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최고의 관광도시, 체코 프라하에서(2)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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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카를교

▼체코의 가장 아름다운 다리「카를교」를 거닐며

구(舊)시가지 광장에서 10여분 걸으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가 나타납니다. 카를교입니다. 볼타브강을 사이에 두고 신·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 다리지요. 길이가 520미터, 폭이 10여 미터, 바탕에는 네모난 돌들이 박혀있으며, 30개의 조각상이 좌우 난간에 서있어요. 일반 다리와는 달리 구조와 모습이 특이하죠.

카를 4세에 의해 1406년에 준공, 그의 이름을 따서 다리 이름을 지었데요. 처음은 목조 다리였는데 12세기경 볼타브강 홍수 때 유실되어 재건축했다고 해요. 다리 위에는 거리 화가, 악사, 기념품 노점상, 행위예술가 등이 여기저기 관광객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프라하에 오면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하니, 항상 많은 관광객들로 복작거리게 되죠. 앞을 보면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길 주변에 교회건물이며, 중세 오렌지 색의 집들이 사이좋게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어요.

↑↑ 프라하의 볼타브 강

▼프라하의 순교자 성「얀네 포무즈키 동상」

카를교 다리 위에는 체코의 성인 30명의 조각상이 있는 데, 신부 출신인 성「얀네 포무츠」 조각상이 프라하의 순교자 상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왕(바츠라프 4세)이 외부와의 전투로 궁을 비우게 되면서 왕비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그녀의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인 얀네 포무초에게 외도사실을 묻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침묵하자,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화형을 시켜 돌에 매달아 볼타브강에 던져 수장을 시켜요. 얼마 후 부패하지 않고, 강 위에 떠오르고, 그 자리에 5개의 별이 광채를 반짝거리며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신부는 300여년이 지나서 시성을 받았고, 고백자의 성인, 또는 수호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조각상 아래에 있는 이 성인의 동판을 만지면 소원성취하며, 왕비를 만지면 프라하로 다시 돌아온다는 속설이 전해와, 무수한 관람객들이 이를 만져 반들반들해 있습니다. 우리도 모두 소원을 빌며 두 동판을 쓰다듬었습니다.

▼구 시청 청사탑과 천문 시계
구 시청사 남쪽 벽에는 1410년에 만든 천문 시계가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계랍니다. 시간은 물론, 일출·몰 시각, 태양과 달의 위치, 별자리까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매시 정각이면 인형들의 퍼모먼스가 실시 되는 데, 사람 해골이 나와 줄을 당기고 모레 시계를 뒤집으며, 2개의 창문을 통해 12명의 사도의 행렬이 시작되고, 끝날 때 황금 닭이 울고,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최고의 시계와 기이한 율동을 보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고 우리도 함께했습니다. 이 종 제작과 관련된 전설 한 가지가 전해오더군요. -「하누시」라는 시계공이 이 시계를 만들었는데, 시 의회에서 이 시계공이 다른 곳에도 이런 훌륭한 시계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의심해, 이 시계의 유일 보존을 위해 하누시의 눈을 멀게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라하의 봄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소개
(1)프라하 중앙역에 가면 ‘영국의 쉰들라의 동상’이라고 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영국의 금융인 「니콜라스 윈튼」이 1938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어린이를 탈출시키는 데, 기차를 이용해 유대인 애들을 네델란드에 보내고, 다시 배로 영국으로 보낼 계획이 었습니다. 처음 669명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이듬해 250명은 실패했어요. 이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자기의 행적을 알리지 못하고 고히 간직하며 평생을 살았다는데, 1988년 아내가 다락방에 숨겨둔 애들 사진과 명단을 발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에게 훈장과 기사작위를 수여하고, 체코는 명예시민으로 선정하고, 2009년 이곳 중앙역에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가 구한 어린이들에게 딸린 가족이 지금은 6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 가면, 바츨라프 동상 위쪽에 두 대학생의 분신자살 추모비가 있습니다. 1968년 소련의 침공으로 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후, 이듬해 1월 16일 21살의 「안팔라」학생이 옷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한 후, 1개월 뒤 「안자익」학생이 뒤를 이어 역시 분신자살합니다. 타 추념비와는 달리 사람의 모양으로 십자가처럼 땅에 뉘어있는 비석인데, 십자가 왼쪽에 두 학생의 이름과 죽은 날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소련의 침공에 항거하는 젊은이의 분노이지만, 체코 인의 항쟁을 다그치는 열망의 깃발처럼, 그리고 조국을 위해 순직한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이 기사는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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