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반 NO, 종이책도 NO 가볍게 시작하자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모아도 자서전이 된다

박근영 기자 / 2022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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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지치기] 내가 쓴 ‘니 꼬치 있나’에는 이런 일상의 이야기들이 실렸다.

자서전이라고 하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인생 전체를 회고하듯 써야 한다고 지레짐작한다.
자서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은퇴한 학자나 직장인, 공무원 등 시간은 남는데 딱히 소일거리가 없는 분들이다.

물론 이들 대부분 건강이나 의욕은 왕성히 남아 있다. 연령대로는 대체적으로 60대 어름. 그러니 적어도 60년 인생을 한꺼번에 돌아볼 생각을 당연히 한다. 그러나 이런 도전은 참 무모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스무 살 청년이 자서전을 쓴다고 가정해도 그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겠는가? 그런데 60년을 한꺼번에 돌아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벅찬 일이다. 그러니 시작도 하기 전에 고만 기가 질려서 포기하고 만다.

-특별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파일과 SNS로 저장하자
그래서 권하는 방법이 가장 찬란했던 인생의 한 부분을 써보라는 것이다. 그 한 부분이란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연령대이기도 하고 특정한 사건에 따른 기억도 될 수 있다.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랄 수 있는 전공 관련 경험이나 지식, 직업에서 일어난 사실성 있는 경험담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는 새로운 전공서로 가치 있는 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굳이 책으로 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도 물론 없다. 21세기는 바야흐로 종이의 시대가 아니고 다양한 저장성을 갖춘 플랫폼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우선 글부터 쓰고 그것을 개인용 컴퓨터나 외장 메모리 등에 보관한 후 한편씩 SNS에 올리는 것을 권한다.

내 경우 블로그 ‘386세대의 아름다운 추억’에 다양한 자전적 이야기들을 테마별로 묶어서 기록해 놓았다. ‘기절복통 초등시절’, ‘좌충우돌 중학시절’, ‘기고만장 고등시절’과 ‘최루탄속 대학시절’ 식으로 각각의 기간을 따로 분류해 에피소드들을 저장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여행사에 근무하거나 직접 여행사를 경영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을 ‘도깨비 여행 이바구’라는 테마를 만들어 따로 썼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담담히 지켜보면서 쓴 일상과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쓴 인터뷰 기록, 시사 칼럼, 문화 칼럼, 시문학 평론 등 1500편의 글을 따로 모아두었다. 뒤에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이 나오면서 이곳에도 2천여 편의 글을 따로 올렸다.

이 과정에서 초등학교 때의 추억담을 ‘금붕어’라는 출판사 제의로 ‘니, 꼬치 있나?(2005)’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이게 내가 전문 작가로 데뷔하는 계기였다. 당시 내가 daum의 최우수 블로그로 활동하던 때였는데 책을 내면서 이제 곧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알고 설레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전문 작가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재주가 탁월했을 것이라 짐작하실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릴 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다는 것 이외에 글 쓰는 재주는 별로 신통치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곧 백일장에 나갔지만 단 한 번도 입상해본 적이 없을 만큼 내 글재주는 형편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글로 어떤 성과를 보거나 인정받은 최초의 사건이 세종대학교 학보사 기자로 발탁된 것이었다. 논술과 기타 상식시험 등으로 진행된 1차 시험에 합격하면서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글을 쓰는구나 싶었다.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체계적으로 글 쓰는 요령이 늘었지만 대학 졸업 후에는 다시 글과 멀어졌다. 그나마 꾸준히 쓰던 일기도 직장생활 시작하면서부터는 술 마시랴 출장 다니랴 일상에서 멀어졌다.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 2003년 인터넷 카페가 생기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닥치는 대로 글을 쓰다가 무언가 보람된 글쓰기를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어릴 적부터의 자전적 경험담이었다. 비록 나의 성장기를 다룬 에피소드지만 우리 시대의 일상도 중요한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때 무엇을 하면서 놀았고 어떤 것을 먹었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학교에 다녔나 등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기억 속에 꺼내기 시작했다. 이 글들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인기를 얻어 하루에 몇만 명씩 내 블로그를 찾는 요즘말로 ‘인싸’가 됐고 그 덕분에 책을 내게 된 것이다.

↑↑ 병뚜껑 놀이하던 추억이 50년 넘었다.

-가족, 의식주, 희노애락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소재들이 줄줄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서전은 인생전반을 주마간산식으로 정리해 단행본으로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려면 차분히 메모장을 꺼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기억들이 있는지를 먼저 정리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메모를 시작해도 도무지 어떤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아 있고 가치 있었는지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럴 때는 역시 구간을 나눈 후 시간을 들여 회고해 보는 것이 좋다. 이때 무턱대고 옛날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말고 유년기, 초등학생기, 중학생기, 고등학생기 식으로 나눈 후 의식주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해서 돌아보면 훨씬 기억나는 일이 많아진다. 대부분 이야기가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 친구 누구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키워드로 정한 후 머릿속을 검색하는 것이 유용하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의식주와 감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좋은 옷을 입었을 때, 등 대한 추억이 기본이 되고 슬펐을 때. 기뻤을 때, 아팠을 때. 화났을 때, 부끄러웠을 때, 미안했을 때 등을 세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좋아했던 친구나 사람, 동물, 소풍, 여행 등 구체적인 단어들을 모티브로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소재들을 찾아 놓으면 자서전은 다 쓴 것이나 다름없다. 일단 소재가 정해지면 이것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기승전결 이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인생을 전부 꺼내 쓸 필요는 없다. 자서전의 전(傳)은 전한다는 말이지 책 전(典)이 아니다. 일부러 드라마틱한 내용을 찾아 머리를 쥐어짤 필요도 없다, 위에서 말했듯 평범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 그게 무슨 재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까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자서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거창한 사람이 쓰는 거창한 사건의 기록도 아니다. 자신의 가장 평범했던 일상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쓰다 보면 그게 의외로 거창해진다. 그게 바로 자서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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