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짧고 쉽게, 한자어X, 인용 없이, 순서대로 !!

“어쭙잖은 저자들의 대부분 책은 출판사 직원들의 열성에 힘입은 바 크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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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에 이르기까지는 대부분 내용이 취재에 대한 것이었다. 글의 소재를 어디에서 찾아내느냐에 대한 방법들을 다양하게 알아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료가 있어도 이것을 제대로 꿰지 못하면 그 자료는 있으나마나다. 지금부터는 글 쓰는 가장 기본적인 요령에 대해 알아보자.

자서전쯤 쓰겠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자기 자신이 글을 어느 정도는 쓴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아니면 누군가 글 잘 쓰는 사람, 구체적으로 대필작가에게 맡겨 자신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작가를 동원하는 일은 다시 세밀하게 언급할 사안인 만큼 여기서는 자신이 글을 직접 쓴다는 전제에서 살펴보자.

글을 좀 쓰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자가당착이 있다. 가장 많은 오류가 잘 쓰려고 애쓰는 것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가 직접 쓰는 만큼 잘 쓰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이런 마음이 오히려 글의 진도를 방해하고 글을 형편없이 만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오류가 글의 진전을 막을까?
대체적으로 글을 길게 늘여서 쓰는 것, 미사여구를 동원하려고 애쓰는 것, 한자어를 많이 써 유식하게 보이려는 것, 훌륭한 사람들의 글귀나 명언을 빌어 인용하는 것, 사실대로 적지 않고 미화하려는 것,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마구 쓰는 것 등이 글을 망치는 요인이다.

이런 오류들은 자서전뿐만 아니라 글 좀 쓴다는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다. 심지어는 대학교 교수나 책 한두 권쯤 내고 저자나 작가 노릇을 하는 사람들조차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예가 대부분이다. 기업의 임원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글 실력과 상관없이 책을 내다보니 책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책이 최소한의 책답게 나오는 것은 알고 보면 출판사 직원들의 교열과 보충에 힘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경우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책을 낸 저자나 전문가,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에게 원고 청탁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때 막상 글을 받아보면 평소에 책이나 신문에 발표한 글과 직접 써준 글에 상당한 차이가 나 적잖게 당황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글을 고쳐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 처음부터 새로 쓰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든다. 왜냐하면 서툰 글일망정 글쓴이의 의도는 분명히 실려 있으니 그 의도를 살려가면서 글을 고치려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글을 청탁할 때 반드시 이런 조건을 붙인다.

“보내주신 글은 신문사 정책에 의해 부득이 기자가 임의로 원고의 분량을 줄일 수 있고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교정이나 교열을 볼 수 있음을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여기서 교정은 오자, 탈자, 띄어쓰기 등 단순한 내용을 고치는 것을 말하고 교열은 잘못된 글의 구조를 제대로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전제를 달아놓지 않으면 글을 받아놓고 난감해지는 상황이 일어날 경우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분들의 글이 완전히 몹쓸 정도의 글은 아니다. 다만 글의 순서를 제대로 배열하지 못해 중언부언한다거나 문장을 지나치게 길게 늘여 쓰다 보니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뒤틀어져 처음의 주어에 상관되는 술어가 어디에 나오는지 중간에 다시 시작한 주어와 술어의 관계는 어떤지 엉망진창 엉켜버린다. 이렇게 되면 무슨 말을 쓰려고 했는지 의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아내려다 이것저것 인용하다 보니 자칫 인용한 글이 주제를 벗어나거나 마치 ‘나는 이런 것도 알고 있다’는 식의 과시가 드러나며 글이 뻣뻣해지고 부담스러운 경우도 자주 벌어진다. 요즘은 특히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퍼서 쓰는 사람들이 많아 자칫 지적소유권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검증되지 않은 고사성어를 인용해 글을 훼손하기도 한다. 남의 글을 고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일일이 이런 것을 따져서 바로잡으려면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한 번은 어느 학교 선생님에게 그 무렵 일어나는 교육계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청탁했다. 미리 날짜를 정하고 중간에 재확인까지 해드렸는데도 불구하고 데드라인을 넘기도록 글이 오지 않아 속을 끓였다. 결국 몇 시간이 지나 글이 오긴 했는데 부탁한 원고량보다 훨씬 양이 많은 것은 물론 글에 짜임새가 없어서 도무지 실을 만한 글이 못 되었다.

부득이 양해를 구하고 글을 고치려 했더니 정색하면서 자신의 글을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버티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고량에 맞게 글을 줄여 달라고 하니 아무리 봐도 뺄만한 곳이 없으니 신문지면을 늘여보라는 것이었다. 뺄 만한 곳이 없다니... 이런 황당하고 기막힌 자가당착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따를 수도 없었다. 이미 해당 코너에 배당된 지면의 크기를 설명하고 시간이 없으니 부족하나마 내가 직접 글을 고쳐보겠다고 사정하다시피 달래서 결국 글을 고쳤다. 30분이면 쓸 글을 한 시간 가깝게 고치려니 부아도 치밀고 사람 잘못 본 자신이 한심스럽게도 보였다.

일단 송고부터 하고 나서 그 글을 선생님에게 보내드렸다. 고친 글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글에 오류가 많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인정했으니 망정이지 만일 그것마저 부정했다면 영원히 그 선생님과 안 볼 뻔했다. 나중에 그 선생님이 전화해서 자신이 쓴 글로 인해 여러 곳에서 칭찬받았다며 고마워했다. 다시는 어디 글 내지 마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 사람이 있는 반면 정말 글 고수들이 쓰는 글에서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 고수들의 글은 교정이나 교열을 볼 필요도 거의 없을뿐더러 읽는 재미도 보통 아니다. 글 한 편을 읽으면 지식 한 편이 쌓이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이런 글의 공통점은 글의 내용이 대부분 자신의 경험과 축적된 지식에 바탕을 두었고 오랜 글쓰기 훈련을 통해 글을 쉽고 간결하게 쓴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인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인용할 경우에는 논제를 돋보이도록 꼭 필요한 부분만을 매끄럽게 활용한다. 이런 분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자신이 쓸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냉정하게 청탁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글 재료가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솔직하게 알리고 과감하게 펜을 거두기도 한다. 이런 분들은 청탁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청탁만 하면 그 다음에는 아무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글을 제때, 정확하게 분량을 맞추어 어김없이 보내준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나치게 잘 쓰려고 애쓰거나 허세를 부리면 글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자서전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기록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그러나 이게 말보다 쉽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쓰는 글 내용을 자신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으므로 글이 산으로 가건 바다로 가건 다 옳게 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글을 제3자가 읽는다면 도무지 무슨 말을 쓴 것인지 모르게 된다.

자서전을 쓰려는 분들은 지금부터 이렇게 자신에게 주문을 걸자. 그렇다면 글이 훨씬 더 쉽게 보기 좋게 써질 것이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나만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짧은 문장으로 쉽게 쓰겠다. 한자어보다 우리말을 더 쓰고 명언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좋은 글을 인용하지 않겠다. 내용은 순서에 맞게 찬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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