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민박 ‘혜리원’에는 힐링의 보물들이 녹아 있다

150년 한옥, 툇마루와 남산 외갓집 정겨움이 선물!!

박근영 기자 / 2021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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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리원의 보물 1호 캘러리 명지랑.

-사진작가 한용석 씨와 노래하는 이경미 씨 부부가 선물하는 ‘당신을 위한 하룻밤’

경주 남산이 바로 뒤로 솟아있는 양지바른 산자락 마을 남산동에 그림처럼 아늑한 한옥 고택 민박집 ‘혜리원’이 있다. 마을을 들어서면 우선 가장 먼저 눈길 끄는 것이 신라의 옛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보물 제124호 남산리 삼층석탑 두 기가 동서로 서있고 그중 서탑은 팔부신중을 품은 채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탑을 오른편으로 끼고 걸으면 불탑사가 나오고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왼쪽으로 휘어지는 짧을 골목 뒤로 야생화들이 이곳저곳 곱게 피어있는 오래된 한옥이 나타난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큰 채가 보이고 왼쪽과 오른쪽으로도 각기 포실해 보이는 작은 채가 각각 서있다. 자세히 보면 큰 채는 네 개의 방이 툇마루로 연결돼 있고 각 방마다 유신, 춘추, 문무, 선덕 같은 낯익은 이름의 표찰들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식당가 주방을 겸한 공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도 세 개의 문 위로 화랑과 원화라는 이름이 걸렸고 그 위로 역시 오래돼 보이는 골기와가 얹혔다.

마당을 들어서니 한창 꽃밭에서 풀을 솎아내던 안주인 이경미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이어 혜리원 바깥 주인장 한용석 사장도 반갑게 손을 내민다. 처음 만났는데도 오랜 친구처럼 정다운 것은 SNS상으로 워낙 자주 만난 덕분일 것이다.

실제로 한용석 사장은 페이스 북뿐만 아니라 경주에서 사진 좀 찍는다는 분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실력 있는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사진학을 전공했고 경주 우체국 근처 ‘한솔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며 경주대에서 사진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했을 만큼 사진에 조예가 깊다. 게다가 한 사장은 목공예에 심취해 어지간한 주방용구와 가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재주를 지녔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장기적으로 고택 민박사업을 하기 위해 혜리원을 구입해 고치기 시작하면서 필요에 의해 시작한 목공일이 지금은 웬만한 공구들과 기계까지 갖춘 전문 공방으로 발전해 있다. 주객실과 주방 사이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공간에는 한용석 사장이 온전히 목공예에 빠지는 잘 정돈된 목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부인 이경미 씨는 경주 유일의 주부밴드 ‘맘마스’에서 일렉 기타를 맡았던 있는 자칭 ‘아마추어’ 뮤지션이다. 아마추어란 말이 무색하게도 코로나19 시기에도 경주의 유명한 관광지를 무대삼아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심심치 않게 공연해 왔을 정도다. 아쉽게도 작년 가을, 밴드를 그만두고 지금은 통키타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고.

이렇다 보니 이들 부부가 애지중지하는 또 하나의 건물이 본채 건물과 오른쪽 작은 채 건물 사이에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갤러리명지랑’이다. 이곳은 혜리원에 투숙하는 방문객에게 ‘보물1호’ 같은 공간이다. 네댓 개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이 건물에는 이들 부부의 신바람과 예술혼이 온전히 담겨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사진이다. ‘최고의 사진작가’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울림을 주는 사진들이 갤러리 벽들을 장식하고 있다. 아무리 사진에 문외한이라도 단박에 빠져들게 하는 놀라운 작품들이다. 사진만으로 힐링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사진들을 보는 것은 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덤이다. 작품들 앞으로 한용석 사장의 손때가 오래 묵은 카메라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이 카메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담긴 사진의 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만큼 가치 있어 보인다. 갤러리 가운데로는 한용석 사장이 손수 만든 수반과 도마. 목공주방 세트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것 역시 작품이다.

당연하게도 이 씨의 전자기타와 통기타들이 위용을 뽐내며 걸려 있고 스피커들이 갤러리 안쪽 구석에 놓여있다. 이쯤되면 이 씨의 연주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공간은 경주의 어느 숙소에서도 마주치지 못할 ‘오직 하나’이자 ‘가장 좋은 하나’의 선물이다. 문득 이씨 페이스북에 소개됐던 혜리원에서의 작은 음악회가 기억난다. 오카리나 연주로 대미를 장식했던 어느 연주가의 아련한 곡조가 귓전에 온전히 남아있다. 운 좋게 시간을 맞추면 혜리원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연주회도 기대할 만하다.

집 구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 부부가 아끼는 보물 2호가 공방 뒤쪽에 마련된, 역시 한용석 사장이 직접 만든 벤치용 의자다. 다짜고짜 앉아보라고 하는 부부의 권유에 무심코 앉은 기자는 ‘우와~’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얕은 담장 너머로 정겹게 서 있는 남산이 유려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남산에서 유명한 명승지인 상사바위가 청정한 기운 품은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정면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혜리원 주변은 온통 볼거리가 널려 있다. 집 근처에 연밭과 아름다운 정자로 유명한 서출지가 있고 볼거리 많은 절 무량사도 있다.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1박2일로 유명해졌던 칠불암과 신선암도 만날 수 있다. 동남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삼국통일 위인전과 화랑의 집, 헌강왕릉과 산림환경연구원의 아름다운 숲도 만날 수 있다. 동구 밖 맞은편으로는 경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길도 있고 주변에는 경주에서 유명한 맛집과 친근한 카페도 늘려 있다.

↑↑ 혜리원 큰 채.

-남산과 사진 갤러리, 작은 음악회와 매일 찬란한 부부가 전하는 따듯한 마음이 녹아 있는 ‘외갓집’
“저희 부부에게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오늘 이날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날입니다”

남산을 바라보던 이 씨의 말이다. 얼마 전 교육방송(EBS) 간판 감성다큐 ‘한국기행 특집, 당신을 위한 하룻밤 제4편’에 소개된 두 부부의 이야기가 가슴을 적신다. 사진관을 하면서 사용하던 용액에 포함된 포름알데히드에 다년간 노출되었던 한 사장은 혜리원을 사서 온 후 뜻밖에 큰 병이 걸린 것을 알게 됐다. 이때 부인 이경미 여사의 헌신적인 간호와 당당한 응원이 병을 치료하는데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며 한용석 사장이 지긋한 눈으로 아내 이경미 씨를 바라본다. 웃음기 많은 이 씨의 꿋꿋한 표정에는 살아오면서 자신을 언제나 우직하고 성실하게 대해온 남편에 대한 신뢰가 가득하다. 어쩌면 서로를 아끼는 이 부부의 따듯한 표정이야말로 혜리원 최고의 보물이 아닐까 가늠하게 된다. 상사바위 못다 이룬 할아버지와 소녀가 생을 거듭해 이들 부부로 다시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이런 엉뚱한 상념을 한용석 사장의 말이 뒤흔들어 놓는다.

“그렇게 아플 때 목공예에 빠졌지요. 무엇이라도 하고 있으면 아픈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한 사장의 고백을 듣자니 갤러리에 놓여 있던 여러 가지 목공예품들이 단순한 목공예가 아닌 거센 병마와 싸워 이긴 한 사장의 단단한 용기가 깃들인 신표들로 다가왔다.

혜리원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며 구체적으로 혜리원 탐방에 들어가 보았다. 혜리원은 이른바 고대광실 기와집과 달리 약간 낮은 듯 보이는 한옥집이다. 그래도 이 집이 경주중고 창립자이신 수봉 이규인선생 인척이 살던 집으로 무려 150년 된 한옥이라고 소개한다. 집은 낮아 보이지만 방안은 오히려 높아 보인다. 이 집을 수리할 때 일부러 천장을 만들지 않고 추녀로 받치는 나무들을 그대로 드러내서 고쳤기 때문에 실내 분위기는 나무에서 풍기는 특유의 질감과 우뚝 솟는 방안의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저희 집에 없는 게 하나 있는데 혹시 눈치 채셨나요?”

역시 웃음 가득 머금은 이 씨가 찾아보라 숙제를 준다. 그러고선 생각도 하기 전에 ‘텔레비전’이라고 바로 답을 말해준다. 한옥에 들른 걸음에 가족들 간에 텔레비전 없이 오순도순 대화를 나눠보라는 숨겨진 배려라는 것. 그러고 보니 혜리원에는 굳이 텔레비전 아니라도 볼 것이 너무 많다. 뒤안에는 남산의 풍광이 그림처럼 열려 있고 앞마당에는 야생화와 꽃나무와 넓은 하늘이 열렸다. 부부의 갤러리는 시간 잡아먹는 타임머신이고···!!

비록 한옥이지만 방안에는 냉난방 시설과 개별 샤워장, 화장실까지 다 갖추었다. 한옥 체험도 좋지만 그래도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부부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식당이 딸린 주방에는 특이하게도 다른 숙소에서 못 보는 진귀한 볼거리가 하나 있다. 주방을 만들면서 우물이 메꾸지 않고 유지해 온 것이라고. 집안에 우물이 있는 구조는 기자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일단 신기함에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저희 집은 제가 어렸을 때 자주 가던 외갓집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 벤치에 앉아 남산을 바라보는 이경미, 한용석 씨 부부.

이경미 씨의 말은 다시 해석하면 아내가 평안한 집이라 혼자 해석해보았다. 이경미 씨가 어렸을 때라면 부질없는 남존여비가 만만치 않게 남아 있던 시절이다. 다시 말해 외갓집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훨씬 편한 집이고 그나마도 그 시절, 완고한 시집살이로 내놓고 외갓집 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마지막 유년 세대를 산 사람이다. 혜리원을 아내들이 좋아할 만한 와갓집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경미 씨나 그걸 무덤덤하지만 깊은 공감의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한용석 씨의 마음이 온 집안 구석구석 녹아 있다 생각하니 혜리원이 한층 더 편안해 보인다. 혜리원에 핀 이름 모를 야생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도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온다. (예약 010-4752-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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