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실용음악의 희망 엘실용음악학원 이경희 대표, “그 많은 축제공연 중 대중음악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이 됩니까?”

박근영 기자 / 202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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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에서 키보드 연주 중인 이경희 대표.

경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인만큼 온갖 예술 문화가 농축돼 흐르고 있지만 유독 경주의 대중가요와 실용음악 부분은 다른 문화자산에 비해서는 부족하게 보인다. 경주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음악인들도 소수에 그치고 이들을 위한 공연 기회나 제도적 지원도 국악이나 클래식 등 다른 음악분야에 비해서는 충분하지 못한 편이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천만을 넘겼다고 호언하는 경주시에서 가장 일반적이어야 할 실용음악과 대중음악의 활동이 이처럼 부진한 것은 아이러니다.

경주 동천동에서 ‘엘실용음악학원’과 ‘EL팝오케스트라’를 함께 운영하며 작곡과 공연기획, 강의를 하고 있는 이경희 대표는 바로 이런 아쉬운 현상을 극복하고 경주를 실용음악과 대중가요소비의 측면에서도 좀 더 높은 경지로 이끌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음악인이다. 무엇보다 직접 운영하는 ‘EL팝오케스트라’의 활약에 눈길이 간다.

“경주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2030 실용음악 전공자 뮤지션들로 2018년에 ‘EL밴드’를 창단했습니다. 뒤에 좀 더 다양하고 폭 넓은 활동을 위해 클래식 전공자 뮤지션도 영입, 2019년 ‘EL팝오케스트라’로 확대 개편해 실용음악분야에서 대중성을 추구하는 EL만의 매력을 예술성 있는 오케스트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경희 대표는 풀오케스트라 편성의 라이브 공연이 예산이나 맴버 구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역에서 운영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 소규모라도 기동성 있는 ‘EL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가까운 곳에서 경주시민들과 호흡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EL팝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은 2030청년들 15명으로 경주가 고향인 선후배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출중한 연주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기적인 공연이 힘들어 현재 대부분 학원을 운영하거나 학교 위탁강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와중에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주급을 받는 피아노 연주자도 있고 SNS와 또는 황리단길에서 이미 유명인사가 된 섹소폰 연주다도 있다. 그들 모두 고향 경주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하며 경주의 실용음악과 대중음악을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

그런 한편 EL오케스트라는 맴버들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전공한 음악인들과 음악을 애호하는 시민들이 팝오케스트라 편성의 공연에 연주자로 참여하실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으며 그에 맞는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야심찬 준비와 계획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자체를 열지 못하면서 뮤지션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2020년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한 공연계가 침체 되었을 때, 경주정신건강센터와 협력해 경주최초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기획·제작했습니다. ‘위로’ 라는 주제로 공연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께서 찾아주신 와중에 ‘인원제한’으로 많은 분들이 차를 돌려야 했습니다. 그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시 그 공연이 잘 진행되도록 시민들을 비롯 화랑마을 관계자들과 경주 보건소 및 정신건강센터 관계자들이 관람하고 뜨겁게 호응해줘 오히려 이경희 대표와 밴드 연주자들이 더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이 같은 이경희 대표에게 코로나 상황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실용음악에 대한 경주의 전반적인 정서가 다른 음악장르들에 비해서는 다소 소홀해 보이는 것에는 적지않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실용음악가들의 입장에서 본 경주의 대중음악은 불모지에 가깝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코로나 상황 전과 후를 막론하고 경주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나 공연들에서 실용음악 중심의 공연이 열리거나 실용음악가들이 초대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중가요 가수가 초대되어도 전국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가수 중심이라 지역 대중음악인들이 설 자리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유명가수의 지명도에 따른 관중동원력 등을 인정하면서도 기왕 무대를 꾸미는 걸음에 지역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장도 마련해준다면 동반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인데 이런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 공연중인 이경희 대표(오른쪽)와 경주의 젊은 뮤지션들.

-경주 대중음악인들 설 수 있는 무대 지나치게 좁아. 음악 연습할 시간에 서류공부에 인맥쌓기 해야 할 판

“대중음악 여건은 처참합니다. 정기공연은 각 멤버의 사비로 진행하거나 황리단길에 자체 음향장비와 악기를 들고나가 버스킹을 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정도입니다”

이경희 대표는 문화예술 컨텐츠를 제작할 때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면 대중음악이 참여할 수 있는 폭이 좀 더 넓어질 것이고 그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도 기대 이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기자의 시각에서도 경주의 각종 정기공연들을 보면 천편일률적이라 할 만큼 비슷한 공연들이 대부분이고 대중가요를 베이스로 한 공연은 전무한 실정인 만큼 이경희 대표의 제안은 확실히 신선해 보인다.

그런 한편 이경희 대표는 각 공연단체들의 활약상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자료를 토대로 ‘고과제’를 반영해 지원하자는 제안도 한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뮤션 자신들의 노력이 우선해야 하지만 최소한의 관심과 지원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통해 훨씬 비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란 이경희 대표의 희망사항이다.

“객관적인 성과를 평가해 지원한다면 비록 지원을 못 받더라도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더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참여해 평가한다면 시민들이 더 만족할 공연을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경희 대표는 경주 대중음악의 내일을 이끌겠다는 뮤지선들이 모인지 3년이 지났지만 지자체 차원의 공연 기회는 설립 후 한 번도 얻지 못했고 겨우 경주문화재단의 지역예술인 육성사업을 통해 공연한 것이 전부라며 소외된 심정을 토로한다. 특히 지자체가 사단법인에만 지원하는 관례들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시한다. 사단법인 설립 자체에 이미 상당한 자본과 인맥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뮤지션들의 직업 특성상 일종의 진입장벽이라는 것.

“공연의 기회를 부여받기 위해서 음악을 열심히 연습하고 훌륭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더 중요한데 실제로는 서류작업에 골몰하고 사람관계를 넓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콘텐츠를 운용에 많은 자본이 들어 부담도 크지요”

결국 생계문제로 음악계를 떠나는 뮤지션들도 대부분이고 실력이 좋을수록 더 빨리 음악계를 떠나거나 아예 큰도시로 떠나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된다.

6세 때 어머니의 권유로 클래식 피아노를 시작하며 음악을 접한 이경희 대표는 고교시절 인터넷으로 해외 재즈연주자들과 팝뮤지션들의 음악을 접하며 실용음악세계로 빠져들었다. 음악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떠나 아르바이트로 모은 200만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해 실용음악을 공부했다. 쇼팽에 매료돼 단 두 음절 때문에 몇 시간씩 피아노와 씨름하기도 한 적도 있다는 이경희 대표는 한때 음악에 한계를 느껴 포기하고 경주로 돌아와 다른 사업을 시도하던 중 경주의 뛰어난 후배 뮤지션들을 안타깝게 접하면서 불현듯 음악으로의 꿈이 되살아났다.

“‘경주는 가능성이 없다, 희망이 없다’며 떠나려는 인재들을 모아서 경주에서 활동해보자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경주 대중음악의 미래이자 희망이라 믿었지요. 경주 출신 뮤지션 중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경주에 활동하기 좋은 음악 생태계가 마련된다면 경주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도 늘어날 것이고 경주를 떠났던 유명인들도 고향 경주로 돌아오겠지요”

계림중과 신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 SJA실용전문학교에서 작곡과 실용음악학을 전공한 이경희 대표는 실용음악과 대중음악을 배우려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가르치는 한편 경주시 관내 학교에서 밴드부 외부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한편 재외한국인 취업자들과 다문화 친구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들과 함께, 또 경주를 떠나 큰 도시로 나간 대중음악의 숱한 별들과 함께 마음껏 경주에서 공연하는 것이 이경희 대표의 가장 큰 꿈이다. 코로나가 극복된 후에는 경주에도 실용음악, 대중음악의 뜨거운 열기가 타오르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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