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리에 세운 토정선생 동상, 눈길 확 끌어

마포구의 기발한 지역인물 알리는 방법도 눈길

박근영 기자 / 2021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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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구 토정 31길 네거리에 자리잡은 토정 이지함 선생 동상.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31길과 32길이 연결되는 네거리에는 기발한 동상이 서 있다. ‘토정로’라는 이름에서 엿보이듯 이곳은 조선 중기 선조 대의 학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 선생이 살았던 집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로다. 바로 이곳에 이지함 선생의 동상이 서 있고 길 건너편에는 토정이 나누어주는 곡식과 소금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민초들과 강아지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토정 이지함은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초에 한해의 운세를 점치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유명하다. 토정비결을 직접 지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지만 일단 그렇게 단정하고, 이지함 선생은 당시 양반의 체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행을 일삼은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탁행(卓行-훌륭한 행실)을 행한 조정의 천거로 포천현감 아산현감 등을 짧게 지내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장사를 잘해 돈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렇게 모은 재물을 빈민구제로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음양지리에 통달해 점에 능했고 괴상한 행동과 기지, 예언, 술수 등에 능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조선 후기 실사구시 학문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 우리나라 최초의 실학 선구자인지도 모른다. 아산현감 재직시에 빈민을 위한 ‘걸인청’을 세운 것을 보면 최초의 공적 사회사업가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동상들이 네거리 신호동 옆에 버젓이 서있다는 것이다. 길 한 쪽도 아니고 특별히 공터를 만들어서 세운 것도 아닌, 그냥 네거리 한 귀퉁이에 행인처럼 세워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이지함 선생의 동상이 키 2미터 남짓으로 크게 제작되었다는 것일 뿐 심지어 맞은편 민초 군상(群像)은 딱 사람들 크기만 하게 세워져있다. 이지함 선생 동상 옆에는 이지함 선생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되어 있고 민초들 군상 앞에는 이곳이 이지함 선생이 곡식과 소금을 나누어 주던 곳이었다는 기록을 표석으로 남겨두었다.

동상의 위치에 대한 합당성 가부는 제쳐 두고 이렇게 네거리 두 쪽에 동상을 세워두니 적어도 이 길을 한 번만이라도 지나친 사람이라면 이곳이 이지함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러 터를 잡고 공간을 비워 누군가를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목적을 분명히 부각시켜서 세운 동상이 오히려 실효를 거두는 듯해 써보았다. 어쩌면 대상이 기행을 일삼은 토정 선생이어서 더 부담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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