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지역 미술인 인식 변화가 미술관 정체성 살린다

타 지역 공립미술관 운영사례

오선아 기자 / 2020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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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람미술관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지자체의 문화정책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공공미술관 설립이 늘어나고 있다. 공공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이라고도 불리며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비영리 목적 미술관이다.
시민들에게 전시와 교육을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가 1991년 제정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하면 ‘미술관이란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크게 국립미술관, 공립미술관, 사립미술관, 대학미술관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중 공립미술관은 전국 64개(경북도내 5개) 가운데 경주는 경주예술의전당 내 ‘알천미술관’과 경주엑스포 공원 내 ‘솔거미술관’ 두 곳이 존재한다.

현재 경주는 두 공립미술관 모두 전시, 교육, 체험, 연구 등 외형적으로는 신라천년의 고도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근시안적 정책에 따른 지역미술관의 정체성 모호함, 안일한 운영체계 등 공립미술관으로 공공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한국근현대미술 중심지인 경주의 위상 제고를 기대하며 타지역 공립미술관 운영 사례들을 바탕으로 경주 공립미술관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아람미술관

-타지역 공립미술관,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등록일 2011.9.1.)

모네, 세잔, 샤갈, 로댕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찾아가야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형 예술 공연장인 고양아람누리 초입에 위치한 아람미술관은 넓이 1369.57㎡ 높이 4m의 전시공간을 가지고 있다.

우수한 국내 작가들을 발굴, 육성해 한국미술의 흐름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회화, 조각, 사진, 미디어, 디자인 등 다양한 세계 미술 경향을 국내에 소개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아람미술관은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공립미술관이다. 수준 높은 국내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국제전시 및 실험적인 현대미술 전시를 지향하는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은 전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실장을 미술감독으로 위촉해 2007년 문을 열고 본격 운영에 나섰다.

고양문화재단 미술관과 시작을 함께한 김언정 학예사는 “아람미술관 개관과 함께 전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실장님을 전시 감독으로 모셔서 2년간 미술관 운영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 선보인 기획전 ‘프렌치모던’도 그분의 역학관계로 인한 인연으로 마련됐다”고 말했다.

갤러리는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고, 미술관은 중요한 미술계의 흐름을 보여주고, 그 흐름을 제시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연구하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그 기능이 다름을 헷갈리는 지역미술인들의 적지 않은 불만과 간섭도 감내해야 했다고.

김 학예사는 “지역미술인들의 전시 지원은 대관 공간, 기획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분리를 통해 미술관 체계를 잡으려고 노력했다”면서 “다행히 고양시에는 미술인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지역미술인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미술인들에게 필요한 정책(예, 레지던시 공간 제공, 작품 구매, 작품 팔 수 있는 마켓 마련, 국내외 유명 아트페어 부스 마련 등)을 정확하게 짚어낸다면, 미술관, 지역미술인 불만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 박수근 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등록일 2003.2.28.)

↑↑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관장.
박수근 미술관은 작가의 작품세계와 예술혼을 기리는 동시에 지역의 대표 문화공간이 되고자 2002년 10월 25일 박수근 작가의 생가에 건립됐다. 박수근 선생의 소박한 삶과 작품세계를 연구하고 이를 전시, 교육, 출판사업 등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으며, 역량 있는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몰두 할 수 있도록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관은 박수근 작가의 손길이 담겨 있는 유품과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삽화 등 여러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선별해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박수근 작가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근현대 한국 화단의 주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소장, 연구, 기획 전시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관장은 “박수근 미술관은 선생님의 삶과 예술세계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수근기념 전시관(2002)’ 한 동으로 시작해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을 개최하고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교육과 세미나가 진행되는 ‘현대미술관(2005)’, 박수근 선생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자연에 새겨진 익숙한 질서를 존중하는 기념홀인 ‘박수근 파밀리온(2014)’, 어린이미술관(2020)이 차례로 지어지면서 작가미술관이지만 종합미술관으로 체제를 갖춰가고 있다”면서 “국비 사업으로 건물이 조성됐지만, 미술관 정체성에 맞는 콘텐츠와 운영이 중요하다. 박수근미술관이 성장하기까지 이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자부심과 자긍심을 주는지 타당성을 함께 공감하는 지역사회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 박수근미술관이 7억8750만원에 소장한 나무와 두여인.

이어 “파리에 반고흐 기념관이 있다. 죽기 두 달 전 반고흐가 머물렀던 곳인데 반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큐레이터가 수십년동안 자발적으로 운영하면서 반고흐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갖춰가고 있다. 아주 작은 기념관이지만 그의 생애와 흔적, 연구 자료들 때문에 반고흐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찾아간다”면서 “아카이브를 잘 정리하고 활성화해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박수근을 알고자 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박수근 미술관에 가봐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박수근미술관은 올해 3월 박수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무와 두 여인’을 7억8750만원에 소장했다.
엄 관장은 “박수근 생가터에 미술관이 처음 개관할 때만 해도 컬렉션은 전무했고, 돈을 들여 작품을 산다는 의식도 부족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변화됐다. 군에서도 얼마가 됐든 얼마가 됐든 꼭 사라고 힘을 실어주셨다”면서 미술관의 공간과 작품에 대한 지역사회의 의식변화에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 장욱진 미술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등록일 2014.7.8.)

↑↑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 김명훈 학예사
미술관 건물 앞으로 계곡이 흐르고 울창하게 가꾼 수목 사이로 조각 작품이 장관을 이룬다.
미술관 외형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창문과 천장의 각도, 크기, 계단의 꺾임, 채광변화 등 새로운 공간이 열리며 오감을 자극한다.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욱진(1917-1990)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며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미술 작품과 자료를 전시, 연구 수집하기 위해 2014년에 개관했다.

순수한 이상적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장욱진 작가와 관련된 후대작가의 주제기획전시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을 연구하고, 시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미술창작스튜디오 운영 등을 통해 지역사회 및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신진 및 중견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를 통해 회화, 사진, 복합매체 작가들을 위한 777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전시, 워크숍, 오픈스튜디오, 기획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장욱진미술관 김명훈 학예사는 “장욱진 선생의 예술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장욱진미술관이 설립됐지만 시립이다 보니 지역미술가, 특히 중·장년 미술인들을 발굴·육성하는 힘을 기울이려 한다”면서 “지난해에는 양주팔괴라 해 양주에 있는 개성 있는 작가 8분을 선정해 전시를 했다. 청나라 때 개성 있는 작품을 추구하는 화가단체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호응이 좋아 해마다 이어 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술관 주변에는 문화예술 특구로 가나 아트파크, 나전칠기체험관, 회암사지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올해 문화예술기관들과 제휴를 맺어 다양한 행사를 협업하거나 할인 이벤트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장욱진미술관 건물의 모티브가 된 작품 ‘집과 아이’

장욱진미술관은 올해 미술관 개관 후 처음으로 작품을 구입했다. 유화 ‘집과 아이(1959)’와 ‘가족(1976)’을 유족에게서 구매한 것.

김명훈 학예사는 “개관 후 처음 예산을 세워 대표작을 구매했다. 특히 작품 ‘집과 아이’는 장욱진 미술관 건물의 모티브가 된 그림이기에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장욱진 작가의 예술적 가치를 알릴 수 있도록 장욱진 작가와 작품, 장욱진미술관에 대해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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