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화재 도난의 역사… 관리체계 수립 시급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경주서 29건 도난’, 1993년 기림사 내 보물 2점 도난사실 등 기록

이상욱 기자 / 2022년 0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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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과거 기사에는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는 경주의 문화재 관리가 허술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13일 기준 문화재청 경주지역 도난문화재 정보에 따르면 1993년부터 모두 29건의 지정 또는 비지정 문화재가 도난·도굴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이전 시기, 특히 일제강점기 도굴·반출된 경주의 중요 문화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지정·비지정 문화재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보물 제969호인 기림사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등 2점을 비롯해 비지정 석조문화재, 고서, 불화, 조각품 등 소중하게 보존돼야 할 각종 문화재가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난 시기는 1990년대 6건, 2000년~2009년 사이 18건으로 집중됐다. 하지만 2010년대 3건, 지난해 2건 등 근래 들어서도 도난이 끊이지 않고 있어 문화재 당국의 관리 소홀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 본지 제6호 발행신문에는 석조문화재 반출 급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화재 당국의 관리소홀을 지적했다.

본지는 지난 1990년 1월 19일 발행한 제6호 신문에서 ‘석조문화재 반출 급증···당국 무관심 속 곳곳에서 수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는 ‘최근 들어 석조문화재 관리 소홀로 경주시·군 지역에 산재해 있는 신라시대 석조문화재가 외지로 밀반출되고 있는 수난을 겪고 있다. 현재 시내 각 가정은 물론 관공서·일반업체 등에서 임의로 석조문화재를 옮겨와 정원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경주시군 유적지에 산재한 석조문화재는 수천점에 달하고 있어 수난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당시 석조문화재 밀반출 사실과 허술한 관리 실태를 고발했다.

석조문화재의 밀반출 사례도 구체적으로 취재·보도했다.
‘대도시 수집상들이 트럭까지 동원, 석조물을 닥치는 대로 매입해 서울·부산·대구 등지의 대도시로 밀반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 사례로 ‘황남동의 정원석 전문 수집가의 정원에서 당대석 1점, 석탑 옥개석 1점을 40만원에 사들여 트럭에 싣고 있는 것을 주민들의 신고로 외지 반출을 방지했지만, 수집상들이 지역을 돌며 계속 수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천북면 신당리에 있던 화강암에 용 2마리가 새겨진 원효대사 유작비 석대 2개가 지난 1988년 도난당한 것을 비롯, 1990년 4월에는 구황동 황복사터의 12지상이 새겨진 화강암판석을 도둑이 훔치다 발각된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1991년 1월 25일자 제57호 발행신문에는 문화재 도난 사건 조사 결과를 알리는 간략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림사 도난 사건 조사 결과 피해품 없이 범행 미수에 그쳤다는 내용이다.
사건은 1991년 1월 20일 새벽 3시 40분경 발생했다. 기림사 법당 내 좌측 불상 좌대부분이 파손된 채 발견돼 당시 언론에서 중요한 문화재가 도난당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수사 결과 불상의 파손 범위가 내부 소장품을 들어낼 수 있는 크기가 되지 않고, 현재까지 조사결과 기림사측의 피해는 전혀 없어 일부 언론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보물급 문화재 도난 사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결국 범행은 미수에 그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그리고 앞서 지난 1986년 9월에도 기림사 본존불 옆 부분에 구멍이 뚫렸지만, 불경 절도 미수에 그친 사건도 짧게 전했다.

양북면 소재 기림사에서 일어난 절도 미수 사건 이후 도난 방지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불과 2년 뒤인 1993년 12월 5일 기림사비로자나불복장전적(祇林寺毘盧舍那佛腹藏典籍,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감지금니묘법연화경) 2점이 도난당한 것.

문화재청에 따르면 도난당한 이 문화재는 1986년 기림사 대적광적에 봉안돼있던 비로자나불의 복장에서 출토된 유물들 일체를 이른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전적으로 모두 54권 71책이다. 이는 지난 1988년 11월 4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물이 도난당하면서 당시 문화재 당국의 관리 소홀이 심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사찰에서 여러 차례 도난 미수 사건이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조차 세우지 못한 결과 보물이 도난당했고, 현재까지도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 제590호 신문에는 지난 2002년부터 양동마을에서 고서적, 관복 등 문화재가 도난당한 사실을 보도했다.

지난 2003년 2월 17일자 신문(제590호)에는 양동마을 내 문화재 도난 사건에 대한 기사도 검색됐다.
당시 기사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0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양동민속마을에서 각종 문화재가 무더기로 도난당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

이곳 주민들이 월성 손씨 종택을 비롯해 6곳에 보관 중이던 고서적과 관복 등 문화재 1000여점을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양동민속마을에 2~3년 전부터 관광객이 급증했지만 마을에는 방범초소 하나 없고 경주시 등 관리당국에서는 관리사무실에 직원 1명만을 배치하는 등 평소 절도사건 예방에 소홀했다는 주민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실제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에 따르면 양동마을 도난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지난 2002년 9월 17일을 시작으로 네 차례에 걸쳐 ‘주역전의대전’ 등 고서와 병풍·제기류 등 총 505점이 도난당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비지정문화재이지만 1700년경 제작된 고서적 등이다.

최초 도난 기록은 2002년 9월 17일로 고서적 306점이 도난됐다. 이어 2006년 1월, 2009년 5월, 2009년 8월 세 차례에 걸쳐 고서, 병풍, 제기류 등 모두 199점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2010년 9월 도난된 고서적 25건, 92책은 회수됐지만, 413점은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제1162호에는 숭혜전 하마비 분실 기사를 통해 비지정 석조문화재에 대한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최근까지도 비지정 석조문화재 도난 잇따라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석조문화재의 도난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10월 10일자 신문(1161호)에는 대릉원 옆 숭혜전 입구의 하마비(下馬碑)가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문화재 관리·감독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해 지난 4월 숭혜전 옆 주택 신축공사 현장 비문아래 부분이 부러진 상태로 기단석과 함께 방치돼 있던 하마비가 사라졌다는 것.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大小人員皆下馬)’는 뜻의 비문을 담은 하마비는 왕이나 장군·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아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비석이다.

경주지역에는 숭혜전 앞 이외에도 하마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석탈해왕 탄강유허비 옆’, ‘숭덕전 입구’, ‘김유신장군묘 주차장에서 숭무전 들어가는 입구’, ‘구 경주여중’, ‘구 경주초 정문 앞(서악서원)’, ‘동강서원 앞(강동면)’ 등지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는 이 하마비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분실됐는지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해 문화재 관리의 부실함을 드러냈다는 기사였다.

또 최근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문동 북사지 소재 비지정문화재 석탑 부재 4점이 사라진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경주는 말 그대로 노천 박물관이다. 행정이 산재한 지정·비지정 문화재를 모두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다시 발생하는 문화재 도난 사건을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과거 도난당한 비지정문화재가 현재 기준으로 재평가 받는다면 국보로 또는 보물로 승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문화재 관리가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한 이유다.

##경주지역 피해 사례
□보물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중 전적(감지은니묘법연화경, 감지금니묘법연화경, 도난일자 1993년 12월 5일) 2점, 보물 제959호,

□사적
△경주 남산일원 창림사지 내 사적 제311호 ‘석탑재’ 2점(2008.1.1~12.19 사이),

□경북도 지정 문화재
△경주 이조리 경모각 내 최진립 유품 조각품 ‘벼루·옥로잠’ 2점(2002.6.11~2006.12 사이), 경북도 유형문화재 △경주 왕신리 운곡서원 내 문짝 유연정문짝 1점(2004.10.17~18일 사이), 경북 문화재자료 제345호

□비지정문화재
△경주 황오동 청자상감국화문잔 등 8점(1996.2.15) △경주 동암선생문집 전적류 등 235점(1998.3.4) △경주 어얼리 현판류 8점 및 들문 8짝(1999.2.18) △경주 표충사 탑신석(1999.5.6) 1개 △경주 백률사 불화 ‘관음탱화(노사나불도), 지장탱화’ 2점(2001.6.19), 노사나불도는 회수 △경주 최진립 고문서 및 목조품 ‘전적, 책판’ 500권(2002.6.11)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 소장 ‘주역전의대전 등 고서’ 306책(2002.9.17) 일부 회수 △경주박물관 석조물 ‘석인상’ 1점(2004.10.26) △경주 고운선생 현판 ‘독서당(讀書堂)·학사루(學士樓) 현판’ 2점(2005.6.2~7.5 사이) △경주 양동 가옥 내 병풍, 제기류, 고문서 등 42점(2006.1.4) △경주 남산 승소골 ‘석탑 옥개석’ 1점(2005.9.21~2006.4.29 사이) △경주 신평리 불상 ‘비로자나불좌상’ 1점(2006.4.30) △경주 강산리 이시창 묘의 석조물 ‘가첨석·귀부’ 2점(2006.11.20) △경주 신계리 탑재석 석조물 ‘기단부의 하대갑석’ 2점 2006.6~11월 사이) △경주 황룡사지 서쪽 외곽부근 석조물 ‘초석’ 1점(2007.2.18 이전) △경주 안강 독락당 전적류 ‘통문·시권·상서 등’ 28점(2008.1.4), 일부 회수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 소장 고서적(2009.5.29) △경주 망성리 현효식 가 소장 고문서 ‘덕산실기 등 고서’ 347점(2003.7.15) △경주 신평리 파평윤씨 영호재 소장 전적류 ‘족보 가승 등 고서’ 72점(2001.9.11 이전) △경주 구길리 육신당 소장 ‘성재문집 등 고서’ 235점(1998.4.4) △경주 건천 송선리 ‘고분군’ 1기(2014.3.14) △경주시 황남동 ‘숭혜전 하마비’(2014.9.18) △경주 보문동 사지 석물 2점(2019.1) △경주 천관사지(사적 제340호) 내 석등 상대석, 석등 하대석 2점(2021.4.28)△경주 북사지 비지정문화재 석탑 부재 하층기단석 등 4점(2021.10.~2022.1.13 사이)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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