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VS 후진국형 행사, 어느 쪽인가요?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의장은 국민과 시민의 종복일 뿐
인사말 하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이 아니다!!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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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감기쯤의 위험도로 인식되면서 몰라보게 대규모 행사들이 늘어났다. 특히 연말이 되면서 그간 3년쯤 치르지 않았던 각종 단체들의 송년회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다. 이런 행사들이 성행하면서 다시금 말잔치도 늘어나게 됐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그래서 더 바빠졌다. 이곳저곳에서 연설문을 대신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농담 삼아 이렇게 묻곤 한다.

“선진국형 인사와 후진국형 인사, 어떤 게 필요하신가요?”

기자는 25년 넘게 해외여행업을 하면서 많은 나라를 다녔고 이런저런 해외 행사에도 자주 참여하거나 직접 기획하게 됐다. 그러면서 선진국형 행사와 후진국형 행사를 나눠서 생각해볼 계기를 자주 만났고 선진국형 인사말과 후진국형 인사말을 비교해 볼 기회도 얻었다.

먼저 후진국형 행사를 보자. 이 경우는 일단 마이크 잡은 사람들이 많다. 행사를 주최하는 관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많은 유력 인사들을 무대 위로 올려서 그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는 것이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행사를 지켜보는 청중이나 참석자들은 그냥 들러리일 뿐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 잡는 사람들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축사1, 2, 3은 기본이고 격려사 1, 2, 3도 기본이다. 이렇게 하고 난 뒤 대회 주최측에서 회장 부회장 할 것 없이 올라가 또 인사한다. 그 사이사이 어떤 유력인사가 행사장에 왔는지를 꾸준히 알려준다. 그런 유력인사들은 시간관념이 없어서 결코 제때 도착하지 않지만 희한하게 도착할 때마다 여지없이 참석자를 알려주는 성의를 발휘한다.

후진국형 인사말은 기본적으로 10분 이상 주절거린다. 일일이 해당 외국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우리 같으면 공자왈 맹자왈 같은 고문헌부터 시작해 그럴싸한 사례나 명언 같은 것들을 늘어놓는 것이 틀림없다. 다음 사람 역시 최소한 10분,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절거리다 내려간다. 이때 객석을 보면 청중 대부분은 전혀 행사에 귀 기울이는 표정이 아니다. 7~90년 대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하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장면과 흡사하다.

후진국형 행사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나는 영혼 없는 행사다. 행사시간은 유력인사가 많이 참가하면 길어지는 고무줄이다. 심지어 유력인사가 늦게 도착하면 대놓고 행사 시간을 연기해 행사하기 일쑤다. 오직 그 한 사람, 혹은 그들만을 위한 행사다.

선진국형 행사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우선 행사시간을 엄격히 지킨다. 누가 뭐라고 해도 칼같이 시간을 맞춘다. 행사가 시작되면 행사 관계자가 자신을 포함해 행사를 치르는 주요 인사들과 이 행사를 위해 참석한 주요 내빈을 소개한다. 내빈으로 불린 사람들은 행사를 치르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다음으로 역시 축사와 인사말이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인사말은 대표적으로 축사자 한 명 아무리 많아도 두 명 선에서 그친다. 그런 다음 대회를 주관하는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나서 바로 중요한 실무 행사로 돌입한다.

인사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축사는 보통 1~2분이 기본이다. 센스 있는 축사자는 30초쯤으로 압축해서 말한다. 아무리 길어도 3분 이내다. 대신 행사를 주관하는 회장 같은 사람도 최대한 실무를 전달하는 선에서 다소 길게 발언한다. 그래도 길어야 5분쯤이다. 역시 유머는 기본이고 센스있는 회장은 1~2분 이내에 말을 끝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후진국형에 훨씬 가깝다. 무슨 행사에 가건 축사 1, 2, 3과 격려사 1, 2는 기본이고 시간도 인사 하나당 5분 이상 10분이 대부분이다. 그러는 사이 객석은 인사말을 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온통 자기 테이블 사람들과 내놓고 대화하느라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은 특히 수직적 구조를 가진 동창회나 향우회, 지자체 행사에서 가장 흔하게 연출된다. 층층시하 내려오는 나이 많은 선배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동창회나 향우회, 높은 직책의 공직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지자체 의회, 각종 단체장들이 득실거리는 지자체 행사에서는 누군가는 체면치레를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인사말에 나선다.

인사말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행사를 치르느라 수고한다’는 말을 달아놓고 하고, 자신보다 유력한 사람이나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일일이 호명하며 인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마치 자신이 행사장의 주인인 것처럼 제2, 제3의 인물을 무대에 올려 인사를 시키기도 한다. 이런 것이 주최측에 실례되고 시간을 빼앗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알아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내가 아는 어떤 인사는 행사측이 미리 3분 이내로 인사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더니 마이크를 잡고는 ‘행사 주최측에서 3분으로 인사를 부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안 될 것 같다’며 오히려 대놓고 더 길게 한 인사도 있었다. 안하무인을 넘어 행사를 대놓고 방해한 것을 그 자신만 모르는 것이다.

그런 인사말이 끝나고 나면 대회를 치르는 회장이라는 사람이 다시 무대에 올라 지금까지 나와서 인사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일일이 고마움을 표하고 객석에 앉은 또 다른 유력인사를 소개하기 시작하고 고마움을 표한다. 이러면서 또 2~3분이 훌쩍 지나버린다. 역시 객석의 회원들은 자기 이야기들에 골몰하느라 대충 흘려들을 뿐인데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사꾼들이 있다. 바로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 지자체 의회 의장과 의원들이다. 동창회, 향우회, 지자체 행사 담당자들에 부탁하노니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의 의장·의원들에게 제발 인사시키지 말기 바란다.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행사를 좌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나 선진국형 행사를 못 보고 못 경험한 탓에다 지나치게 오랜 기간 상명하복의 문화에 젖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을 으레 상전으로 알고 굽신거리는 것이 습관화되었을 뿐 그들이 실상 우리 말을 듣고 따라야 할 종복이라는 생각은 못하기에 이런 후진국형 행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들에게도 부탁하노니 행사에 나가 인사하는 시간에 국민을 위해, 시민을 위해 고칠 법안을 찾고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고 잘못되고 불편한 곳을 찾아 고치시라. 국회의원, 시장, 시의회 의장·의원이 인사말 하라고 뽑은 자리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표를 의식해 꼭 인사를 하고 싶다면 그 자리가 국정보고나 시정보고의 자리가 아니고 남의 집 잔치 장소라는 사실을 제발 깨닫기 바란다. 그걸 착각해 10분 넘게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는 동안 행사는 똥이 되고 그런 행사에 나와 한두 번 지린 경험을 한 젊은이들은 두 번 다시 동창회, 향우회, 지자체 행사에는 근처에 조차 가지 않는다.

행사가 선진국형인가 후진국형인가는 인사말의 수와 그 말의 시간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최상위의 선진국으로 도약했는데 아직도 행사의 수준은 빈곤하던 70년대에 머물러 있다. 그런 차원에서 기자가 지금까지 여러 행사장에서 본 인사말 중 가장 인상적인 인사말 하나를 꼽자면 이것이다. 어느 향우회 회장이 최근 모 행사에서 한 인사말이다.

“지금까지 제 앞에서 훌륭한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저까지 좋은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OOO회 회원여러분, 아무쪼록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 이제 앞으로 닥칠 송년회와 신년회는 선진국형으로 치를 것인가 후진국형으로 치를 것인가? 지금 이 기사를 본 당신은 선진국형 연설가인가 후진국형 연설가인가? 멋진 연설을 하고 싶다면 이제 전문가에게 슬쩍 조언을 들어보는 것은 또 어떨까? 물론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대필 전문가에게 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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