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모리사키 가즈에의 경주-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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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무열왕릉 전경.

경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본인의 책을 우연히 경주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도서 반납일이 경과될 때까지 수중에 두고 싶은 책이었다. 닭이 알을 품듯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은 작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리사키 가즈에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17세까지 대구와 경주, 김천에서 성장했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는 그녀가 성장한 조선에 대한 회고록이자 수기이다. 책머리 서문에 ‘조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이 무겁다’라고 말했듯 피식민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 불편한 것이 많고 원죄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소녀 눈에 비친 조선은 어머니처럼 따스했다. 나의 원형은 조선이 만들었다고 할 만큼 조선의 마음, 조선의 풍물과 풍습 그리고 자연환경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책 속에는 대구와 김천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특별히 경주에 대한 작가의 유별난 애정을 엿볼 수가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오래된 도시 경주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그녀의 아버지 모리사키 구라지는 교사였다. 대구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1938년 경주중학교 초대 교장으로 오게 되었다. 건물도 지어지지 않은 학교로 오게 된 것은 이규인 선생과 수봉 가문의 강력한 개교의 의지 때문이었다.

↑↑ 태종무열왕비-모리사키 가즈에는 무열왕릉 비석을 만져보며 이를 만든 옛 신라인에게 감탄했고, 신라 왕릉에 절을 올리기도 했다.

모리사키 가즈에가 경주에 와서 처음 나들이 간 곳은 신록이 한창이던 어느 봄날 무열왕릉 산책이었다. 서천을 건너 기와 조각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밭을 지나 도착한 그곳에서 멀리 토함산 정상과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주평야를 바라보기도 했다. 무열왕릉 비석(국보 25호)을 만져보며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목 부위를 불그스름하게 만든 옛 신라인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신라 왕릉에 절을 올리기도 했다.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이 삼국 통일 이야기와 신라 시대 이곳 도읍지에서 불국사까지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기도 했다.

↑↑ 모리사키 가즈에가 경주에서 처음 나들이 간 곳으로 전해지는 무열왕릉. 이곳에서 토함산 정상과 경주평야를 바라보며 신라시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다음은 오릉으로 갔다. 문천과 서천이 합해지는 부근, 솔밭으로 둘러싸인 다섯 개의 왕릉을 보며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고 했다. 천년 전 왕과 왕비의 목소리를 들리는 듯하여 이내 조용해 졌다고 했다. 경주를 떠올리면 이날의 정적이 되살아나 감회에 잠긴다고 했다. 이외에도 포석정과 계림, 반월성, 안압지 등을 둘러보곤 했다. 특히 석굴암에서는 대불보다는 벽면 부조 불상을 더 좋아했는데 꿈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여러 번 찾아왔다고 했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좋아했던 당시 경주 박물관 관장 오사카 긴타로는 <경주의 전설>이라는 책을 만들었고 어린 그녀도 그 책 선물을 받았는데 오래도록 애지중지했다. 오사카 긴타로는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수막새가 국내로 다시 귀환하도록 큰 힘을 보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에밀레종(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소녀에게 많은 감흥을 가져다준 것 같다. 어린아이가 흐느껴 우는 듯한 공명(共鳴)의 음색이 꼭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명받은 듯했다.

↑↑ 성덕대왕신종-어린아이가 흐느껴 우는 듯한 공명(共鳴)의 음색이 꼭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로 들린다는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책 속에는 경주 장날에 대한 풍경도 많이 등장한다. 엿장수 가위소리, 약초 파는 사람들, 둥근 도자기 요강을 파는 상인, 그리고 분황사 주변에서 떡메치기하는 장면과 여동생과 걸어갔던 감포로 가는 포플러 가로수길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었다.

어머니와 북천에 자주 갔고, 들꽃을 꺾어 오기도 했다. 북천 건너 경주 이씨 선조가 강림했다는 표암에서 바라본 경주중학교와 안압지, 반월성과 남산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남산은 뿌옇게 보랏빛이 돌고, 딩구는 돌에는 자수정이 박혀있고, 성스런운 그 산은 그녀의 아버지도 남산에 묻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1943년 4월 초 벚꽃 필 무렵 그녀의 어머니가 서른 여섯 살에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 학교 관사에서 혼불이 빠져나가 남산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경주중 1학년 학생이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어머니의 혼불이 경주 남산 어딘가 있는 듯하여 그녀의 책 속에 ‘혼불’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던 것 같다.

↑↑ 모리사키 가즈에는 북천 건너 경주 이씨 선조가 강림했다는 표암에서 경주중학교와 안압지, 반월성과 남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사진은 현재 표암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이다.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녀의 어머니는 경주에서 죽었고 에밀레종 소리에서 엄마를 부르는 어린아이 소리를 들었던 것이 책 제목으로 정해진 결정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어판 부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한 일본인의 수기’이지만 일본 원서에는 ‘나의 원향(原鄕)’일 만큼 경주는 그녀에게 특별했던 것 같다.

↑↑ 무열왕릉에서 바라보는 남산. 모리사키 가즈에는 그 예전에는 무열왕릉에서 멀리 토함산 정상과 훤히 내려다보이는 경주평야를 바라보기도 했다.

1968년 그녀는 수봉재단 창립 30주년 행사에 초대 교장이었던 아버지 대신 초청받아 각별한 후의를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모리사키 가즈에는 주로 탄광촌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페미스트 작가이다.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글을 썼으며 이 책 외에도 한국에 관한 여러 편의 책을 썼다. 비록 짧은 5년간의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 경주는 어머니처럼 영원히 그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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