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아트센터에 핀 36송이 꽃, 경주에도 필 수 있을까?

최대남 시인과 12시인 + 24화가의 특별한 감동 시화전

박근영 기자 / 2022년 0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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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화가들이 만난 콜라보 전시회 현장

시인과 화가가 만나 함께 작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중·고등학교 시절 시화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 쓴 시인 지망생 학생이 자신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해 줄 미술부 친구나 선후배를 찾아 쫓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혹은 시와 그림에 고루 능한 어느 친구의 비범한 시화를 감상하며 부러워하던 기억도 있을 법하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이나 가을이 한창 진홍으로 물들 무렵 경주 전역의 학교들이 각자의 학교나 서라벌 문화회관. 기타 경주의 명소들에서 약속이나 한 듯 시화전을 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시 쓰고 그림 그리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금도 경주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시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한 자리에 다시 모여 시화전을 함께 벌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서울에서 실현됐다.

지난 16일 혜화동 대학로 혜화아트센터 제2관, 아직도 전시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몇몇 행사에 참여한 몇몇 시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2월 12일부터 시작한 시인과 화가 콜라보 전시회인 ‘시가 꽃으로 피어날 때’에 참가한 12명의 시인들이다. 이들 시인들은 16일 전시회를 마치고 각자의 작품을 이웃한 동성중·고등학교로 옮기기 위해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혜화아트센터의 특별한 배려,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가장 좋은 치유는 문화! 시와 그림으로 힐링됐어요!!
전시회는 열두 명의 시인이, 24명의 화가들의 그림 위에 시를 옮겨 모두 36점의 작품으로 시화전을 연 것이다. 비록 프린트한 그림이라고는 하지만 오직 이 행사만을 위해 단 한 장씩만 프린트했고 중견 화가들의 작품이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작품이 프린트되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작품 위에 시가 쓰인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날 작품을 낸 시인들은 그림을 낸 화가들과 관람객들 앞에서 기타리스트 신현대 씨의 기타 반주와 음악에 맞춰 자신의 시를 낭송하는 특별한 이벤트도 즐겼다. 이런 기발한 행사에는 이 행사에 혼신을 기울인 시인들과 혜화아트센터의 배려가 숨어 있었다.

↑↑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대남 시인, 이 행사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활약했다.

이 행사에 처음 착안한 사람은 시 낭송으로 유명한 최대남 시인(사진)이다. 최대남 시인은 동리목월기념관 행사와 지난해 5월 경주의 들쑥날쑥축제에 참가해 시를 낭송하는 등 자주 경주를 찾는 친경주 인사다. 최대남 시인은 이번 행사의 취지를 코로나19에서 착안했다고 고백했다.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화가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칼로 베인 듯한 상처가 생겼을 것인데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시와 그림, 음악과 춤 같은 것이 있지 않겠어요?”

그 중에서도 시인의 가장 자연스러운 치유 장르가 시였고 이것을 형상화 할 수 있는 파트너로 미술과의 동행을 꿈꾼 것이다.

“시는 문자로 쓰는 그림입니다. 그림은 색채로 쓰는 시이고요. 표현의 방법은 각각 다르지만 두 예술 장르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데서 이 행사를 착안해 보았습니다”

최대남 시인의 아이디어는 곧바로 주변 시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행사 기획을 맡은 오정후 시인은 이번 행사가 본인의 어떤 행사보다 생생하고 실감나는 행사였다고 소개한다. 특히 이 행사 후 혜화아트센터와 이웃한 동성중·고등학교에 약 2달 반 동안 작품을 전시하게 된 것을 말하며 요즘 학교들이 시화전을 잊어버린 것이나 대학에서 국문학과들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마침 이번 행사에서 부위원장을 맡아 활약한 이호남 시인은 전시회 이틀째 같은 장소에서 자작시집 ‘내 별 하나 너의 달 하나’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었다. 이호남 시인은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행사 자체도 의미 깊었지만 낭송의 기쁨에 대해 스스로 감동되었고 힐링되었다고 회고했다. 이호남 시인은 이번 행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시화전의 추억들이 이 전시회에 재현된 듯하여 추억에 젖기도 했다며 각별한 감흥을 표시했다.

참석한 시인들의 감회도 남다르다. 구지평 시인은 고등학교 때 처음 자신의 시가 활자화 된 후 오랜 기간 시를 잊고 살다가 고교시절 자신이 묶어놓았던 세계문학전집을 되찾은 2010년경부터 다시 시 쓰기를 시작 시와 시조 부문에 등단했다. 구지평 시인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낭송의 기쁨을 재발견했다고 술회했다.

자신의 그림에 자작시를 직접 올린 서양화가 겸 시인인 김주윤 시인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두 가지 재능을 동시에 펼칠 수 있어서 무척 뜻 깊었다며 의미를 더했다. 그림과 시가 너무 흡사한 느낌이 든다는 김주윤 시인은 이번 행사에서 평소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 양쪽을 공백을 한곳에서 채우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은유 시인은 특히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지독한 사랑’이 아버지와의 사연이 깃든 시라 알려주며 나이 들어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나니 아버지가 세상에 계시지 않음이 죄스럽고 안타깝다며 절절함을 표했다. 이번 전시회에 그림과 함께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의미 깊다며 스스로 위안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이재섭 시인은 시낭송의 순간이 학교에서 강단에 설 때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며 그 독특한 감흥을 전했다. 또 이번 전시회가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기획으로 이뤄져 서로 다르지만 유사한 예술이 어우러져 빛을 발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 깊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한 오정후 시인은 펜데믹 시대, 시와 미술과 접목해 순수 예술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시화전을 기획하게 돼 뜻 깊었다고 전한 후, 행사중간 토론은 화상 미팅과 SNS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고 화가들의 소통은 혜화아트센터에서 중간 역할을 해주어 가능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12시인들의 시와 24화가들의 랑데뷰.

-랑데부 시화전, 낭송회, 미술품 간접 판매, 특별한 시집 출간, 인근 동성중·고등학교에 전시 등 다양한 성과

이번 전시회는 24인의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프린트해 시와 접목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이뤄졌다. 이들 미술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유명 시인들의 관심을 받아 선택된 것이 반가운 한편 자신의 작품들이 시화전을 통해 새롭게 조명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흡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화가들 중 최대남 시인과 랑데부한 박순영 작가는 “시인들과 작품을 통해 특별하게 교감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한 후 “오프닝 행사를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 시집을 열 권이나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특히 박순영 작가는 전시회 동안 자신의 작품이 판매됐다는 소식을 듣고 더 기뻤다며 앞으로 이런 활동이 다른 곳에서도 자주 열리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박영순 작가의 말에서 보듯 이번 행사에 출품된 미술작품들은 관객들에게 판매됐고 전시회 후 작품들은 혜화아트센터와 이웃한 동성중·고등학교에 4월 30일까지 전시돼 학생들의 정서순화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또 전시회에 사용된 시화 36점과 시인들이 각각 2편씩 더 낸 시 총 60편으로 특별한 시집이 출간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는 혜화아트센터(대표 강석동 / 관장 한은정)의 도움이 아주 컸던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혜화아트센터는 시인과 화가들과의 접합점을 찾아주고 흔연히 대관까지 무료로 해주며 코로나19 기간 동안 갈증에 차 있던 시인과 미술가들에게 시원한 감로수 역할을 대신했다.

↑↑ 행사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인들 가운데가 최대남 시인.

한은정 관장은 “혜화아트센터가 대학로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왔는데 이번 기회에 관객들에게 새로운 장르를 선물할 수 있었다”며 의미를 강조하고, 한은정 관장의 소감은 이번 행사의 전반적인 감흥을 한꺼번에 요약해 준다.

“행사장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보며 이 행사에 참여해 준 시인과 화가님들께 정말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너무 좋았어요”

나흘 동안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이 행사를 통해 시인과 화가들이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충만감을 얻었고 미술관도 새로운 장르를 제시하며 꽤 ‘길어질’ 역사를 만들었다. 이번 행사가 앞으로 다양한 지역사회나 문화계에 전파돼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획은 없을 것이다. 경주의 시인과 화가들이 주목할 만한 행사들이고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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