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읽게 만드는 명장면 20선과 본문 앞의 머리글

‘명장면 베스트 20’ 혹은 ‘미리 보는 책 속의 책’ 같은 제목을 걸고
책의 중요한 내용 일부를 앞쪽으로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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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내용을 간추려 썼고 목차를 정하고 관련 글을 한 데 묶었고 추천서와 추천사도 확정했다. 이제 표지를 만들고 색인을 붙이면 이 책에 필요한 모든 작업이 끝난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 더, 책을 좀 더 재미있게 다듬어서 내 놓으면 좋지 않을까?

사실 자서전은 굉장이 재미 없는 책이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나 이슈의 중심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책이 자서전이다.
 
소설이나 희곡, 시나리오 같은 재미있는 책이나 전문인들의 보는 전문 서적들이 아니라면 이런 자서전은 대부분 자기 만족으로 내는 책이다.

그래서라도 더 관심 끌 만한 자료들이 필요하다. 아니면 이 책을 가져 간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읽게 하거나 최소한 읽은 척 할 수 있는 근거라도 남겨두는 것이 어쩌면 재미없는 책을 가져간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작은 트릭들이 책 속의 좋은 내용들, 재미있는 부분들을 책 앞에 요약해 꺼내 놓는 것이다.
 
‘명장면 베스트 20’ 혹은 ‘미리 보는 책 속의 책’ 같은 제목을 걸고 책의 중요한 내용 일부를 앞쪽으로 뽑아서 정리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3~4줄자리로 20여 개의 요약글을 꺼내 앞쪽에 배치해 놓고 그 글을 떼온 페이지를 붙여 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우선 그 내용에 끌려 본문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다는 읽지 않아도 상당부분 본문을 들여다 보게도 된다.

또 하나의 장치가 갈 글의 단락에 앞서 본문의 핵심 내용이나 재미있는 내용을 뽑아 글 앞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것을 머리글이나 리드 글쯤으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인데 이렇게 해 놓으면 독자들이 일부러 책을 읽지 않고도 책 본문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또 이 머리글로 인해 관심이 생겨 본문을 읽게도 된다.

이 방법은 내가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때 처음 써먹던 방법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한때 daum의 매우 각광 받는 우수 블로그였다.
 
내 글은 매일 1~2만 명이 찾아왔고 어떤 때는 하루 10만 명 이상이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 쓴 대부분의 글들은 200자 원고지로 치면 대부분 20장 이상 되는 긴 원고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칫 내 글이 길어 지레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고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본문을 간략히 요약해 글 머리에 다른 색 글씨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머리글은 본문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켜 댓글 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글을 읽고 난 후 댓글을 달곤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1500편이 넘었는데 그중 일부를 책으로 내면서 자연스럽게 책에도 본문 앞에 머리글을 붙여 출판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내가 뒤에 대필작가로 활동하면서 써준 대부분의 책이나 우리 출판사에 펴낸 모든 책은 반드시 머리글이 들어가도록 편집했다. 우리 출판사가 펴낸 책은 대부분 정치인들의 자서전인데 정치인들의 책이런 면에서도 이런 머리글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 자서전은 그냥 단순히 인사로 사주는 책들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유명한 정치가가 써도 그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책을 사주는 것은 그야말로 인사 삼아 사주거나 유력한 정치인에게 줄 서기 위해 사줄 뿐이다. 그러니 책을 사는 즉시 어디 처박아 둘 뿐 제대로 읽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해당 정치인에게 최소한 책 읽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책을 일일이 다 읽기는 따분하고 벅차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고안한 이 머리글은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아이고 의원님. 책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어요!!”

실제로 어느 국회의원 출판 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고 책을 펴내고 난 뒤 그 국회의원이 여러 사람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정말 읽었을까 싶어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느냐고 물어보니 본문의 내용을 콕콕 짚어가면서 이야기 해 주더란다. 책의 구성상 앞쪽의 명장면 베스트20이나 본문 앞의 머리글만 읽어도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편집해 놓았으니 이런 효과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국회의원이 처음 책을 펴낼 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소한의 페이지로 책을 내자고 했는데 뒤에 책을 다 써놓고 이런 내용을 보강하자고 했을 때 군말없이 동의했다. 그 효과를 제대로 본 셈이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정성스럽게 쓴 글을 꼭꼭 씹어서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한 번은 어느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 대놓고 정말 책을 읽었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내가 책 펴낸 출판사 대표인데 정말 책을 읽었냐?’며 조심스럽게 답해달라고 묻자 책 앞에 발췌해 놓은 ‘명작20선’을 보고 책 내용을 알았다거나 머리말을 보고 책 내용을 짐작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아가 그것을 보고 내가 의도한 대로 실제 몇 대목을 읽어보았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책을 출판한 입장에서는 책을 정말 읽었나 읽지 않았나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획 의도가 적중했느냐 하는 게 더 큰 관심 사항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훌륭한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어 그 뒤로 이 트릭을 꾸준히 적용해서 책을 펴냈다.

단순히 목차를 둔 것보다 목차 앞 혹은 목차에 이어 ‘명장면 베스트 20’ 같은 것을 두면 열독률이 훨씬 증가하고 본문에 단락마다 일일이 머리글을 올리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글과 책에 대한 반응이 좋았으니 당연히 이를 따를 수밖에!

특히 이런 트릭은 책을 펴내는 해당 정치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대강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면 100이면 100 모두 그렇게 하자고 찬성한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든 자신의 공을 시민들이나 유권자들이 제발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치인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정성스럽게 쓴 글을 꼭꼭 씹어서 읽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실 이렇게 하면 책의 내용에 따라 최소한 8p에서 16p는 쉽게 늘어난다. 4p단위로 올라가는 것은 책을 묶는 방법 상 종이를 접어서 철하게 되어 무조건 4p씩 늘어난다.
 
결국 이렇게 늘어난 분량은 인쇄비에서 그 만큼의 비용이 올라간다. 그러나 일생에 한 번 내는 책에 이 정도를 아낄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글을 읽게 만들기 위해서 늘어나는 책의 페이지가 더 있더라도 기꺼이 비용으로 감당했다.

물론 내가 쓰고 펴낸 ‘The 큰 바보 경주최부자’도 이런 트릭을 충실히 배치했다.
 
이 책에는 경주최부자에 대해 내가 새로 발굴한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숨겨져 있던 놀라운 이야기들 - 명장면 20선’이라는 제목으로 단락을 따로 꺼내 나열했고 본문 모두에 머리글을 붙였다. 그리고 이 트릭은 어느새 어떤 출판사에도 없는 ‘두두리 출판사’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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