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고 아부하는 공직사회 폐습 사라져야 !

‘과장 이상 진급하려면 소신을 버려라’
공직사회 부정적 단면 보여주는 대표적 넋두리!!

박근영 기자 / 2023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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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내는 분들 중 다수가 공직출신 정치인이다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 자서전을 낸다는 것이다. 자서전 내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쉬운 것은 이때쯤의 의뢰자들은 대부분 현실 감각이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공직자 출신일 경우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과장 시절이 최성기로 보인다. 정부행정이나 지방행정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직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과장 시기에 국민이나 시민과 밀접한 일들을 가장 잘 알게 되고 자신감과 의욕도 어느 때보다 넘친다. 당연히 구체적인 업적도 눈에 띄게 많다. 중앙부서나 지방부서는 보통 2년꼴로 한 번씩 부서를 바꾸는데 6~8년, 많게는 10년쯤 과장으로 몇 개 부서를 돌다보면 다양한 업무를 손바닥 보듯 꿰뚫는다. 가는 곳마다 왕성한 실적을 만들고 그게 국가와 시민의 정책에 반영된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선 국장쯤 되면 실무 이야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국장쯤 되면 앞의 과장들이 올린 무수한 정책들을 취사선택하는 위치이고 이 중에서 나은 일들을 골라 결재받는 역할에 집중한다. 그러나 국장 역시 실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할 수 없으므로 이들 역시 현장감각은 과장들에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관록까지 쌓여 훨씬 노련하게 정부나 지방의 행정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비단 일반 공직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군이나 경찰도 마찬가지다. 군에서 대령 이상 되면 중앙부서 과장쯤의 직책이 되고 경찰에서 총경 이상이 되면 역시 과장쯤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이때가 실무로는 최상의 컨디션이 된다. 실제로 이 정도 계급이 연대장, 지방도시 경찰서장이 되고 본청 과장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상 더 오르면 이때부터는 행정가가 아니고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중앙부서 실장이나 차관, 지방자치단체와 관련한 지방공기업 대표나 부시장 같은 직책으로 발돋움하면 이때부터는 거의 정치가가 된다. 그러나 실무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른바 ‘도장 찍는 사람’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평균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다시 말해 행정고시를 치렀거나 사관학교를 나오거나 경찰대학을 나왔다면 중앙부서 과장까지는 실력으로 어느 정도 오르지만 그 이상 되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장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일하는(?) 시기가 바로 이 과장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대필했거나 대필된 다른 자서전을 통해서 보면 이런 현상은 거의 비슷하게 일어나는 평균적인 이야기다.

여기서 유명한 공통어가 하나 생긴다. ‘월화수목금금금’, 다시 말해 근무하는 요일이 따로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한다는 말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 공직자 출신 정치인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을 마치 무슨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듯 자랑했다.

좋게 해석하면 이 말은 그야말로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다. 쉬는 날을 반납할 만큼 일이 산더니처럼 많았다는 뜻도 되고 그만큼 멸사봉공(滅私奉公)했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면 과장 이후 삶은 거의 월화수목금금금이다. 국장은 물론 실장이나 정무직인 차관급이 되면 더욱더 그렇다. 대한민국 공직자들이 이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고마움이 밀려들고 눈물이 나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미묘한 함정이 하나 숨어 있다. 가만 보면 과장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일하는 이유에는 국장이 출근하기 때문이고 국장들이 휴일을 반납하는 이유에는 그 윗분들이 일하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세 가지 일화가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장관 한 분이 처음 장관에 오른 다음 이런 문제에 맞닥뜨렸다. 유명 대학에서 학장을 지낸 이 교수 출신 장관은 장관이 되고 난 뒤 예하의 고위 공직자들이 밤늦게까지 대기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이런 관행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장관은 스스로 공식 근무시간인 오후 6시가 되면 칼 같이 퇴근하는 것은 물론 예하의 차관 이하 모든 공직자들이 공식 근무시간이 되면 사무실에 불을 끄도록 훈령을 발표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뒤에 왜 그런 조치를 취했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신선했다.

“그게 모두 장관에게 잘 보이려는 것 아니오. 장관이 없으면 차관은 물론 그 예하 실·국장들이 자리 차고 있을 필요 없고 그 밑의 직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또 일은 자율적으로 해야 능률이 오르는데 윗사람 눈치 보고 일없이 자리 지킨다는 게 얼마나 인력 낭비요!!”

그런가 하면 모 광역단체 공직자들은 시장이 불철주야 일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 가리지 않고 출근해 시장에 대한 원성이 하늘만큼 높았다. 심지어 시장실에 간이침대까지 두고 일했다는 그 시장은 그런 자신을 굉장히 성실한 시장인 양 자랑하고 다녔다. 그 와중에 그의 아랫사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 시에 근무하던 어느 공직자는 내놓고 시장의 과한 성실에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시장이 출근하니 국장급들이 우~ 따라서 출근하고 국장이 출근하니 과장들도 우~ 따라서 출근... 결국 실무자인 자기까지 나와 ‘대기하는 일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누구 하나 시장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나서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결국 이런 병폐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그 시장은 자신의 과함을 깨닫고 휴일에 출근해도 국·과장을 대기시키지 않고 몰래 나와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직접 목격한 어느 도시 과장 한 사람은 자기보다 나이 적은 시장이 술을 부어주자 공손히 무릎 꿇고 술을 받은 후 몸을 돌려 마시는 ‘섬뜩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뒤에 그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했는데 공직사회가 이런 것이구나 싶어 씁쓸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 행동을 만류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던 시장은 그 역시 그런 문화에 익숙했던 공직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뒤에 했다. ‘과장 이상 진급하려면 소신을 버려라’ 공직사회에 암암리에 도는 이 말은 기성세대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넋두리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586 이전 세대의 행태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다 그렇게 눈치 보고 아부해서 진급했다는 것도 억지일 것이다. 정말 실력 있는 고위 공직자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지금은 공직사회도 많이 나아져서 무조건적인 상명하복, ‘까라면 까는’ 풍토가 상당부분 완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586언저리 세대의 공직자들은 일하기 어렵다는 푸념을 내놓곤 한다. 윗사람 눈치에 아랫사람 눈치까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위력에 눌리고 젊음에 쫓기는 기성세대 공직자들은 아래위로 낀 세대다.

문제는 또 있다. 바로 이런 풍토의 정점까지 갔던 공직자들이 그 직을 다하고 나면 선출직을 탐내 기웃거리는 것이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이전에 일해본 경험이라도 있으니 큰 탈 없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광역의원 같은 선출직이 되면 이전의 실무능력은 없고 밑에서 일일이 수발들어주는 국장·과장은 물론 그 정도 급의 비서진조차 없으니 무슨 법안이나 조례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심사하거나 개정하는 것은 뒷전인 채 날마다 표만 모으러 다니고 인기에만 영합하는 일이 벌어진다. 혹자는 고위 관료로서의 경험과 인맥이 더 좋은 정치를 하는 힘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힘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작용하는 것이 또한 실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정쩡한 경력으로는 끼지조차 못한다.

그래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중앙정부 과장 국장이나 지방자지단체 과장, 국장을 만나면 곧잘 하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일 잘할 때 출마하시라’고. 물론 그 말을 듣는 당사자들은 펄쩍 뛴다. 언감생심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된다. 일은 제대로 할 줄 알 때 하는 것이 옳다. 시간 다 지나서 힘 빠지고 머리 썩고 난 다음에는 미련과 탐욕만 남을 뿐이다.

문제는 그런 공직자들이 요직을 두루 거치고 할 일 없어지면 똑같이 선출직에 욕심내고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치 보고 아부하는 공직문화가 시작된다. 아직도 그 중심에 586 이상 기성세대의 상명하복, 오랜 행태가 숨어 있다. 소신껏 일하는 올바른 공직자상은 그 이후 세대가 될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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