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경주’를 향해 달리는 최영조 화백의 당찬 꿈

“문화도시 경주에 국제아트페어 하나는 있어야지요!”

박근영 기자 / 2022년 0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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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미 작가의 '때창' 전에서 포즈 취한 최영조 화백.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타고난 천재성도 필요하지만 그 천재성을 구현할 부단한 노력이 더 외롭고 힘든다. 예술 외길에 혼신을 다해도 대가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예술가가 예술 외적인 일을 하는 것은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누군가를 위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거나 행정적인 업무를 맡게 되면 예술활동보다 대외활동에 더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매화도의 거장으로 입지를 굳힌 최영조 화백이 미술협회 경주 회장을 맡아 활동하면서부터 늘 가진 딜레마가 바로 이런 것이다. 작품활동에 매달려도 모자라는 시간에 조금은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더럭 겁이 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책을 맡은 이상, 이 일에 소홀할 수도 없고 소홀해서도 안 된다.

↑↑ 경주 미술인들과 머리를 맞댄 최영조 회장.

-상가르네상스사업에 선정, 중심상가 활력 불어넣는 중대한 숙제 맡아. “현재 미술인들과 전통 공방 유치로 활력 불어넣고 싶어!”

근래 최영조 회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업은 과거 아카데미 사거리와 명보극장 등이 있던 중심상가에 바람구멍 나듯 빈 상가들에 예술의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른바 ‘상권 르네상스사업’이라는 국가공모사업이 중심상가를 중심으로 실현될 예정인데 이에 대한 사업안을 시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작년에 신라문화제 행사 대용으로 신라아트마켓이라는, 빈 점포 27개를 임대를 해서 치른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 상가르네상스사업 공모에서 가산점을 받아 선정된 것이지요”

↑↑ 신라아트마켓 포스터.

최영조 회장은 이 계획의 골자로 이 지역의 10여개 빈 점포에 경주 예술인들과 경주 전통의 공방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작업의 결과로 많은 관광객이 북적이는 황리단길이 이 지역까지 연장돼 함께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경주의 많은 미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하면서 그들의 전시회, 그들의 강의와 교육, 그들의 인적 교류를 발판으로 거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합니다. 나아가 경주에 와야 볼 수 있는, 이를테면 금관을 재현하는 공방이나 토기, 도자, 목공 등을 제작하는 공방을 구현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같은 일에는 쉽지 않은 벽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예술가들과 장인들의 프라이버시와 작업 공간 개방으로 인해 작업 시 받을 스트레스 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통 장인들의 경우 대가 끊어질 만큼 작업 환경과 수익구조가 열악해서 선뜻 모시기도 어렵다.

특히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달리 주변 인구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아카데미 극장 사거리가 80년대까지만 해도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인근 황남동, 황오동, 사정동, 인교동 등의 인구가 뒷받침됐고, 구 시청을 기반으로 한 경제인구들이 집중적으로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발판이 사라지고 인구마저 최근 20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 황리단길이 오랜 한옥의 정취를 가지고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과 대조적으로 중심상가의 모습은 소멸 직전의 지방 도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토착 주민이 없어 외면받는 거리를 관광객이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

최영조 회장은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악조건이지만 무엇이건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반드시 좋은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최영조 회장을 뛰게 한다.

“봉황로처럼 하드웨어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예술인들과 장인들이 마음 놓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영조 회장은 지난해 빈 점포를 이용해 심혈을 기울였던 ‘신라아트마켓’이 비록 기대한 만큼 붐이 일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 그림사러경주가자전 포스터.

실제로 최영조 회장이 한국미술협회 경주지부 회장이 된 이후 시도한 행사들은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참신한 시도들로 평가된다. ‘그림 보러 경주 가자’는 행사와 ‘그림 사기 좋은 날’ 행사는 경주의 미술인들이 보다 직접적이고 보다 현실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시민 혹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기획으로 평가된다.

32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대부분 그림이 팔린 ‘그림 사기 좋은 날 행사’는 시나 외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참여작가들의 열의만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경주미술인상을 만들어 박수미 작가를 처음으로 선정하고 ‘때창’기획전을 연 것이나 대추밭장학회(이사장 백진호) 후원으로 올해의 작가상을 제정, 김서한 작가 초대전을 연 것도 최영조 화백의 남다른 열정이 만든 결과들이다.

최영조 회장이 또 하나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봉황대 주변 야외 음악무대가 펼쳐지는 넓은 잔디밭이다. 이곳에 언젠가부터 젊은이들이 돗자리를 들고나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 심지어 간이 티 테이블까지 들고 나와 차와 음식, 와인을 즐기는 연인들까지 등장했다. 특히 코로나로 실내 공공장소의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은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에 주목한다.

“그들이 관심을 가질 문화의 거리를 만들 수 있다면 황리단길의 북적거림과 연결하면서도 확연히 대조적이고 봉황대의 이색 체험까지 가능하겠지요. 이런 전제에서 상가 활성화와 예술 활성화를 동시에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최영조 회장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아이디어를 모두 동원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다.

“중심상가 빈 점포들 중 넓은 공간에는 요일별로 작가들을 정해 원데이 강의를 진행, 인터넷으로 신청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라 금속공예의 이미테이션들, 이를테면 비천상이나 도깨비 기와, 신라인의 미소 같은 것들을 직접 탁본으로 뜨는 공간 등을 상설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 신라아트마켓 행사 장면.

-미술계·문화계 아우른 운영위원회 추대 후 국제아트페어 열어야, 경주역사, 미술인들 전시공간으로 함께 활용해야!

특히 최영조 회장은 지금은 폐지된 ‘경주 아트페어’에 대한 복원을 강조했다. 경주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발원지로서 현재 활동하는 미술인들도 여느 도시에 비해 많고 아트페어 경험도 있는데 이런 대규모 문화행사가 사라진 것은 매우 아쉽다는 입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경주와 연결돼있는 세계 자매도시와 협력해 ‘국제아트페어’를 열어 국제교류전을 여는 것도 경주미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전의 아트페어의 운영이 독자적인 형태로 진행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없었던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며 국제아트페어를 열 경우 미술계와 문화계의 경험 많은 인사들을 운영위원으로 추대해 발전적인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최영조 회장은 지난해 운영을 중단한 경주역사도 미술인들의 활동공간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활용해 서울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등에 전북, 부산, 전남, 경북 등 지자체 갤러리가 있듯 경주의 다양한 작가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항구적인 공간이 되기를 기대했다. 기존 생활아트와 난초회, 수석회 등과의 공조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미술인 최영조 화백을 떠나 미술협회 최영조 회장의 모습이 훨씬 크게 부각된다. 문득 10여년 전 후배 작가들을 위해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기획했던 최영조 화백의 모습이 기억된다. 당시 자신의 그림은 없이 후배들만의 작품을 들고 서울 나들이한 최영조 화백이 모습이 지금의 회장 모습과 겹쳐져 감회가 새롭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뛰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선 경주의 미술인들부터 시작해 경주 문화를 이끌어가는 다방면의 문화계 인사들이 관심 가지고 협조해 주셔야 조금이나마 나은 경주 미술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경주시 문화예술 당국의 협조가 우선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지금까지 경주미술협회를 이끌면서 그 어떤 것보다 사람들의 소통과 협력이 가장 중요하고 절실했다고 믿는 최영조 회장, 그의 열변을 듣고 있자니 사람들과 함께 열어나갈 경주 미술의 미래가 훨씬 밝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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