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암장으로 산 닮은 넉넉한 인성 가르치는 차재욱 교장!

“클라이밍하면 나쁜 곳으로 절대 빠질 수 없어요”

박근영 기자 / 2021년 0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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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밍을 배우는 회원들과 지도하는 차재욱 교장.

지난달 29일 황성동 1053-54번지 건물 4층에서 운영 중인 경주클라이밍스쿨 & 경주 클라이밍 센터에서 뜨거운 열기가 타올랐다. 제22기 기초암벽등반 강습반이 시작되고 있어서였다. 차재욱 교장을 비롯한 경주클라이밍 관계자들과 강습생들이 내뿜는 호기심과 열망이 실내 암장을 가득 채웠다,

“클라이밍은 학생들에게는 건강과 집중력을, 시민들에게는 사회생활 지친 몸을 회복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줍니다. 클라이밍을 통해 서로의 힘과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암장을 가르치고 산의 평화로움을 전파하는 전문 산악인 차재욱 교장을 만나기 위해 경주클라이밍 스쿨을 방문했다.

실내의 모든 벽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손에 힘이 팍팍 들어갈 법한 볼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난이도에 따라 벽들의 경사가 달라지고 안전을 위해서 바닥에는 푹신한 매트들이 꼼꼼히 깔려 있다.

↑↑ 제22기 기초암벽등반교실 수강생들.

-운동 대비 가장 많은 근육 이용, 시간대비 칼로리 소비량도 최대, 두뇌 활성화에도 매우 좋습니다.

“인공암벽 하는 학생들은 인내심이 생겨서인지 학교생활도 모범적으로 잘 합니다. 그게 이 스쿨을 운영하는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하고요. 운동 대비 가장 많은 근육을 이용하는 운동이 바로 클라이밍입니다. 시간대비 칼로리 소비량도 가장 많고요. 두뇌 플레이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니 고도의 집중이 요구되고 그만큼 다른 잡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재욱 교장은 ‘교장’이라는 명칭이나 학생들이 ‘차쌤’으로 부를 때 느끼는 의무감이 매우 크다며 이 봉사의 의미를 되새긴다. 차 교장은 경주고에 입학했다가 가정 형편상 빠른 취업을 위해 경주공고로 옮겨 졸업했다. 이런 특별한 이력은 청소년기 자괴감과 여러 갈등의 요인이 돼 소년 차재욱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3 때 산을 만나게 된 차재욱은 그간의 방황을 말끔히 해소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차 교장은 바로 이런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혹여 자신의 청소년기와 유사한 방황에 빠졌을지 모를 지금의 학생들에게도 클라이밍 스쿨을 통해 자신과 같은 인내와 수련의 시간이 주어지기 바란다.

클라이밍 스쿨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봉사 활동이기에 생업은 따로 있다. 원래 포항대학에서 자동차 공학을 전공하고 기계공학을 부전공으로 한 차 교장은 현재 경주의 자동차 부품제조기업체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위덕대에서 사회체육학을 전공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직장생활 짬짬이 한 번 더 대학을 다닌 것. 이만큼 차 교장이 클라이밍 스쿨에 쏟는 열정이 각별하다.

직장생활 마친 후에 암벽학교에 나가 학생들과 함께 땀 흘리는 차교장의 일상은 언제나 틀에 맞춘 듯 빡빡하지만 자신을 믿고 직책을 맡겨준 회사에나 역시 자신을 믿고 시간을 내주는 학생들에게나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그래서 어느 한 곳 소홀하지 않도록 직장이건 스쿨이건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은 온전히 그 시간에 집중한다는 각오다.

그런 이유로 경주클라이밍스쿨은 매일 오후 6시부터 시작해 10시까지 열린다.

“이게 보기에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인공암벽에 박힌 볼드들은 보기에는 아무나 쉽게 잡고 이동이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볼드의 형태가 제각각 다르고 어떤 것은 손가락 하나 겨우 끼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심지어 두세 개의 손가락으로 움켜잡듯 잡아야 하는 볼드도 있어 악력을 키우고 팔심을 기르지 않으면 초보자 코스에도 적응하기 힘들 수 있다. 특히 난이도 높은 경사면에서는 다리로 버틸 체중이 아래로 처져 팔심만으로 볼드를 잡고 버텨야 하는데 이를 위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볼드를 잡고 이동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단계를 높여나가는 재미가 남달라 한 번 이 맛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마력을 지녔다.

차 교장이 산악부를 알 게 된 것은 고2때 입사한 만도기계에서 산악부를 접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1988년 고교 3년생 때 등산에 입문한 차재욱 교장은 100리터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야간산행을 하고 크랙터 신고 야간등반까지 경험하면서 자신의 꿈을 알피스트로 정했다고 회고한다. 이후 산에 미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

“1997년 북미 메킨리를 시작으로 죽을 동 살 동 고산등반을 시작했지요. 크레바스에 빠지는 등 죽을 고비도 몇 번이나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에게 빙벽등반을 지도해주시던 스승님의 부름으로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와 심판을 거쳐 자연스럽게 산악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차 교장은 경주에서는 어느덧 중견 산악인이 되었다며 그 동안 자신을 지원해준 선배 산악인들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표한다. 특히 경주에서 활동하는 동안 경주시 산악연맹 창립회장이자 일요산악회 이광오 회장(대평건설 대표), 경주클라이밍스쿨 동문단체 산우회 윤경종 회장, 가온자리한의원 성현호 원장 등 선배 산악인들의 오랜 격려와 후원은 경주클라이밍 스쿨 활성화의 큰 원동력이었다며 감사했다.


-‘독하게 해라’,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해라’는 말 대신 ‘할 수 있을 만큼 하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더 자주합니다!

그런 차 교장이 지금처럼 클라이밍 스쿨을 만들게 된 것은 알프스 등반에서 만난 신선한 충격에서 비롯됐다.

“어린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가 자연암벽등반하며 소통하는 모습에서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요건인 배려와 인내, 서로를 격려하는 산악인 가족의 정, 자일을 통한 정을 느낄 수 있었지요. 죽도록 훈련하고 이겨내려는 우리나라 산악 교육방식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경주에도 구현해 보고 싶었다는 차 교장은 2002년 경주알파인스쿨을 만들면서 마침내 이 외롭고 힘든 여정에 발을 디뎠고 올해는 제22기 기초암벽등반 강습반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명색이 22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경주에서 클라이밍에 대한 인식은 매우 한정적이다. 야구나 축구처럼 대중적이지 못하고 골프처럼 이슈성도 없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모르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황성공원에 있던 인공암벽 시설이 경주 산악인들의 갈등과 시의 정책상 무관심으로 사라진 것을 뼈아프게 되짚는다. 다행히 관련자들이 마음을 모아 다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되찾는 노력을 진행 중이라고.

무엇보다 차 교장은 경주의 학교들이 클라이밍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기대했다. 다른 운동에 비해 집중도가 높고 어떤 운동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며 ‘산을 닮은 올바른 품성’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주에서 클라이밍 동아리나 특별활동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는 학교는 신라고와 근화여고 두 학교다. 한때 모교인 경주공고가 적극적으로 클라이밍 반을 운영해 전국대회를 제패하기도 했지만 지도 교사가 빠지면서 급격히 쇠락한 것이 아쉽다.

클라이밍 센터에 대한 감회도 여러 갈래로 교차한다.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름의 보람을 얻어왔지만 가족들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 매일 스쿨 운영하느라 가족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내주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상당부분 스쿨에 투자하다 보니 가족들의 삶에는 자연 그만큼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사명감’이나 ‘지도자’라는 부분에서 세뇌 되어버린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선배님들이 물러나시며 물결 따라 밀려왔다는 기분도 듭니다”

이렇게 클라이밍 스쿨을 운영하는 차 교장은 그 인공암벽 자체도 중요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암벽을 통해 실제 자연암벽을 가르치고 보급하고 싶어 한다. 자연암벽을 통해 산악인이 된 자신인 만큼 후배들에게도 자연암벽을 통해 대자연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미 클라이밍 스쿨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이 분야에서 참된 지도자가 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 만큼 앞으로 가르치는 역할에 맞도록 부단히 자신을 바꾸어 나갈 각오다. 특히 스포츠계가 과하게 가르치는 ‘독하게 해라’,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해라’는 말 대신 ‘할 수 있을 만큼 하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을 더 자주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이곳에 오면 마음껏 놀기 바랍니다. 집중할 때, 그 순간만 즐겨도 됩니다. 그러면 클라이밍이 좋아지고 그러다가 대자연을 배우게도 되겠지요”

차재욱 교장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여느 일반 학교 교장들도 가지지 못한 분명한 교육 철학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암장 가득 설치된 볼드들이 유난히 단단해 보인다.

▶클라이밍 문의 : 054-621-8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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