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내는 순간 당신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박근영 기자가 쓰는 자서전 쓰기 지상강의

박근영 기자 / 2022년 0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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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계옥 님이 손수 쓴 자서전을 남편 박봉현 님과 손자 박진호 씨에게 설명하고 있다.

“자서전 한 번 써보시죠?”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 흔든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자서전 쓸 글 실력이 안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이 무슨 자서전이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자서전이라고 무조건 자기가 쓰는 것이 아니고 대필해주는 사람들도 따로 있습니다. 유명세나 업적은 그럴싸한 허상일 뿐, 어떤 사람의 인생이나 세상이 공감할 만한 드라마는 몇 편은 숨겨져 있습니다”

최근 이런 나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사건이 있었다. 내 어머니 김계옥 님이 2021년 7월, 뜻밖의 노트 두 권을 주신 것이다.

“이거 내가 쓴 자서전이다. 네가 책으로 한 번 내봐라!”

1935년생으로 올해 87세인 어머니가 작년 여름쯤부터인가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두 해 전 심각한 노환을 앓으셨고 밥도 요양보호사님에 의지해서 드시는 분이 언제 이렇게 긴 글을 쓰셨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는데 집에 갈 때마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계신 것만은 늘 보아왔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초입에 두 권, 올해 초에 한 권 해서 모두 세 권의 자서전 노트를 건네주셨다. 노트에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기운 없는 손으로 쓴 것임이 한눈에 다 보일 만큼 글씨가 비뚤어 이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차오르는 감동을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신 시점부터 그 이전과 이후를 들락이며 쓰신 어머니의 자서전에는 달랑 숟가락 두 벌과 그릇 몇 개, 큰 가마솥 하나 들고 신행 나신 첫날부터의 막막함과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차곡차곡 살림을 일구어가며 자식들을 키우신 사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어머니 시대를 산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겪었을 가난하고 힘겨웠던 시대상이 어머니의 자서전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어머니의 자서전 속에는 뜨개질로 살림을 보탠 젊은 시절의 솜씨며 아버지가 친구에게 속아 이사 갈 비용을 홀랑 털린 일, 손위 올케들의 시달림으로 고생했던 시집살이 이야기, 벌떼처럼 많았던 조카들 치다꺼리, 온집안이 소똥으로 도배된 듯한 기와집 샀던 사연과 자전거를 배워 추측하건데 경주에서 가장 먼저 자전거를 탄 여성으로 등극한 사연, 오형제 막내이신 아버지가 할머니상을 당해 집을 저당 잡혀 혼자 돈으로 상 치른 이야기, 아이들 키워놓고 아버지랑 배낭여행 다닌 이야기,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불우이웃 돕기 성금 내신 이야기까지 50대 이전의 분주하고 보람된 삶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이 노트를 읽으면서 ‘누구에게나 드라마가 있고 누구나 자서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내 지론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었다. 남들의 눈으로 보면 소소한 개인사일 뿐이지만 어머니에게만은 인생을 통털어 가장 인상 깊게 기억되는 일이고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었다.

어머니는 세 권의 노트를 주시면서 “내가 산 흔적이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자서전을 쓴 이유를 말해 주셨다.

자서전이란 이렇게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는 글이다. 어느 시대 누구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 나름의 희노애락이 있고 그에 따른 속 깊은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가슴에 숨겨져 있다. 자서전은 바로 그런 것을 하나둘 꺼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책으로 엮는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자서전 낼 자격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이렇게 대답해도 된다.

‘자격이 차고 넘친다’!!

그 어떤 예술가나 스포츠인, 쟁쟁한 정치가나 경제인, 유명인과 비교해도 조금도 꿀리지 않을 당신만의 자서전이 당신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머니처럼 스스로 글을 쓸 만한 용기를 가지지 못해서 자신의 이야기일망정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조차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섣불리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참고로 어머니가 자서전을 손수 쓰셨다고 하니 어머니가 무슨 대단한 교육이라도 받은 분이거나 자서전 내용도 출중할 것이라 지레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어머니는 고작 중학교만 나오셨다. 당시로서는 그만큼 학교 다니기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자서전 내실 만큼’ 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은 아니다. 어머니가 써주신 글을 보면 맞춤법은 60년대 이전의 것이고 문장 역시 단순하고 거칠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붙드시느라 시점도 자주 뒤엉키고 앞에서 썼던 이야기가 뒤에서 반복되기도 해 자식인 내가 아니면 무슨 말씀을 써놓으셨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어머니는 보란 듯 자신의 이야기를 쓰셨다.

지금 60대 이하 대부분 사람들이 고등학교 이상 대학을 나왔다. 50대나 40대, 그 이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해 누구나 어머니보다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들 어머니보다 나은 자서전을 못 쓸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떻게 용기를 내서 시작하느냐일 뿐이다. 잘라 말하는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자신조차도 몰랐던 놀라운 드라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당신 자신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보자. 눈물 콧물 다 빠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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