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화에서 활용·보존까지, 애환의 역사 ‘경주경마장’

경마장 계획 백지화 후 20여년 만에 활용 길 열려
실패사례 반면교사 삼아 지역발전 밑거름 되도록 해야

이상욱 기자 / 2022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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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7월 8일자 7면-경주가 경마장 건설 최적지로 선정되며 시민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경주경마장 건설 전면 백지화! 경주시민들에게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아픈 상처 중 하나다.
경주경마장과 얽힌 역사를 본지 과거 보도를 중심으로 간략해보면 이렇다.

지난 1991년 정부는 지방경마장 건설사업계획을 수립해 공모 수순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이 사업을 신청해 부산 등 여러 지자체와 유치 경쟁을 벌였다.

이어 1992년 경제성, 접근성, 유발효과 등을 기준으로 한 입지선정 용역결과 경주가 경마장 최적지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당시 정부는 입지 선정을 미뤘다.

그리고 2년 뒤인 1994년 3월 18일 당시 YS정부는 1998년 준공을 목표로 경주경마장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95년 9월부터 한국마사회가 손곡동 및 물천리 일대의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주경마장 건설은 기정사실화되면서 지역민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하지만 1996년 매장문화재 발굴문제가 대두되면서 경주경마장 조성이 백지화된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 중요한 가마와 고분 및 토기 등이 다량 출토되면서 경주경마장 조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

↑↑ 282호 1996년 6월 12일자 9면-경마장 부지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면서 경마장 건설에 부정적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8년 DJ가 경남도청을 방문해 부산, 경남지역에 시·도민이 공감하는 장소에 지방경마장 건설을 지시하면서 경주경마장은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이후 당시 지역 국회의원과 시장, 도의원, 시의원을 비롯해 경주경마장사수 시민단체들이 ‘경주경마장 사수’를 외치며 대정부 투쟁을 벌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392호 1998년 10월 28일자 1면-사실상 정부가 경주경마장 백지화 수순을 밟자 시민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경주시민들의 반발과 함께 지역 정치권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당시 지역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
 
경주경마장 건설 계획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문화재청이 이곳 일원에 대한 사적 지정이었다. 문화재청은 2001년 2월 경마장부지 96만5000㎡중 87%에 달하는 85만3000㎡를 한 차례 보류 끝에 사적 430호로 지정고시해 경마장 부지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문화재위원회의 경주경마장 예정부지에 대한 보존결정으로 경마장 건설의 무산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러자 당시 이원식 시장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시민단체들은 강경투쟁을 펴기로 하는 등 반발은 확산됐다.

↑↑ 470호 2000년 7월 24일자 1면-정부의 경주경마장 백지화에 반발하며 지역 국회의원과 시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이 시장은 지난 199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경주지역에 주요 국책사업을 원만히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그해 8월 21일 민주당에 입당했었다.
경주경마장 건설 무산에 따른 지역정서를 전하기 위해 탈당을 감행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반발에도 경주경마장 건설은 결국 백지화됐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후폭풍은 오랜 세월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경주경마장 부지는 사적지로 남아 황무지로 방치돼왔고, 그렇게 2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 494호 2001년 2월 12일자 1면-경주경마장 무산에 따른 지역정서를 알리기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식 전 시장.

-사적 지정으로 무산된 지 20여년 만에 보존·활용 방안 찾아
지난 2020년 12월 18일 경주경마장 조성을 하려던 손곡동 및 물천리 일원의 부지를 정비·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문화재청의 사적 지정 후 무려 20여년이 지나서야 정비·활용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 한국마사회는 이날 ‘경주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 보존·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는 마사회 소유의 손곡동·물천리 유적 84만5035㎡를 매입하고, 비사적지인 82필지 8만3303㎡는 한국마사회가 경주시에 무상양여하기로 했다. 부지 매입비는 약 120억원. 문화재청이 이중 70%인 84억원, 경북도는 15%인 18억원을 지원하고, 경주시는 2023년까지 3년에 걸쳐 모두 18억원을 투입키로 해 재정 부담을 덜었다. 그리고 협약대로 2021년 3월엔 경주시와 한국마사회가 손곡동과 물천리 유적의 기부채납 및 토지매입 계약을 체결했고, 부지 소유권을 경주시로 이전했다.

이제 남은 것은 내년 3차 토지매입비 지급과 이곳 부지에 대한 기본 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완료하고, 유적의 보존과 활용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 1469호 2020년 12월 25일자 2면-20여년 만에 경마장 부지 활용 가능성을 보도했다.

오랜 세월 방치돼왔던 이곳 부지를 활용 가능하도록 한 경주시의 행정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재보호구역 내에서의 보존·활용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협약대로라면 문화재청은 유적에 대한 현황조사와 보존·활용 종합계획 수립 등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한국마사회는 말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과 문화체험 등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제공하기로 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유적의 기초조사, 정비종합계획을 수립해 사업 시행의 역할을 담당한다.

경주시에 따르면 현재 이와 관련한 용역이 마무리단계에 있다고 한다. 타당성 있고, 문화재와 연관한 사업계획을 당초 계획에 반영해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랜 세월 시민들의 가슴에 담겨왔던 애환을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지역발전을 한 단계 앞당길 수 있는 국책사업의 유치는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국책사업 무산 후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 같은 교훈을 던져준 사례가 경주경마장일 듯하다.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역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갈등과 반목보다 위기를 헤쳐 나갈 지혜를 모으는 일이 우선되길 바라본다.

지난 1994년 경주경마장 조성 본격 추진과 백지화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2020년 보존·활용의 길을 연 업무협약 체결까지의 보도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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