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시인의 경주인문학산책] 엘튼 존이 사랑한 경주 소나무

경주신문 기자 / 2022년 0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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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 삼릉 입구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나이가 들수록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런 생각이 확연해진다.
소나무를 좋아하게 될 나이가 되면 삶도 어느 정도 관조적으로 내다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일까?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듯 소나무는 늙어갈수록 그 품격이 더 해진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소나무에 인격을 부여하였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그이 부인이 되는 ‘정경부인송’ 그리고 부동산을 소유하고 세금까지 내는 예천의 ‘석송령’이 그렇듯 소나무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함께해 왔다.

↑↑ 삼릉 소나무 숲에 들면 몽환적 느낌에 사로잡힌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소나무 산지는 첫째, 울진 소광리나 봉화 춘양목등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에 이르는 아름드리 금강송 나무들은 궁궐을 비롯한 건축용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둘째, 부안 변산반도와 태안 안면도의 소나무는 해안 방풍림 역할과 배를 만들거나 건축용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주 왕릉 주변 소나무를 들 수가 있다. 물질적 유용성 위주의 다른 지역 소나무와는 달리 경주 소나무는 정신적 상징성을 지닌, 형이상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소나무 가지를 타고 하늘에 닿도록 심어졌고, 왕릉 주위를 지키는 호위무사처럼, 죽어서도 함께하기로 작정한 신하들처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경주 왕릉의 소나무는 설화나 전설 속 이야기를 곁들이며 들릴 때마다 이상야릇하고 오묘한 느낌과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소나무를 보기 위한 의도적인 여행은 아니었지만 울진, 봉화, 안면도, 변산 등 소나무로 유명한 지역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하지만 경주 소나무만큼 서정적이고 정감을 가져다주는 소나무는 없었다.

2005년 5월 22일은 획기적인 사건이 하나가 있었다. 팝가수 엘튼 존이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을 2700만원에 구입한 내용을 우리나라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였다.

엘튼 존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세계에서 5번째로 음반판매량이 많은 가수이기도 하다.

배병우가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게 되고, 우리나라 사진이 대외적으로 처음 인정받게 되는, 그리고 사진가격 결정의 기준점이 되는 역사적 일이었다. 소나무 사진은 다름 아닌 경주 남산 삼릉숲 소나무 사진이었다. 배병우 작가는 이곳 삼릉 소나무를 찍기 위해 2년간 10만km를 달려 경주를 수도 없이 오고 갔다.

소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지만, 경주의 왕릉 소나무가 최고임을 술회했다. 그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김영삼 대통령이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책 속에는 분명 삼릉숲 소나무들이 한국미를 뽐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삼릉 근처 박대성 화백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뒤뜰을 통해 삼릉 소나무 여럿을 방안으로 들여다 놓고 있었다. 밤낮으로 수묵화 속으로 소나무들이 걸어 들고 걸어 나오는 듯하였다.

↑↑ 삼릉 소나무 숲에 들면 몽환적 느낌에 사로잡힌다.


경주에는 삼릉 소나무 말고도 흥덕왕릉 소나무 숲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이곳에 들면 몽환적 느낌에 사로잡힌다. 안강평야 지날 때마다 그곳으로 눈길이 가고 걸음이 멈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동틀 녘 붉은빛이 가져다주는 느낌을 최고로 친다. 멀리서 오는 지인들에게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형태 분류를 연구한 일본인 식물학자인 우에키 호미키교수가 1928년 <조선산 적송의 수상과 개량에 관한 조림학적 고찰>에서 흥덕왕릉을 비롯하여 이곳의 키가 낮고 구불구불한 소나무를 ‘안강형 소나무’로 명명하였다.

못난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소나무들은 또 등 굽고 허리 굽은 우리네 할배와 할매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인사마저 드리고 싶어진다.

이외에도 경주에는 소나무를 자랑할 곳이 너무나 많다. 8월에는 보랏빛 맥문동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황성공원 소나무숲도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고 싶은 곳이다.
소나무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는 불국사도 있고, 특히 경주 남산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허공 절벽으로 몸 뻗은 소나무들도 빼놓을 수가 없다. 애국가 속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이미 내 맘속에서는 경주 남산 소나무로 여긴지가 오래되었다.

엘톤 존이 구입한 소나무 사진은 현재 억 단위 이상이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경주 소나무를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가히 천문학적 금액일 것이다. 경주 사람들은 소나무만으로도 부자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주변의 소나무들은 잘 가꾸고 지켜내어야 할 것이다.

삼릉과 흥덕욍릉 그리고 황성공원 소나무를 마주하다 보면 오늘 밤 꿈결에서는 황룡사 금당 솔거의 노송도 볼 수 있을까? 한 마리 새가 되어 소나무 품속으로 날아들고 싶다.
머리 부딪치는 아픔은 나중에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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