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시(詩)로 찾아가는 석굴암

붓다의 눈에 비친 석굴암, 한 편의 시이자 한 권의 경전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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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 본존불. <사진=석굴암 홈페이지>

나보단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 나와서
어둠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사랑한다고...
이 한마디 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인제는 고향에 돌아갔으면!
-미당 서정주의 시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부문


↑↑ 십일면관세음보살. <사진=석굴암 홈페이지>

-관세음보살의 노래
경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불국사와 석굴암이다. 국보 24호인 석굴암은 불국사와 더불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최고 불교예술의 걸작품이다.

수학과 기하학, 건축공학 등 고도의 과학과 뛰어난 균형미와 조형미 등 미적 아름다움의 예술성,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장엄한 숭고미 등 어느 한쪽 뛰어나지 않는 부분이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깝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도 문자라는 예술을 통해 석굴암을 예찬했다. 석굴암을 노래한 시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대표적으로 미당 서정주, 월탄 박종화, 청마 유치환, 가람 이병기, 초정 김상옥, 무산 조오현 스님, 고은, 김후란, 박희진, 오세영 등 근·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은 석굴암을 둘러보고 한두 편씩 시를 남겼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인이 흔적을 남겼다. 언젠가는 한 편 써야지하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필자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에 영감을 받고 마음이 동해서일까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석굴암을 노래한 시들의 시적 대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과 본존불 뒤에 있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이다. 대부분 시인은 본존불을 노래하였으나 의외로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노래한 시인들도 많다. 숨어있듯 석실 안쪽 구경할 수 없는 곳에 있지만, 관세음보살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신라 정신과 서라벌을 가장 많이 노래한 시인으로 미당 서정주와 초정 김상옥 시조 시인을 들 수 있다. 눈 밝은 두 시인 역시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놓치지 않고 노래했다. 김상옥 시인은 ‘석굴암’이라는 연작 시조로 대불과 관세음보살을 노래하기도 했다. 서정주 시인의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는 시 낭송 자리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애송시이다.
 
또한, 월탄 박종화 역시 소설이 아닌 시로 다음과 같이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노래했다.


웃는듯 자브름하신가 하면
조는듯이 웃으셨네
담은듯 열으신듯 어여쁜 입술
귀 귀울여 들으면
향기로운 말씀
도란도란 구으는듯 하구나.

-월탄 박종화의 시 <십일면관음보살> 부문


박희진 시인의 등단작이기도 한 ‘관세음상에게’는 실물도 보지 않고 우연히 손에 들어온 석굴암 십일면관세음보살 사진 한 장을 보고 영감을 받아 스물둘 나이에 시를 썼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자브름하게 감으신 눈을
이젠 뜨실 수도 벙으러질 듯
오므린 입가의 가는 웃음결도

(중략)

미(美)란 사람을 절망케 하는 것
이제 마음 놓고 죽어가는 사람처럼
절호 쉬어지는
한숨이 있을 따름입니다
-박희진의 <관세음상에게> 부문


↑↑ 석굴암 경전 뒤에서 바라본 본존불 모습. <사진=석굴암 홈페이지>

이외에도 경주 옥룡암 이육사 시인과 교류한 신석초 시인의 ‘석굴암 관세음’이란 시를 읽다 보면 리듬을 타고 석굴암 내부 속으로 점점 빨려들게 만들기도 한다.

대불과 관세음보살을 둘 다 노래한 시인으로는 월탄 박종화, 초정 김상옥, 임학수 등이 있다. 이외에도 미술을 전공한 윤범모 시인은 ‘토함산 석굴암’이라는 장편 시집으로 석굴암을 찬양하기도 했다. 대불을 노래한 시인들의 멋진 시들도 많지만 십일면관세음보살을 노래한 시 위주로 몇 편 인용해 보았다.
관세음보살은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무릎 베고 잠들고 싶을 만큼 편하게 다가온다. 이름만 불러도 소원 다 들어줄 것 같은 대자대비의 원력이 어두운 세상 곳곳으로 토함산 아침 햇살처럼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 옛날 김대성이 산꼭대기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새긴 뜻을 편협과 이기심 가득한 현대인들은 알 수는 없겠지만 두 손 모으며 합장하는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둔황을 비롯한 여러 지역 석굴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반도의 동쪽 끝 토함산 석굴암은 불교예술의 결정판이자 끝판왕이다. 방대한 불교사상을 간략하게 압축하고 압축해서 동해가 보이는 산꼭대기 위에 피워올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이다.

붓다의 눈으로 보면 석굴암은 분명 붓다의 마음이자 문장일 것이다. 한 편의 시(詩)이자 한 권의 경전(經典)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석굴암이라는 시와 경전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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