 정치가의 자서전은 다분히 정치적인 역량을 드러내도록 써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역할이 크다.

정치기획을 하노라면 정치지망생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지한지 절감하는 경우가 잦다. 자서전은 자기 이야기가 중심이 되니 어쨌거나 그런대로 쓸 수 있지만 그것을 떠나 정치를 위해 어떤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계획이 있고 어떤 정책을 제시할지 물으면 열에 8~9는 꿀 먹은 벙어리다. 도무지 아는 게 거의 없다. 심지어 해당 지역에서 오랜 기간 공직생활을 한 어느 정치지망생조차 현직에서 불과 3~4년 지났다고 해서 자기가 봉사하려고 하는 바로 그 도시의 현안은 물론 자기가 내세울 정책이나 공약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촌극도 경험했다.

그러니 그러지도 못한 정치지망생들은 오죽하겠는가? 고위 공직자, 법조계나 언론계, 군이나 경찰 등 우리가 흔히 보아온 정치지망생들의 공통점은 높은 공직이나 큰 영향력이나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유명한 사람일 수도 있다. 정치일선에 나온 아나운서, 배우, 코메디언도 많지 않았던가? 물론 그들 역시도 정치에 대해 거의 무지하고 당연하게 정책이나 공약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

그런 정치인들을 위해 정치기획가들이 나서는데 대부분 정치기획이란 것이 지역 토호들이거나 전문성 없이 선거철 급조되는 지역 활동가들이다. 그 활동가들에는 지역의 소식을 잘 아는 지역신문 기자도 있고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시민단체 관련 인물도 있고 지역 대학에서 오래 봉직한 대학교수도 있다. 지역 동창회, 지역 향우회 관련 인사들도 대거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이 우격다짐으로 만든 정책이나 공약은 거의 때마다 나오는 상투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매니페스토 정책을 앞세우는 최근의 선거풍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주먹구구식이라 공약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어가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고 구체적인 실천안 없는 말뿐인 공약(空約)들이다.

경주만 해도 이런 공약들은 차고 넘쳤다. 시민들은 선거 때마다 인구증가, 경제부흥, 관광객 증대 같은 꿈 같은 공약들을 귀가 닳듯 들었지만 누구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관광정책은 시민을 위한 것인지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였다. 대표적으로 신경주역 주변과 관련해 마치 엄청난 메트로폴리탄이나 수도권 신도시처럼 꾸며진 청사진을 선거때마다 보지만 그게 다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공염불이었음을 확인해야 했다. 선거때마다 지역별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세우고 하는 공약이 남발되었지만 대부분 허풍이었고 열에 하나둘 만들거나 세운 것들은 실효성은 없고 과도한 운영경비만 잡아먹는 불필요한 시설로 전락해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심지어 총선과 지자체 선거가 뒤죽박죽되어 총선에 임하는 선거전략이 마치 자치단체장 선거전략처럼 비치는 것도 전국적인 선거행태의 일상이 되었다.

총선은 국회의원 선거다. 국회의원은 국가정책과 나라살림을 감시하고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선출직 공직자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 정책은 모두 어디에 무얼 만들고 무얼 유치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러니 그런 공약 내건 국회의원이 정작 국회회기 중에 좋은 법안을 만들거나 개정했다는 소식이 하나도 없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교부금 얼마를 어떻게 가져왔다는 것쯤으로 역할을 다한 듯 알고 국가정책으로 주도한 도로 건설이나 지역개발 관련 안건들에 슬쩍 숟가락 얹어 공사비 얼마를 따냈다는 식으로 의정보고서가 도배되어도 모두가 그런 양한다.

선거기획의 가장 중요한 요체를 설명하자면 수(數), 숫자다. 총선은 국가가 그 기준이 되고 지자체 선거는 지역이 그 기준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총선은 국가 운영의 수를 보는 것이고 지자체는 지역의 운영 수를 보는 것이다. 그게 과하면 줄이고 모자라면 늘이는 아이디어를 내면 된다. 법과 조례도 그에 따라 다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 국가기관이나 지역 기관의 유치 및 존폐에 관한 것도 모두 숫자에 대한 문제다. 그것으로 인해 영향받을 국민이나 시민의 다수를 따지면 정책과 공약의 방향이 설 것이고 좀 더 장기적이고 세부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좀 더 좋은 정책을 세울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숫자만 잘 보면 만들 수 있는 공약이 엄청나게 많다. 어느 지자체나 홈페이지에 지자체 예산과 관련한 운영보고서가 반드시 공개되어 있다. 이것만 잘 살펴보아도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무더기로 만들 수 있다. 인구 대비 예산이 부족한 곳은 늘리고 과한 곳을 줄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구태의연한 감으로 정책을 짜고 공약을 만드니 대부분 터무니없는 엉터리 공약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기획하는 선거정책과 공약들은 다분히 거창하지 않은 정책과 공약들뿐이었다. 실효성을 염두에 둔다면 신도시 건설이니 인구증진 같은 거창한 공약은 절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건축이나 건설도 거의 없다. 이걸 만들어 놓고 나중에 운영비도 못 댈 것을 누구보다 잘 계산하기 때문이다. 선심 팍팍 쓰는 복지제도도 없다. 선심성 복지정책을 만들려면 반드시 재원의 근거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을 주도했다면 건설부문에서 남발되는 비효율적 도로망에 대해 몇 % 삭감한다는 식이다.

한번은 어느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서 무슨 좁은 길을 넓히겠다는 공약을 걸어주었다. 그리고 매니페스토 정책에 입각해 공약 옆에 예산을 적어두었더니 공천 준 그 지역 국회의원실에서 예산을 성의 없이 짰다고 발끈해서 연락했다. 당장 후보자와 그 의원실 관계자를 불러 놓고 내가 참고한 한국도로공사 표준 견적표를 들이밀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딴지도 걸지 못 했다.

반면 총선이건 지자체단체장이건 의원이건 행동강령은 눈에 띄게 만들어주곤 했다. 지역에 따라 5대 강령, 8대 수칙 등으로 구분된 이 행동강령들은 이런 것이다. ‘△딱 한 임기만 일하겠습니다. △이전의 좋은 정책들은 (정파에 상관없이)이어가겠습니다. △임기 중 축사·격려사를 하지 않겠습니다. △아껴 쓰고 고쳐 쓰겠습니다. △소외된 곳을 더 잘 살피겠습니다’ 등의 약속들이다.

재미있는 일화, 이런 내용들을 행동강령이랍시고 만들었더니 후보들마다 공통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러다가 진짜 당선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내 대답이 이랬다.

“임기 한 번만 하고 말 건데 인사는 왜 합니까? 4년 안에 일 제대로 하려면 일만 해도 시간 없을 겁니다. 언제 축사·격려사 합니까? 다음 선거요? 이렇게 하고 나서 한 단계 높여서 도지자 선거 나가지요. 아마 시민들이 다 등 떠밀 겁니다. 아니면 총선(시장선거) 나가시죠!”

요컨대 정치기획은 대필의 연장선상이자 훨씬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작업이다. 자서전이 독자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라면 선거기획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다. 더 살피고 더 조심해서 만들지 않으면 결국 시민이 불행해진다. 사족 하나. 안타깝게도 이런 공약을 내건 후 당선된 지자체 단체장이 없었다. 바람 한 번 불면 다 쓰러지거나 공천만 받으면 정책이고 공약이고 다 필요 없는 개똥 같은 정치풍토가 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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