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쟁이 최재식 회장-은퇴 후 명함에 옛 직함 쓰지 마라

스스로 꼰대적 자세서 멀어져야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 어울릴 수 있어

박근영 기자 / 2020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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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식 회장

-공무원 연금공단 이사장에서 저작과 강의 봉사로 돌아온 값진 삶

‘Latte is horse’라는 유머가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시쳇말로 꼰대들의 식상하고 공감 얻지 못하는 말을 꼬집은 것이다. 이보다 더 인정받지 못하는 표현이 ‘내가 한 때는 잘 나가던 누구였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내가 한 때 어땠어’라고 말하면 당장 ‘그래서, 지금은 뭔데?’라는 비꼼이 돌아올 수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높은 직위, 특히 군, 경찰, 공직 등 서열이 분명한 조직의 고위직 근무자일수록 은퇴 후 삶의 만족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자신의 지위 앞에 머리 숙이고 명령일하 절도 있게 움직이던 아랫사람들의 호응이 끊어지고 나면 혼자인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퇴직 후를 대비한 심리적, 기술적 교육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맥락상 어쩔 수 없이 전직을 밝히자면 ‘Go쟁이’ 최재식 회장은 바로 이런 잘 나가던 공직자로 은퇴한 인물이다.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잔뼈가 굵어 공단의 별인 이사로 정년퇴직했고 불과 8개월 후 자신이 평생을 바쳐 복무한 공단에 공단 내부자로는 처음으로 이사장으로 추대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올해 3월에 펴낸 책 ‘제3기 인생혁명’에서 주장한 글들은 퇴직자 혹은 퇴직전 현직자들이 귀담아 들을 주옥같은 명언들이 수록됐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은퇴 후 명함에 옛 직함을 쓰지 마라’

“과거는 과거인 채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미래를 응시해야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전직을 명함에 쓰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내재된 지위의식과 헛된 자존심일 뿐이지요”
스스로 명함에 ‘Go쟁이’라 쓰고 사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블로그 주소만 넣고 뒷면에 ‘Go쟁이-놀고, 쉬고, 일하고, 가슴 뛰는 인생은 Go쟁이가 만든다’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고위 공직자의 은퇴 후 명함이 이토록 빛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그 자신 은퇴자, 특히 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각보다 두텁게 느껴진다고 주장한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으레 무식하고 고지식하고 불친절하고 이기적이고 비생산적이고 의존적이고 보수적이고 슬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연령에 대한 차별 아닐까요?”

나이 먹으면서 몸이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노숙해지고 현명해지는 긍정적인 결과도 생긴다며 역설하는 최회장은 노인 스스로 꼰대적 자세에서 멀어져야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 어울리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조언한다.

최 회장은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 인구가 급증하는 만큼 사회가 노년인구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표적으로 앞으로 도시들이 ‘고령친화도시’로 전환돼야 한다는 말은 비단 노인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 전반에 효용성 높은 제안이다. 독립적인 생활유지를 위한 지원과 보건 및 교통, 노인이 편하게 이용 가능한 주택·공간·건물, 각종 사회참여 제도 및 지속적인 정보 제공 등은 노인을 위한 것인 동시에 또 다른 노인으로 바뀔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한 방안일 것이다. 일자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 그의 역작 제3기 인생혁명.

-노인들이 청년 일자리 빼앗아 간다는 것은 착각, 소비주체, 일자리 창출의 동력 될 수 있어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다보니 노인들이 일자리를 다 뺏어간다고 지레짐작하지만 실상은 노인들의 일자리는 노인들에게 특화된 일이고 젊은이들은 보다 생산적이고 전문적이고 상대적으로 힘든 제조업, 지식산업, 연구개발과 제품혁신 등의 일자리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인 일자리가 소비주체를 양성하므로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버산업, 실버마켓의 경우는 또 다른 청년 고용창출의 효과도 준다며 불만 가질 법한 청년들을 달랜다.

퇴직 이후 노년의 삶이 적극적이고 편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현직에 있을 때부터 은퇴 후를 미리 대비하라고 권한다. 이 점에서 최재식 회장은 평생 공무원 연금공단에 헌신한 인물답게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잠깐, 그는 말도 말고 탈도 많았던 공무원 연금 개혁을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연금개혁은 최재식 회장이 제 15대 이사장 시절이던 2015년 실행된 일대 파란이었던 만큼 그 공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993년 이후 공무원연금은 연금 납입액보다 지출액이 많은 적자 상황이 지속되었다. 결국 2001년부터 이를 메우기 위해 ‘정부 보전금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2001년 600억 규모였던 보전금이 2013년 무려 2조원 규모로 늘어나자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개혁의 골자는 ‘더 내고 덜 타는 것’이었고 이로 인한 공무원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당시 개혁의 최대 과제는 공무원 연금을 지속가능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무사회의 불만이 고조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때 개혁하지 않았다면 공무원 연금 자체가 사라졌을 겁니다”

최 회장은 궁극적으로 공적연금이 노년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수단이 돼야 하겠지만 ‘정부도 실패할 수 있으므로’ 민영연금을 적절히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공적연금이 퇴직 후 생계를 유지하는 월급이라면 민영연금은 그 이상의 실질적인 보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

최 회장은 경주중을 졸업하고 경주고로 진학했으나 가정형편상 학업을 유지하지 못해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쳤고 1978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은 방송통신대학을 다녔다. 이후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근무하며 공무원 연금연구센터 센터장, 연금관리실 실장, 전략기획실 실장, 연금사업본부 본부장 등 요직을 거친 우리나라 공무원 연금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이 과정에서 연금개혁과 공무원 후생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으로 2001년 근정포장, 2001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공직생활 중 성균관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와 박사를 받는 것으로 해소했다.

최 회장은 은퇴 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초빙교수를 지냈고 중앙일보와 글로벌 경제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하며 저작활동과 강의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봉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졸업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발전후원회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현직에 있을 때 바쁜 핑계로 못한 경주고 22회 동기회 회장직도 은퇴 후인 지금 흔연히 수행중이다.

빼어난 글 솜씨로 현직에 있으면서 ‘공무원 연금제도 해설’ ‘가난한 노년탈출 연금이 해답이다’ ‘은퇴 후에도 나는 더 일하고 싶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연금은 생각보다 쓸모 있다’ 등의 책을 내기도 했다.

“제 책을 보고 혹은 제 글을 보고 가끔씩 당신은 그 책대로, 글대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만큼 완벽하지 않은 만큼 제가 쓴 글을 스스로에게 주는 교훈으로 삼아 가급적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요”

명함에서처럼 스스로 과장하지 않은 솔직담백한 모습의 최재식 회장이 인상적이었다. 두 시간 반 넘는 인터뷰가 즐거웠고 단 한 순간도 꼰대처럼 보이지 않아 더 좋았다. 앞으로 마음의 고향 경주를 위해서도 어떤 방법으로건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힌 Go쟁이 최재식 회장의 인생후반전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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