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농업의 새 비전 제시하는 노시우 대표

시우디자인센터·디자인학교 운영하며 농업디자인 선두주자

박근영 기자 / 2021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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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으로 농업의 발전을 꿈꾸는 노시우 대표이사.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산업에서 농사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생명과 관련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이니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사는 힘들고 돈 안 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농업을 혁신적인 산업, 미래 산업으로 말들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농민 스스로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하고 그 출발을 ‘농업디자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랜 기간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성장해온 경주출신의 디자인 기업이 있다. 시우디자인센터의 노시우 대표이사다. 노 대표는 디자인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하는 전국 유수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디자인학교를 운영하는가 하면 농민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든 디자인을 실제 인쇄물이나 포장지로 만들어 제공하는 인쇄센터를 운영하는 등 농업분야에서 특화된 다각적인 디자인사업을 이끌고 있다.
↑↑ 디자인학교 종료 후 남해시에서 발간한 결과 보고서

-생활 자체가 디자인, 대학 강의하며 농업디자인 특화, 전국 농업 생산업자와 지자체가 고객

노 대표가 처음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고교시절부터다. 아직 디자인이라는 말이 광범위하지 않던 시절 특별한 이유도 모른 채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에 끌려 전공을 디자인으로 선택했다고 회고하는 노 대표는 올해로 30년째 디자인 사업을 해온 전문 디자이너다. 다방면의 디자인 산업에서 유독 농업 디자인을 특화한 것에는 나름의 계기가 있었다. 협성대학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해태제과의 각종 제품 포장지를 디자인하던 모 디자인 회사에 취업해 식품 디자인을 시작한 것이 업계에 발을 들인 인연. 디자인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던 노 대표는 이때부터 학사 출신으로는 흔치 않게 대학 강단에 서며 디자인 실무를 강의한다.

특히 한국폴리텍 대학에서 7년 동안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은 것은 뒤에 자신이 만들 디자인 학교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명색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가지다 보니 이론 공부를 소홀히 할 수도 없어 이 과정에서 세종대학교에서 디자인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것도 의미 있다. 이후 세명대와 자신이 나온 협성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마침 시대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농업 선진화에 주목하고 농업 디자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때였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해오던 저로서는 사내 누구보다 농민의 심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효과적인 디자인을 만들 수 있었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농업 디자인과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맡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사업적인 가능성을 확신한 노시우 대표는 1999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시우디자인센터’를 창업했다. 진심이 깃든 감각적인 디자인 실력에 강연을 통해 얻은 신뢰와 명성은 노시우 대표를 농업 디자인 특화로 쉽게 전진하게 유도했다. 특히 노시우 대표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그 계기는 이 무렵 한국생활개선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독려하면서 농업분야에도 여성들의 진출을 적극 권장하던 때라 전국을 돌며 농업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노시우 대표가 열렬한 환영을 받기 시작한 것.

↑↑ 시우디자인센터가 만든 농업진흥청 브랜딩 디자인.

“사실은 이미지 관리에도 철저했습니다. 제가 술 담배를 하지 않다보니 자기 관리에 쉬운 편이었고 사람들 앞에 서다 보니 복장이나 외모에도 각별히 신경 쓰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도 엄격히 적용됐던 것이고 저로서는 디자인의 생활화가 이루어진 셈이지요”

이 과정에서 농업기술교류센터에 소속된 전국의 여성 연구원이나 관련자들과 친숙해졌고 자연스럽게 농업디자인의 특화가 가속화 됐다. 시우디자인 센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시우디자인센터가 디자인한 전국 각 지역의 농업 생산물들의 작업물들이 수 없이 올라와 있다.

농업 디자인으로 특화했지만 전국 지자체 대부분이 아직도 농업에 깊은 비중을 두고 있다 보니 역시 자연스럽게 지방자치단체들의 디자인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든든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 보니 지자체 공무원들도 까다롭게 간섭하기 보다는 시우디자인을 믿고 맡기는 선순환이 일어나 힘들지 않게 지방자치단체의 일을 맡게 되었다는 것. 역시 시우디자인센터 홈페이지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행한 다양한 디자인 제작물들이 대량으로 올라와 있다.


-‘이론부터 실기까지, 내가 생산한 농산물은 내가 디자인한다’ 농업디자인학교 만족도 최고. 경주 이사금 쌀과 해파랑 디자인도!

노시우 대표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농민들이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적극적인 디자인을 통해 판매를 촉진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역시 농민의 아들로 자라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농촌과 농민을 바라 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노시우 대표는 자신의 대학 강의와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농업디자인학교’ 강연코스를 개발했다. ‘이론부터 실기까지, 내가 생산한 농산물은 내가 디자인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농업디자인 학교는 노시우 대표만의 오랜 노하우가 만든 결정체다.

6일 동안 매일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농업디자인학교는 한 회당 10여 명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전체적인 과정은 ‘개강 및 디자인 이해-브랜딩 및 과제발표-네이밍 도출 이미지 구성 및 명함 디자인-브랜드 포장 디자인- 상표출원-품평회’ 식으로 짜여 있다. 강의에 참여하는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농산품의 특징과 장점을 파악한 후 노 대표와 함께 이를 어떻게 특화시키고 어떤 식으로 디자인해 명품으로 재탄생 시킬지를 6일 안에 공부하고 실제로 디자인까지 마치게 된다. 아무런 실체 없이 빈손으로 들어와 빈손으로 나가는 교육프로그램과 달리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작업물까지 만들다보니 참여하는 농민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노 대표는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실무 이론을 바탕으로 농민들에게 개별상황에 맞는 컨셉을 제시하고 농민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끌어내어 농산물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농업디자인학교를 개설한 이후 전국지자체들과 농민단체 등 지금까지 50여회의 학교를 열었다. 덕분에 노시우 대표에게는 적어도 500여명의 농민 제자들이 전국에 분포하는 셈이고 그들이 또 다른 디자인 고객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중에서도 남해군의 경우 농민들의 결과물을 중심으로 소형책자를 만들 만큼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농민에 대한 이해가 높고 실무에 참여하다 보니 농촌진흥청 디자인 자문위원, 경북농업기술원 농식품기술자문위원 등 공적 역할을 맡는다거나 수차례에 걸친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수상을 비롯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추천 디자이너 등 화려한 이력이 따라온 것은 덤이다. 이들 역시 노시우 대표에게는 디자인 한 우물을 파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산물일 뿐이다.

농민들과 일하다 보니 경주 일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것이 노시우 대표에게는 또 다른 보람이다. 경주 브랜드 쌀로 자리잡은 ‘이사금’과 경주 수산물 공동 브랜드로 익숙해진 ‘해파랑’이 대표적이고 이 밖에도 다양한 경주 농산품의 디자인에 관여해 경주 농산물의 이미지 고양에 참여했다.

식품 디자인에서 출발해 농업 디자인의 선두주자로 활약하는 노시우 대표이다 보니 자신만의 확고한 디자인 철학도 생겨났다. 그것이 바로 정직한 디자인이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디자인을 보면 생산품과 디자인의 이미지가 전혀 다르거나 사실보다 과장되게 디자인한 것을 쉽게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항구적으로 농업 생산품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농업 자체를 망가뜨리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직한 디자인이란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으로 농업의 미래를 진일보 시키고 싶다’는 노 대표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다방면 농업인들과의 네트워크와 디자인학교를 통한 연대, 시우디자인센터의 역량을 모아 농민을 위한 디자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장구한 이념이 어쩌면 디자인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상상을 하니 노시우 대표의 작업에 또 다른 비전과 가치가 보인다.

전국의 농민을 대상으로 학교와 디자인 상담 등을 진행하다보니 정작 가산디지털단지 자신의 디자인 사무실에는 머물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할 만큼 전국구가 된 노시우 대표. 그러나 그는 이런 바쁜 와중에도 무산중고등학교 서울동창회 사무국장을 15년 가깝게 맡아오고 있고 경주향우회에도 지역총무를 맡아 다년간 봉사해 왔다.

“경주요? 사실은 명절 때면 한 열흘 전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고향은 떠올리는 그 자체로 너무 좋지요”

따지고 보면 경주는 우리나라 고대 문화, 그 눈부신 디자인이 응집된 도시다. 노시우 대표가 경주만 떠올리면 설레는 이유 역시 경주 사람이라는 유전자 속에 녹아있는 고유의 본성이 깨어나기 때문은 아닐까? 농업 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며 새롭게 번창하는 농업을 꿈꾸는 노시우 대표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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