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의 좋은 표본 박명상 변호사, 민·형사 기본, 부동산·조세·보험 관련 사건에 특화

박근영 기자 / 2021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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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나라 법조인의 등용문이었던 사법시험이 전격 폐지되면서 로스쿨(Low School)로 지칭되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유일한 법조인 양성의 창구가 되었다. 로스쿨은 2009년 3월 첫 학기를 시작한 제도로 현재 25개 대학에서 총 2000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로스쿨은 기존 사법시험이 법학과 관련 깊은 학과 학생들에게 유리했던 기존의 일방적이고 단순한 체제에서 벗어나 기존의 사회·인문계열을 비롯 이공계열, 의학 등 각계의 다양한 전공자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공을 마친 후 3년의 법학전문대학과정을 수료하고 전문 변호사로 출신할 수 있도록 개혁되었다. 이에 따라 로스쿨을 채택한 대학들은 이후 대학과정에서 법대를 모두 없애는 등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고 법대로 진학한 학생들은 다소의 혼란을 겪으며 점이지대의 진통을 겪기도 했다.

-법대 전공한 로스쿨 출신 ‘낀 세대 변호사’, 다양한 경험 통해 융통성, 추진력, 포용력 등 겸비
박명상 변호사는 바로 이런 점이지대, ‘낀 세대’로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과 로스쿨 사이에서 갈등하며 변호사가 된 출향인이다. 그 과정이 이전의 사법시험으로 법조인이 된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로스쿨 제도가 신설된다는 안이 확정됐고 전역했을 때는 제1기 로스쿨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법대 3학년에 복학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진로를 잡을지 고심이 많았습니다”

박 변호사가 복학했을 때는 사법시험도 존재했을 때고 로스쿨도 운행되던 시기. 긍정적으로 보면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각오를 다지고 승부를 거는 면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외국어대학 법학과에 다니면서 2학년 때 사법시험이 어떤 것인지 경험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응시했다가 당연히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는데 제대하고 나니까 로스쿨이 이미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당시를 회고해 보면 로스쿨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때늦은 결론이다. 로스쿨이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시기였던 만큼 변호사 시험의 난이도가 다소 낮았고 법학전공자들이 아직도 유리하던 시기였다는 것. 그러나 로스쿨 제도가 살아남을지도 의문이었고 당시에는 사법시험이 엄연히 존재하며 그 권위를 더 인정하는 듯한 사회분위기였던 만큼 갈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신껏 당초 계획대로 사법시험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서 몇 차례 혼신을 다해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번번이 떨어졌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세 번 떨어지고 나니까 그 뒤에는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러다 자칫 고시폐인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그런 불안감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작용했습니다”

외동아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는 부모님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일지 모르겠다면서도 박 변호사는 한동안 공부는 뒷전인 채 신림동 고시원과 학교를 전전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털어놓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불안과 낙담의 시기를 거치면서 냉담한 사회를 경험한 것이 자신에게 보약이 되었다는 진단이다. 자신을 분명히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없다면 세상은 아무도 자기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결국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 이를 즈음 자신이 왜 법조인이 되고자 했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인식이 새롭게 각성됐다고.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 정확하게는 검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마침 삼촌 한 분이 오랜 기간 고시공부를 하셨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셨는데 제가 대신 꿈을 이루어 드리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때 어머니께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집안에 경찰 삼촌이 계셨는데도 이 사건이 끝내 미제로 끝나버렸어요. 그 일을 계기로 검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이 좀 더 구체화됐습니다. 적어도 나쁜 사람을 혼내주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30대로 접어드는 순간, 화들짝 놀란 마음으로 다시 선택한 것이 로스쿨이었다. 시기적으로 곧 사라질 사법시험에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을 추스르며 찬찬히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한 것. 이렇게 결정한 박 변호사는 2015년 모교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입학했고 법학대학원 졸업 후 2019년 치른 제8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서 법조인 인생을 시작했다. 마침 같은 시기 국정원 시험 최종심에도 오르는 등 자신의 실력을 검증한 바도 있다.

현재 ‘법무법인 해온(解溫)’에서 활동 중인 박명상 변호사는 그간 다양한 변론 경험을 통해 기초를 다지는데 충실했다고 자평하며 2022년부터는 자신의 역량을 대폭 실현하는 해로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간 민·형사 사건을 비롯, 해온의 강점인 부동산과 조세, 보험 관련 변호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무기를 장착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앞으로는 대학에서 각종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본격적으로 대세를 이룰 만큼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역시 ‘낀 세대 변호사’로서 매우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 박명상 변호사.

-1, 2, 3학년대표, 총학생회장 후보로도 추천, 공부만 한 엘리트 변호사들과 차별점 강조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로 ‘하수도 음식물 처리 기계’ 관련 사건을 무죄로 이끈 것을 꼽는다. 이 사건으로 패소했을 경우 자칫 문 닫을 뻔한 좋은 기업을 기사회생시켰다는 만족감도 생겼고 환경을 지키는 데도 한 몫 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몇 차례 형사사건에 승소한 것도 기억나지만 변호사란 직업이 당초에 꿈꾼 정의실현과 반대로 직업상 죄 지은 사람을 변호한다는 것에서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죄 지은 사람도 변호 받을 인권이 있다는 논리를 딱히 신봉해서라기보다는 법이 정한 만큼 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량을 발휘해 형량을 낮추었다면 그것은 제가 낮춘 것이 아니라 원래 법대로 적용한 결과였겠지요. 저는 그 법을 제대로 찾은 것이고요”

박 변호사는 어떤 사건을 맡건 사건을 입체적으로 뜯어보고 요점을 파악하는데 주력한다고 자신만의 변론방법을 소개한다. 잘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면 ‘좀 놀았을 때’의 여유와 태평을 소환해 한 발 물러서서 사건을 보는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여기에다 대학시절 학생회에서 1,2,3학년 연속 학년대표를 맡아 활동했고 총학생회장으로 추천 받았을 만큼 적극적이고 추진력 강했던 자신의 면모는 어떤 사건이건 자신감을 가지고 임하는 열정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흔히 ‘법조인’하면 공부만 한 엘리트나 ‘센님’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박명상 변호사는 이런 부분에서 분명히 차별점이 있다. 비록 ‘방황의 기간’이 있었지만 이 시기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세상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도 강점이다.

다소 어려운 과정을 거친 만큼 박명상 변호사는 자신의 어려웠던 시간 속에서 배운 경험을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일에도 적극적이고 법조인으로서 자신의 범주를 뛰어넘어 법조계에 헌신하고자 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외국어대학교에서 매년 로스쿨 후배들을 위해 노하우를 전해주기 위한 상담을 해주는 ‘글로벌 법률상담소 법률봉사’를 하고 있고 대한변호사협회 비상임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청년변호사사 특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주고를 졸업한 박명상 변호사는 고교 1학년 신라문화제 때 화랑선발전에 출전 최종 5인에 드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 누구보다 경주에 대한 향수가 짙다. 고교시절까지는 말 한 마디도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무서웠던 아버지를 떠올리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사랑과 포용력이 느껴져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세상 누구보다 존경한다며 경주는 아버지·어머니가 살고 계시다는 자체로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정겨운 곳이라 정의한다.

2019년 봄 경주중고서울동창회 동문전체등반대회에 참가해 ‘동떨어진’ 가장 막내 기수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박명상 변호사.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동문이건 향우건 모일 기회가 없었다며 코로나 충격이 완화되면 출향인 사회에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약속한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듬직한 체격, 시원시원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박명상 변호사를 보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법조계 뿐 아니라 출향인 사회에서도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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