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 살아있는 시간을 박제해 놓은 타임머신

디지털 시대, 체계적인 사진 관리가 더 중요해!!

박근영 기자 / 2022년 05월 12일
공유 / URL복사
↑↑ 50년 전 사진첩은 젊은 부모님과 어린 가족들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 서가에는 부모님이 젊은 시절부터 찍어온 사진들을 모아둔 사진첩이 여러 권 꽂혀 있다. 거기에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부터 우리 가족들의 오랜 역사가 시간별로 다 들어 있다. 이 사진첩을 내가 보관하게 된 계기는 2007년에 내가 쓴 자전적 수필집인 ‘니 꼬치 있나’를 내면서 그 자료사진이 필요해 가져다 두면서부터다. 마침 교촌에 있던 고향집이 교촌 한옥마을 건설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될 상황이어서 무엇이건 잘 모으고 잘 보관하는 내가 사진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낫겠다며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니 꼬치 있나?’라는 책은 내 초등학교 시절 이전의 자서전이라 보면 되는데 여기에는 이 사진첩에서 찾아낸 다양한 사진들이 들어 있다. 책의 배경은 주로 60~70년대 한적하던 교촌과 남천, 반월성과 황남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들로 기술되어 있고 가장 먼 곳이 ‘남흥시장’이라고 불리던 황남시장 언저리와 남산 일원이었다. 마침 우리가족과 아버지의 형제들이 교촌에 들어와 오래도록 모여 살았기에 우리 가족은 물론 우리 집안의 다양한 기록을 사진첩은 거의 완벽하게 보관하고 있다.

이 사진첩을 펼치는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4~50년 전으로 돌아가 잊혀졌던 많은 추억을 불러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인자하신 모습과 젊은 시절의 아버지 어머니. 어렸던 누나와 형들, 늘 붙어다니며 쌍둥이라고 불리던 동생이 촌스러운 모습으로 살아난다. 불알을 다 내놓고 찍은 내 백일 때 사진과 아버지 자전거에 거치한 유아용 거치대에 올라가 웃고 있는 내 유년기의 사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울고 웃고 부대끼며 살아온 가족들의 역사가 사진첩을 펼치는 순간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이다.

이 사진첩 이외에도 내 서가에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찍은 사진과 독립하고나서부터 우리 가족들이 찍은 사진들, 여행사 생활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각종 사회활동을 하면서 찍어온 사진들, 초중고대학까지 졸업 앨범 등이 빽빽이 꽂혀 있다.

이 사진첩들이야말로 내 기억의 보물창고다. 사진첩을 펼치는 순간 그 사진을 찍던 당시의 모습이 선연하게 가슴에 스며들고 그때 일어났던 주변의 일들이 흑백이나 컬러 영화처럼 머리를 스친다. 누구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사진첩은 오래도록 잊고 산 추억의 산물이자 그때 그 순간을 살아 있는 채로 박제해 놓은 타임머신이다. 비록 한 컷의 고정된 사진일망정 그 사진을 찍을 때의 기억은 물론 그 사진 속에 함께 사진 찍은 사람들과의 잊혀졌던 관계와 에피소드까지 사진을 보는 순간 바로 살아난다.

그러니 자서전 쓰기에 사진 만큼 중요한 자료가 또 있을까 싶다. 일기가 오래된 기억 그 자체를 묘사해놓은 그림책이라면 사진은 일기가 저장하고 있지 않은 주변의 이야기들마저 포괄적으로 함유하고있는 다큐멘트리인 셈이다. 자서전 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자료가 또 있을까?

이런 사진첩의 즐거움과 기능이 최근 들어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따지고 보면 사진첩은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시간을 기점으로 거의 그 수명을 다했다. 필름으로 사진을 현상하던 시절에는 사진값을 무시할 수 없어 사진 찍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사진을 보관하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다. 사진첩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고급화 되었다.

그러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현상이 주춤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초고화질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초고용량의 메모리 카드가 개발되어 거의 무제한대로 사진을 찍고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나 노트북, 하다못해 디지털 카메라에도 수 만 장의 사진을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사진과 기록의 봇물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흔한 만큼 소홀해지기 쉬워서 90년대 이전, 일일이 사진을 현상해서 사진첩에 보관하던 것과 달리 디지털 카메라로 무한정 찍어내는 사진들은 특별히 잘 분류해서 저장하지 않는 한 어디에서 헤매다 사라지는지 모를 정도로 함부로 다루어지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어느 때인가 사진 한 장 찾기 위해 스마트 폰에 저장된 만 장 넘는 사진을 다 뒤진 적 있었는데 이러면서 풍요 속의 빈곤을 실감하기도 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이 과연 자서전 쓰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찍는 것에만 열 올리기보다 찍은 후 체계적으로 사진을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대다.

비단 사진첩이 아니라도 오래 보관해온 다양한 물품들도 자서전 쓰기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오래된 취미나 특기,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취미에서 얻은 다양한 부산물이 좋은 자서전 재료가 될 수 있다.

내 경우 어린 시절부터 내 생활 주변의 잡다한 것들을 즐겨 모아놓았는데 이것들이 어느 순간 고스란히 글쓰기의 재료가 되어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받아 놓은 태권도 승급증이나 도복 띠, 중고등학교 교모와 모표, 교련복 탄띠와 수통, 그 시절 학력고사 수험표, 마라톤에 참가하고 받은 기념 메달, 기타 온갖 추억의 기념물들이 있어 가끔씩 그 시절로 나를 이끌곤 한다.

직업이 여행업이었던 관계로 세계를 여행하면서 하나씩 모아 놓은 기념품들도 좋은 추억의 산물이자 자서전 쓰기의 재료가 되어 주었다. 그 기념품과 함께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속에서 일어나 에피소드들이 나만의 특별한 여행기로 따로 쓰여 있을 정도다. 줄잡아 해외 출장 200여 회를 다녔으니 여행기만으로 족히 몇 권의 책이 나올 법하다.

최근 3년쯤은 수석(壽石)을 취미 삼으면서 국내 온갖 탐석지에서 가져다 놓은 돌들도 집안 한쪽에 쌓이게 되었다. 수석을 하면서 돌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나 느낌, 돌 하나하나에 담긴 탐석의 추억과 돌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역시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 인터넷 카페에 쌓이고 있다. 수석과 관련한 글들 역시 수석 카페에 500여 편이나 올라가 있어 이 역시 족히 책으로 낼 만큼 분량이 쌓였다.

자서전을 쓰고자 하시는 분들은 지금 바로 사진첩부터 꺼내 보자. 그것을 펼치는 순간 그 속에 박제해두었던 깊은 추억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 것이다.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 쓸 수 있다면 무엇보다 특별한 자신만의 자서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의 재료는 사진첩이나 오래 보관한 물건들과 함께 생활주변 곳곳에 널려 있다. 다만 그것을 잊은 채 살고 있을 뿐이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