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취재는 훌륭한 대필의 기본 조건 !

“이런 것까지 찾아 내다니..., 이건 나도 잊었던 일입니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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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 이뤄진 다음부터는 당연히 인터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한 가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의뢰자에 대한 취재다. 초보 대필작가들이 종종 겪는 실수가 인터뷰할 때 무턱대고 의뢰자의 이야기만 듣고 쓰면 되는 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대필의 기본을 모르는 일이다.

여러 번 지적했듯 의뢰자는 자기의 기억을 과신하지만 따지고 보면 많아야 30개 안팎의 사건을 기억할 뿐이다. 50~60개의 소재가 있어야 책 한 권의 분량이 나온다고 했을 때 나머지 20~30개를 보충하는 것을 결국 대필자의 몫이고 당연한 역할이다.

그 20~30개의 소재는 결국 취재에서 나온다. 보통의 경우 자서전을 쓰겠다는 사람은 그런대로 자기의 인생에 자신감을 가진 인물이다. 예술인, 경제인, 체육인, 종교인, 공직자, 정치인 등 누구라도 자기 나름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일일이 자기의 업적이나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대필작가는 이런 것들을 인터뷰 전에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인터넷상에 많은 뉴스와 정보가 공개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의뢰자가 SNS를 오래 해온 사람이라면 취재하기에 더 좋다. 그러나 이런 일을 소홀히 하고 인터뷰에 임하면 그 인터뷰는 의뢰자 중심의 매우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진행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처음 대필 세상에 뛰어든 이유도 사실은 이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나의 경우 오랜 기간 지방신문 서울 취재본부장을 맡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터뷰를 단 한 번도 아무 준비 없이 진행한 적이 없다. 비록 200자 원고지 12~13매 내외의 간단한 인터뷰일망정 해당 인물에 대해 미리 다각도로 조사한 뒤에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런 준비는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물론 인터뷰 대상자로부터 보다 세부적인 사항을 끌어내는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인터뷰할 기자가 자신을 잘 알고 찾아왔다고 생각하면 인터뷰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하고 안심이 된다. 자신을 잘 알고 온 만큼 마음을 여는 것도 훨씬 쉽고 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대필작가로 활동하던 초기, 내가 대필한 어느 정치인은 이런 점에서 나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기도 했다. 경제통이었던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초적인 경제학 공부를 좀 해야겠다 싶어 당시의 국내외 경제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고 용어들도 최대한 숙지했다. 그 의뢰인이 국가예산을 다루던 분이라 일부러 국회에서 예산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따로 공부했다. 대학시절 경제학을 공부하기는 했지만 원론 수준에 그쳤던 나에게 그 당시 한 달 남짓 익힌 경제공부는 그 대필 작업에서뿐만 아니고 내 인생의 경제지식에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그분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지식에 대해 깜짝 놀랐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도 척척 알아듣고 그에 관해 세부적으로 질문하니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해주었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장면들을 또 찾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그분의 작업은 내 대필인생에 매우 큰 전환점이었으며 책의 수준도 굉장히 높았다. 당연히 책이 나온 후 그분의 만족도도 최상급이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매달린 작업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취재를 제대로 하고 나서 인터뷰를 하면 기존의 취재에서 만날 수 없었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인물을 훨씬 더 자세하고 품격있게 보도할 수 있는 구실도 생긴다. 이런 취재 작업은 기사를 쓸 때 방향성을 미리 잡을 수 있도록 해주고 기사를 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인터뷰는 취재한 사실을 확인하고 첨가하는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 취재만 잘 해도 쓸 이야기가 넘친다는 뜻이다.

취재를 잘해 놓으면 의외로 의뢰인조차 잊어버리고 있거나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을 거꾸로 강조해줄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내가 대필해드린 어느 지자체단체장 후보는 자신이 그 지자체의 부구청장을 지내면서 시행했던 다양한 일들에 대해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보다 단순히 자신이 재임 기간에 일어났던 일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부구청장이라는 위치가 구청장이 시행하는 많은 사업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데 더 역점이 있어서였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결재를 거쳐 진행한 일인 만큼 무관한 일은 아닐 것이고 더구나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부구청장의 역할이 구청장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점을 중시한 나는 해당 사항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당시 기술적으로 필요했던 일들에 대해 일일이 질문했다.

그러자 그 의뢰인의 말문이 술술 열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상세히 열거한 것이다.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도 남았다.

“아, 박작가님, 이런 일까지 조사해 오셨을 줄 몰랐습니다.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걸 찾아오시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 의뢰인인 진심으로 나를 인정해서 한 말이었다. 당시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취재를 열심히 하고 다녔던지 그 지역의 경제, 문화, 노동, 교육, 환경 등에 대해 훤해졌다. 책 속에 그런 이야기들이 온전히 반영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분의 경우 인터뷰할 때 무엇을 물으면 ‘예’ 혹은 ‘아니오’식으로 대답하는 매우 어려운 스타일이었는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도 ‘취재’였다. 묻는 사람이 철저히 준비돼있으니 답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 수준에 근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책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도 철저히 취재에 기반한 책이었다. 그 책은 기본적으로 경주최부자댁 종손이신 최염 회장님과의 대화를 기초로 했지만 그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취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다섯 살 때 이사 가서 살았던 교촌의 집이 경주최부자의 후손이 살던 ‘구세댁’이었고 그때부터 경주최부자댁 주변에서 맴돌며 살았던 나는 경주최부자댁에 관한 한 타고난 취재자였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온갖 모습들은 내 질문의 중요한 자료였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서 여쭈어보았던 다양한 질문들, 이를테면 무엇을 먹고 무슨 옷을 입었고, 함께 산 사람들은 누구였고, 과객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노비들은 몇이었고 어떻게 소통했고 최부자댁의 주산물은 무엇이었고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들은 그 이전에 출판 된 수십 종의 경주최부자 관련 책에서는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새롭고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그때도 최염 회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박 사장은 내가 다 잊어버렸던 일들을 기억하게 해주었네. 그간에 누구도 이런 이야기들을 물어본 적 없었으니 나도 대답할 기회가 없었거든. 이런 일이 있었던 것조차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지”

내가 최염 회장님께 미주알고주알 여쭈었던 말씀들은 어렸을 때부터 ‘저 담장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내 의문의 원초적인 물음이었고 회장님이 대답해 주신 많은 이야기들은 다시 그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보충 취재를 더해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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