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인터뷰, 때로는 민망한 상황 만날 수도…

대필작가는 심판자 아닌 좋은 것만 쓰는 기록자일 뿐??

박근영 기자 / 2022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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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작업을 하다보면 의뢰자의 주변을 취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작업은 당연히 의뢰자의 동의를 받아 실행하는 일로 의뢰자의 기억을 보충하거나 좀 더 다양한 자료들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주변 취재는 기본적으로 신문, 방송 등의 자료를 이용하지만 이런 것은 이미 작업과정에서 드러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는 주로 사람에 대한 보충 취재다. 의뢰자의 부인과 자녀, 부모 등 가족일 경우와 의뢰자에게 있었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증언해 줄 친구, 친인척, 직장 동료, 사건 관계자 등의 주변인물들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의뢰자가 콕 찍어서 만나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대상을 찾아 헤메는 어려움은 거의 없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를 시작해보면 대개가 의뢰자가 말한 내용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덜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의뢰자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일색이거나 사실보다 과장되게 성격이나 실력을 부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주변 취재가 쓸 만한 것은 의외로 의뢰자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기억하고는 있어도 ‘그게 뭐 대수라고’ 하는 식으로 소홀하게 여기는 사건을 기억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뢰자 본인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은 사건이 오히려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훨씬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부간에 있었던 일은 의뢰자보다 배우자의 기억이 더 재미나고 감동적일 수 있다. 내가 대필했던 어느 기업체 회장님의 경우 수천억원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검소하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검소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와이셔츠 깃이 헤져서 보풀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었고 양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로 한 계절을 다 버티는 분이었다.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도 시장에서 파는 가장 싼 슬리퍼를 신었다.

이 분은 보석 관련 사업으로 기업을 일으킨 분이었는데 70대임에도 30대 시절에 산 루페(보석을 감정하기 위해 눈에 쓰는 확대경)를 40년 넘게 써오는 분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아니, 자세히 봐도 수천억 자산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검소한 분이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더한 분이었다. 댁으로 가 사모님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니 집에서 쓰는 모든 전자제품들이 대부분 10년 이상 된 오래된 것들이었고 탁자나 소파 등은 숫제 20년 이상씩 지나 귀퉁이가 낡거나 가운데가 눈에 뛸 만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사모님은 그 회장님을 노랭이 구두쇠 영감이라고 머리를 절절 흔들었다. 더구나 보석과 귀금속 사업으로 재력을 얻은 분의 사모님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사모님 주변에는 보석이나 귀금속, 명품이라고 할 만한 장식품이나 장신구가 거의 없었다.
 
사모님이 끼고 있는 반지는 결혼하면서 예물로 받은 금반지일 뿐이었다. 그때 사모님의 한탄과 푸념은 회장님의 검소함을 밀도 있게 쓰기 위해서 아주 좋은 재료가 돼 주었다. 특히 사모님이 회장님을 향해 수전노니 노랭이니 짠돌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에서 그 회장님에 대한 진실성이 느껴져 더 좋았다.

사업체 종사자들과 만나서는 숨겨진 미담을 듣기도 했다. 어느 직원분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는데 자녀가 많다 보니 대학 등록금 문제가 만만치 않아 고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거나, 직원의 가족이 교통사고가 나 만만치 않은 병원비가 들었는데 그것을 몰래 내주었다는 등의 미담들이 사업체 내에 떠돌고 있었다. 물론 그 회장님이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이어서 즐겨 이 내용들을 취재하고 이야기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주변을 취재하다 보면 꼭 좋은 일만 듣는 것은 아니다. 뜻밖에 불만이나 흉을 듣기도 한다. 예의 그 회장님도 평소 지나치게 짠 기업 운영 탓에 사내 복지가 소홀하다거나 임금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특히 그 회장님은 수백억원의 자산을 들여 해당 업계의 디딤돌이 될 만한 연구재단을 설립하고 꾸준히 그 재단을 후원해왔는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우선 자신들의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 나서 그런 연구재단을 만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는 불만을 공공연하게 토로했다. 그 기업이 동종업계에서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준다고 들었는데 취재하면서 보니 그 업계의 급여 수준이 다른 업계 수준에 못 미쳐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에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내용까지 자서전에 기록될 리는 없다. 말했다시피 자서전은 철저히 의뢰자가 자신의 인생을 미화하고 자랑하기 위해 쓰는 것이 대부분 아닌가?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사실이 드러나면 글을 쓰는 대필자 입장에서는 몰라보게 의욕이 떨어져 좋은 글을 쓰기가 거북해진다. 그러나 이런 일쯤은 오히려 약과다.

내가 아는 어느 대필 작가는 어느 정치인의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다가 그가 내놓고 의뢰자인 정치인을 성토하는 상황을 만났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분을 인터뷰하라고 말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당혹스러웠다며 들려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치인과 우정이 깊은 그 친구라는 분은 ‘자서전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신뢰를 먼저 회복하는 것’이라며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치가로 성공하면서 이전에 걸었던 공약이나 정책을 이행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오로지 표를 유지하고 모으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정치를 왜 하느냐?’며 강경하게 인터뷰 거부의사를 밝힌 분 앞에서 입맛이 썼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차라리 그분을 취재해 쓰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날 정도였다나?

이런 엉뚱한 일을 겪고 나니 대필을 의뢰한 정치인이 갑자기 표에 정신이 빠진 정치꾼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필하는 동안 무슨 말이건 크게 신뢰가 가지 않더라고 하는 그 작가의 말이 백 번 공감되었다. 당연히 그 친구분에 대한 인터뷰는 취소되었고 그와 관련된 일도 책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가에게 그래도 그 정치인은 그만한 친구가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말을 나누며 웃었다. 상당수 정치인들 주변에는 이권에 눈 어두운 사람들이 진 치고 있기 십상이라 바른말 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쯤, 대필 작가라면 자주 겪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일들조차 미화해 내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남의 책을 맡은 대필작가들의 의무다.
 
유감스럽게도 대필작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자가 아니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다. 오히려 최대한 의뢰한 사실을 중심으로 추억에 살을 붙이고 과거의 사건을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의 정확성이나 진실성, 제3자의 주관은 다만 장식품들일 뿐이다. 의뢰자가 바라는 것도 대부분 포장과 미화다.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을 피알(PR)이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는 대필작가들의 금과옥조다.

때문에 주변 취재를 시작할 때는 의뢰자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채집하러 나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된다. 그러다 의뢰자조차 알지 못했던 미담이나 보석처럼 숨겨진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그 자체로 감사하면 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자서전쯤 내려는 사람들은 그런 대로 자신이나 자신의 주변들과 원만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부정적인 요인이 드러나 신바람을 꺾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의뢰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대필 작가가 골머리 썩거나 심리적을 타격 받을 일도 아니다. 대필 계약이 성립되는 순간부터 대필 작가에게 의뢰자는 그 자체로 정의롭고 아름답다. 주변의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그저 주변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대필자가 그저 무턱대고 좋게만 기록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음 호에서는 대필 작가의 또 다른 역할에 대해 짚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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