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 삶이 담긴 공연과 그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으로 제주 경험

제주 ‘해녀의 부엌’, 로컬문화자원으로 새로운 문화콘텐츠 도입
20대 청년부터 90세 해녀까지
전 세대 어우러져 지역경제 선순환 이끌어내

오선아 기자 / 2021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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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에게 직접 음식을 전하는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글로벌화가 심화될수록 한 나라가 지닌 고유한 로컬문화는 도태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며, 우수한 로컬문화자원들은 현대적 가치로 재해석되지 못하고 기존 방식의 답습에만 그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자국의 로컬문화자원을 독창적 콘텐츠로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지역의 자원을 예술과 융합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예술의 대중화는 물론, 경제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문화자원이 풍부한 경주에서 과거로부터 전수된 조형 이미지의 진부한 답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경주지역만의 특별한 흡인력을 갖는 특징적 로컬문화예술의 필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문화상품보다 다양성은 물론 수요 측면에서 다가가는 로컬문화가 경쟁력 있다. 지역 로컬문화 발전은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가치와 직결된다.

이에 본지는 전국에 분포된 로컬문화자원의 특성을 이해하고 활성화 사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주지역의 로컬문화자원을 현대의 트렌드에 맞게 재창출, 지역 가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도 구좌읍 종달리에 가면 특별한 공연장이 있다.
창고로 방치됐던 활선어 위판장이 해녀의 숨을 넣은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재탄생 돼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늘고 있다. 시간이 멈췄던 이곳을 활성화 시킨 주역은 다름 아닌 청년 예술인 김하원(30) 대표다.

김하원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 출신인 그녀가 해녀의 부엌을 기획하게 된 것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 가격 경쟁력에 밀려 적절한 비용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사실 그녀의 가족 역시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해녀의 문제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해녀들 생계에 도움이 될지, 또 어떻게 하면 해녀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많은 고민 끝에 그녀는 스스로가 잘 할 수 있는 연극으로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해녀의 부엌’.

 해녀의 부엌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해녀와 그들의 채취한 뿔소라 등 해산물의 가치와 의미를 ‘제주 해녀 다이닝’이라는 융복합 콘텐츠로 로컬 크리에이팅 했다.

해녀의 부엌은 극 형식의 공연을 관람하며 개별준비되는 한상차림을 즐길 수 있는 ‘해녀이야기’, 공간이 바닷속으로 변하는 영상기술을 가미한 연극 ‘부엌이야기’ 등 두 종류의 공연-다이닝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 해녀 권영희 할머니.
(사진 해녀의 부엌)

#종달리 최고령 해녀 권영희 할머니의 삶을 담은 공연 ‘해녀이야기’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조명이 꺼지고 애절하고 구슬픈 ‘이어도 사나’ 제주민요가 들려오며 연극의 막이 오른다.
‘이어도 사나’는 제주도에서 입으로 이어져 오는 민요로 고기잡이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나 총각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다시 돌아오길 염원하며 부르는 노래다.

“욕심내멍 죽고 사는 건 사람 일이라. 살리는 건 바다 몫이고”

공연 ‘해녀 이야기’는 이곳 종달리 최고령 해녀인 권영희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막내딸 권영희 할머니가 갓 말이 트여 ‘아빠’를 겨우 말할 즈음,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갔던 아빠를 풍파로 잃게 된다. 영희 할머니의 어머니인 금덕, 그 심정을 잘 아는 가장 친한 동료이자 가족인 미자는 그런 금덕을 위로한다. 놓으려던 삶의 끈을 잡고 힘을 내 다시 물질하러 나가는 해녀의 삶을 담은 이 공연의 마지막은 이야기 실제 주인공인 해녀 권영희(90) 할머니의 등장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삶의 일부가 바다였던 해녀들의 삶을 담아낸 이 공연은 어느새 관객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다.

↑↑ 해녀가 직접 소개하는 해산물 이야기. (사진 해녀의 부엌)

#제주의 음식과 해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공연 ‘부엌이야기’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귀한 상외떡, 해녀의 공동체 문화가 담긴 괴기반, 첫 어머니가 되는 순간 먹는 조배기 미역국,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채취한 뿔소라 등 해녀를 키운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든 해녀의 일생이 고스란히 공연에 녹아든다.

영상기술이 가미된 연극 ‘부엌이야기’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활용해 공간이 한순간 바다로 변하는 마법을 일으킨다. 열살에 물질을 시작해 80대가 된 해녀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 공연은 그녀의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할 때 함께한 음식을 통해 해녀의 부엌이 갖는 의미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다.

↑↑ 제주도 뿔소라. (사진 해녀의 부엌)

#해산물 이야기 (클래스)

‘제주도 뿔소라’는 현무암 구멍에 뾰족한 뿔을 끼워 거센 파도를 버텨낸다.
그렇게 자라난 뿔을 보고 꼭 ‘도깨비방망이’ 같다고 해 제주 해녀들은 뿔소라를 ‘도깨비 소라’라고 부르며 액운을 쫓는 상징으로 여기기도 한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뿔소라는 험한 바다에서 물질하며 가족을 먹이고 집안을 일으킨 제주 해녀의 삶과 많이 닮았다. 해녀의 부엌 공연이 끝나면 해녀가 직접 잡아 온 해산물 이야기가 이어진다. ‘뿔소라’ ‘군소’ ‘톳’ 등 제주의 특산물을 해녀의 재치 있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들을 수 있다.

해녀의 부엌 대표 음식이자 제주의 대표 특산물인 ‘뿔소라’는 쫄깃한 식감과 맛을 자랑한다.
게다가 깨끗한 바다에서 채취한 100% 자연산 뿔소라는 칼슘, 인, 비타민A,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있어 건강에 좋고 타우린 성분이 많아 간장보호와 피로회복에도 좋다. 지금껏 뿔소라는 일본 수출에 의존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수출이 줄고 최근 일본에서 소라 생산이 늘고 엔저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제주 해녀들이 채취한 뿔소라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치 하락한 제주 해산물 시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해녀의 부엌’은 제주 해녀와 협업하며 해녀들의 수입을 보장하고 뿔소라를 국내에 더 알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 개발 등 해녀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또 제주 뿔소라의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숨이 담긴 뿔소라 원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믿을 수 있는 해산물로 만든 도내 가공식품을 제조·유통하고 있다.

↑↑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김하원 대표. (사진 해녀의 부엌)

#해녀의 밥상 (차림)

잔잔한 음악과 함께 공연장이었던 공간은 어느새 레스토랑으로 변신한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제주의 신선한 채소와 고기로 한상차림이 완성된다. 공연을 통해, 혹은 해녀의 해산물 클래스를 통해 미리 만나본 제주의 특산물이기에 음식 하나하나가 특별해진다.

메뉴는 바다의 불로초 톳과 흠임자로 만든 고소한 건강죽 ‘톳 흑임자죽’, 낚시로 한 마리씩 잡아 은색비늘이 살아있는 제주 은갈치에 달콤한 구좌 무, 감자를 넣고 푹 익힌 ‘갈치조림’, 해녀들의 경조사 때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별미 ‘뿔소라 꼬지’, 바다의 검은 소 군소와 닭가슴살을 맛있게 버무린 무침 ‘군소 무침’,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를 묵으로 만들어 상큼하고 젤리 같은 식감의 ‘우뭇가사리 무침’ 등 제주 바다가 낳고 제주 해녀의 숨이 묻어있는 100% 제주 해산물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 관객들의 질문에 즐겁게 답변해주는 권영희 할머니(좌).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한 해녀의 이야기 (인터뷰 : 해녀 Q&A)

식사가 끝이 나면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한 권영희 할머니의 진실되고 생동감 넘치는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통역이 필요할 정도의 생생한 제주 방언은 관객 저마다의 다양한 해석으로 해녀들의 삶과 애환을 가슴에 품는다. 10살때부터 텃밭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내고 그것을 가지고 물질 연습을 해온 권영희 할머니는 불과 작년까지도 현장에서 해녀로 활동했었다.

예전에는 얇은 무명천으로 해녀복을 만들어 입고 물질을 했기 때문에 30분 물질하면 한두 시간은 몸을 녹여야 한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바다에 들어가고 또 들어갔을 해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한쪽이 시리다. 그래도 관객들의 질문에 긍정적이고 즐겁게 답변하고, 또 관객들의 호응에 평소 좋아하는 노래까지 선사하시며 공연을 즐기시는 해녀 할머니 모습에 ‘해녀의 부엌’에서의 감동은 배가 된다.


#지역경제 선순환 이끌어가는 ‘해녀의 부엌’

2019년 1월부터 운영해온 극장식 레스토랑 ‘해녀의 부엌’은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지역 가치 창업가’로 해녀 관련 공연과 제주 해산물로 만든 음식 판매 등 해녀의 전통성을 보전하고 제주 해산물의 가치를 전달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최우수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지역 가치 창업가는 지역의 자연적·문화적 특성을 소재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이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 해녀의 깊은숨과 한이 서린 뿔소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뿔소라와 사라져가는 해녀, 청년예술인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공존하고, 해녀가 잡은 제주의 해산물로 세계인의 식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다.

현재 ‘해녀의 부엌’은 제주 관광콘텐츠와 융합한 가정간편식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어촌계와 함께 2호점을 추진 중인 해녀의 부엌은 “실감형 콘텐츠를 체험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뿔소라·성게·돌문어 등 청정수산물로 HMR 상품으로 계속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면서 “제주 해녀와 어업인들이 해산물을 리브랜딩한 온라인 푸드몰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제주지역의 대표 문화자원인 해녀와 제주 특산물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알리는 가치창업가로 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늘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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