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유추, 상황을 전체적으로 그려본다

달랑 1분도 안 되는 재료를 가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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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할 때 가장 힘든 유형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어떤 대답에건 ‘예’나 ‘아니오’식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유형은 인터뷰하기가 무척 어렵다. 충분한 취재를 하고나서 인터뷰를 시작해도 막상 무얼 물으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취재를 잘 해 왔으니 그걸 바탕으로 대충 써주세요’라고 말하면 갑자기 기가 탁 막힌다. 취재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기본 자료일 뿐이다. 이를테면 겨우 뼈대를 갖춘 정도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야 하는데 대답이 ‘알아서 대충 하슈’ 정도가 되고 나면 코가 맥맥해지는 것이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의뢰자들이 친절하게 상세한 내용을 일일이 다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전개과정을 선연히 기억하기도 힘들거니와 설혹 기억하고 있어도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대필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든 용어가 하나 있다. ‘인지적 유추(認知的 類推)’라는 것으로 약간의 단서를 가지고 상황 전체를 찾아낸다는 의미로 쓴 용어다. 이것은 그야말로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한 작법이다.

내가 책을 써드린 어느 의뢰인이 나에게 이렇게 기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시장에 좌판을 깔고 해삼과 멍게를 팔았어요. 그걸 돕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었어. 피가 철철 났지. 그때 이걸 엄마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되는 거야. 그래서 끝내 말씀드리지 않고 혼자 치료하고 숨겼어요. 그때 내가 철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의뢰인의 표정이 얼마나 숙연해보였던지 인터뷰하는 내 가슴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을 정도였다. 며칠 후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글이 완성돼 그분에게 보여드렸다. 그 분이 글을 다 읽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감탄했다.

“아니 박 작가님은 어떻게 그때 그 상황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써놓았어요. 마치 그 상황을 직접 보신 듯 상세하게 꾸며 놓았어요!”

나는 달랑 1분도 안 되는 재료를 가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써야 했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우선 해당 시장의 모습을 내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는 70년 대 좌판시장의 모습이 잘 저장되어 있어서 그런 류의 시장 모습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좌판에서 부지런히 손님들 상대하고 있을 어머니를 한 쪽에 두고 그 어머니와 말을 주고 받거나 서로 술잔을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이런 배경을 두고 내 상상력이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의 바쁜 모습 한쪽으로 소년이 칼로 멍게를 손질한다. 날씨는 춥고 손은 얼었다. 자연히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시린 손끝을 새파란 칼날이 지나간다. 그때의 섬뜩함이 가슴을 파고 든다. 순간 빨갛게 흐르는 피가 멍게에서 나온 체액과 썪인다. 이어 전해 오는 짜릿하고 날카로운 아픔. 놀라 손가락을 움켜쥐고 순간 어찌할 바 모른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에 여념이 없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스치는 생각. ‘이걸 보시면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실까?’ 소년은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 자리를 떠나 우선 약국으로 달려간다. 상처를 보고 약사가 빨간 소독약과 붕대, 반창고를 내주고는 직접 응급처치까지 해준다. 그런채로 다시 돌아와 멍게를 손질한다. 붕대가 젖을까봐 조심하는 것이 성가신 한편 혹시라도 어머니가 손가락 처맨 붕대를 보실까봐 몸을 한쪽으로 틀어서 멍게를 손질한다.

이런 내용을 찬찬히 기술해 나갔다. 위에서 유추한 내용들을 하나씩 간추려 묘사하고 그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 그 글을 본 의뢰인이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정황과 감정이 그 글 속에 그대로 되살아나서였다.

또 한 명의 의뢰인은 어린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중학교 갈 때, 아버지가 ‘농사나 짓지, 중학교는 말라꼬 가노?’ 카면서 입을 딱 닫아뿌시는 기라. 학교 가서 선생님께 말a씀드렸더니 그 선샘이 집으로 와가 맻매칠이나 아버지를 설득했어. 그래가 내가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카이”

딱 요 정도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썼다. 우선 그 의뢰인의 마을을 가본 나는 전체적인 동네의 배경을 머릿속에 스케치하고 의뢰인의 집 구조도 그려보았다. 아버지와 이야기 할 때의 초등학교 6학년을 내 마음속에 등장시켰다. 매일 일손 바쁜 아버지의 모습 한편으로 가난한 아버지의 어쩔 수 없이 완고해진 심정도 살펴보았다. 아이의 조심스런 부탁과 그것을 단숨에 잘라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 그 표정이 어떠했을지를 그려 보았다. 이튿날 학교에서 풀 죽은 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던 아이의 심정과 똑똑한 아이에게서 진학을 포기한다는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 두 사람 사이에 흘렀을 처연한 마음들을 다시 그려보았다.
 
그로부터 매일 가정방문을 오는 선생님과 아버지의 실랑이를 그렸다. 선생님의 집요한 설득과 생활형편으로 인해 차마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을 뒤쪽에 숨어 숨죽이고 듣는 아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차곡차곡 그려보았다. 그정도 되면 아들이 영특하고 공부에도 남다른 재질이 있었을 것이 뻔하니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혜택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런 며칠의 과정이 주변 정황과 시골의 풍경과 세 사람 사이에 오고간 대화, 표정 등으로 묘사됐다. 이윽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 아이의 환희와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선생님의 미소, 자신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아들을 속 시원히 진학시키지 못한 미안함에 허락은 하면서도 끝내 시선을 다 주지 못했을 아버지의 표정도 포함됐다.

결국 그 대목을 읽은 의뢰인도 눈물을 ‘뚝’ 흘렸다. 나중에 그 의뢰인이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편 읽었는데 도중에 왈칵 눈물을 흘려 좌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눈물을 쏟은 적도 있었다. 그 상황들을 내 가슴에서 고스란히 유추하고 세세히 묘사한 결과가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그런 성공적인 사례들도 많았지만 전혀 엉뚱하게 유추해 글 전체를 확 드러내고 다시 쓴 적도 있다. 어느 의뢰인이 아주 큰 음식점을 경영했는데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지 않아 혼자서 상상의 날개를 폈는데 그게 보기 좋게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의뢰인은 한강의 어느 멋진 강변에 건물을 빌려 카페 겸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주 대박나게 잘 되어 2호점을 다시 냈고 급기야 자기 자신이 직접 집을 지어 유명한 한정식 식당을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그 의뢰인이 하도 급하게 일을 의뢰하느라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분의 평소 신념과 이력 등을 고려하고 잘 되는 식당의 일반적인 모습들을 유추해서 글을 썼다. 위생관념, 직원들과의 화합, 고객에 대한 응대요령, 식자재에 대한 청결도 등 내 전공의 한 분야이기도 한 식음료 부분의 잣대를 일괄적으로 적용해 글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의뢰인이 고개를 절절 흔들더니 급히 자기 부인을 만나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다른 내용은 다 그만두고 그 큰 음식점을 오로지 부인이 혼자서 다 감당해낸 것이었다. 직원도 없이 오로지 부인의 솜씨와 차포상마 다 뗀, 한 마디로 엄청난 노력으로 꾸려진 식당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혀 뜻밖의 반전이었다. 유추의 한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어이없는 반동이기도 했다. 글을 고쳐 쓰면서 나는 그 의뢰인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의뢰인은 마침 내 선배이기도 했다.
“형수님은 일반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조자이십니다. 이 책은 차라리 형수님 책으로 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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