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은 왜 무산됐나?

종교계·국립박물관 반대 입장에 부딪혀
건립부지에는 원지 등 주요 유적 발굴

이상욱 기자 / 2022년 0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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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6년 11월 문을 연 황룡사 역사문화관.

본지 1989년 12월 22일자(제2호) 발행신문에는 황룡사 구층목탑을 형상화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현재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과 시행령이 제정돼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사업 계획이었다.

당시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신라 최대 가람인 황룡사지 종합전시관이 구층목탑형으로 120억원의 예산을 들여 높이 80m 규모로, 1992년 착공해 1997년 완공된다’고 전했다.

↑↑ 본지 발행 제2호에는 황룡사지 동남쪽 부지에 ‘황룡사지 전시관’을 건립한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건립 위치는 황룡사지 동남쪽 바로 옆 부지 5000평, 연건평 1450평 규모로 신축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전시관에는 4만여점의 황룡사지 출토 유물과 경주지역 중요문화재를 전시하고, 관광효과를 높여 국민교육도장으로 활용하게 된다고 했다.

황룡사지 전시관 층별 세부 계획으로는 지하층과 2·3층은 전시실, 1층은 공개홀로 사용한다. 4~6층은 휴식공간, 7~9층은 전망대로 쓸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건축 방법으로는 외형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뜨고, 내부는 현대 건축기법을 사용하며, 목재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철물골조와 알루미늄 등을 사용해 짓게 된다고 했다.

기사에는 1976년부터 1983년 12월까지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황룡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를 비롯 탑지, 강당지, 화랑지 등을 확인했고, 금속류 2000점과 기와벽돌류 3만4000여점 등 총 4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하지만 전시공간이 없어 그동안 방치해 온 상태라고 했다.
당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을 수립한 곳은 경주시다.

시는 황룡사지 구층목탑을 복원하기로 했으나 현대의 기술 수준으로는 목재 구층탑 건립이 어려운데다 정확한 고증이 되지 않아 복원 대신 전시관을 건립하기로 했다는 입장도 전했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황룡사 구층목탑 복원의 핵심인 기술 수준이나 고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이 기사에서도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당시 기사대로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더라면 이미 1997년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이 완료돼 현재 경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을 것 같아 아쉬움이 적지 않다.

-전시관 건립 종교계 반대 입장에 부딪혀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계획은 경주시의 의도대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어오다 지난 1994년 8월 24일자(제215호) 본지 발행신문에는 당해 예산에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을 위한 용역비로 1억5000만원이 편성돼있는 기록이 나왔다.

하지만 4년여 뒤인 1998년 2월 4일자(제358호) 신문에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 기사가 나온다. 경주시가 추진하는 황룡사지 전시관이 불교계의 반대 입장에 부딪혔다는 것.

신문에는 당시 불교문화계가 “이는(황룡사지 전시관) 자칫 황룡사 구층목탑이 갖는 종교성과 역사성 등은 무시되고 관광용 볼거리나 교육용 전시실로 전락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황룡사터에 전시관을 세우는 것은 유물과 현장답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앞으로 문화재위원회에서 외형과 건립위치만 결정하면 된다”며 무리가 없음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또 이 보도에서는 황룡사지 전시관 착공을 1999년, 완공은 2008년으로 기록했다. 1998년 보도된 당초 1997년 완공 계획에서 11년 늦어졌다.

-국립박물관도 전시관 건립에 반대
황룡사지 전시관이 종교계 외 또 다른 장벽이 있었던 것을 시사하는 인터뷰도 있었다. 지난 1998년 2월 25일자(제361호) 발행신문에서다.

본지가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장이었던 강우방 관장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으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추진과 관련해 불교 문화계의 반대 입장을 전하는 기사.

황룡사지 전시관 등 건립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강 관장은 “그러한 문제의 발상부터 어이없는 일이지만 어떻게 (경북)도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절차 없이 시작단계에서 (건립 계획)발표를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사업이라면 당연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취급할 문제이며 문화재관리국의 절차를 충분히 거쳐서 발표가 되어야 시행할 수 있는 일을 지방차원에서 발표를 하다니 도저히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요. 만약 황룡사터에 전시관이 세워지면 소중한 문화유산은 또 하나 영원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을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립박물관의 속내가 드러나는 내용의 기사도 검색을 통해 찾아볼 수 있었다.

2014년 9월 1일 연합뉴스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전략··· 이 분황사 동편 원지가 한창 발굴조사가 이뤄지던 무렵,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국립중앙박물관장 출신 한 지도위원은 아예 공공연히 이런 말을 했다.

“황룡사지 전시관이 들어서면 국립경주박물관이 죽는다. 누가 (황룡사 유물을 보러) 경주박물관을 찾겠는가?”

당시 문화재계에 영향력이 막강했던 그는 문화재위원이기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이런 논리는 유적 보호라는 그럴 듯한 명분과 결합해 경주에 제2의 국립박물관(전시관)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게 만든다 ···후략···』
한마디로 제 밥그릇 챙기기였다.

-건립 부지에 수많은 유적 쏟아지며 결국 무산

황룡사지 전시관이 무산된 또다른 결정적 이유는 건립 부지에서 유적이 무더기로 발굴되면서다.
2001년 11월 19일자(제531호) 발행신문에서는 당시 발굴현황을 보도했다.

↑↑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부지에 원지를 비롯해 수많은 유적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안압지와 용강동 원지(苑池)에 이어 3번째 원지와 중요 유적이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부지 내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원지와 축대, 배수로, 정원의 외곽 담장, 우물 등 중요 유적과 금동판불(金銅板佛) 등이 출토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소측은 또 현재까지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귀면와, 연화문 막새 등 기와와 벽돌류 400여점, ‘관병(官甁)’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와 그릇 67점, 금동제판불 등 금속제 26점, 활석제 용기 등 모두 545점이라고 밝혔다.』

당시 수많은 유적이 출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 추진 동력도 점점 꺼져가고 말았다.

-황룡사 역사문화관 활용방안 수립 서둘러야

우여곡절 끝에 황룡사지 전시관 대신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지난 2013년 착공해 2016년 11월 19일 문을 열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황룡사터 인접한 부지 1만4000여㎡에 연면적 2865㎡ 2층 규모의 한옥 건물로 지어졌다. 내부에는 황룡사의 상징인 9층 목탑 10분의 1 크기 모형을 전시한 목탑전시실,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 전 과정을 담은 3D입체 영상실,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역사전시실 등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개장한지 6여년이 지났지만 정작 이곳을 찾는 시민 및 관광객은 많지 않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건립 당시 문화재 훼손 등 논란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주의 역사문화관광자원이다. 먼저 유적 전시, 공연, 문화재 활용 사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해 국민적 관심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라역사의 정수이자, 천년고도의 정체성이기도 한 황룡사 복원의 염원을 모으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비록 제2의 박물관이 될 수 있었던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계획은 무산됐지만, 당시 행정에서 시도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주고 싶어 하는 시민들이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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