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손기호-영화감독 데뷔, 또 다른 경주 알리는 열혈 경주인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사는 덕이·순이·열수’ 등
화제작으로 경주 알려온 관록의 연극인

박근영 기자 / 2020년 01월 16일
공유 / URL복사

누구나 나름대로 고향을 추억하고 그에 대한 향수를 가지지만 고향에 대한 보은의 마음을 가지거나 구체적으로 고향을 위해 무슨 일이건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살기 바빠서, 고향 가기 쉽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몰라서 등 일상적인 이유로 고향은 그저 마음에만 담겨 있을 뿐이다. 더구나 30년 넘게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연극인 손기호 감독(52·극단 이루 대표)은 고향 경주와 경주말에 뿌리 깊은 보은 의식을 가진 연극인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 중 다수에 경주가 온전히 들어 있었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출신 덕이 분이 열수’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등 작품이 손기호 대표가 쓰고 연출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경주를 배경으로 했음은 물론 연극 대사 전부가 온전한 경주 말로 쓰여졌다.

“이들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이 사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인데 경주를 직접 방문해서 시장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거의 완벽하게 경주말을 구사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대사만 외우는 것이 아니고 경주 사람들의 맛깔 나는 말투와 말 속에 녹아 있는 뉘앙스, 정서까지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요”

무엇이 그토록 강렬하게 경주를 붙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손기호 감독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띤다.

“저는 말을 쓰는 작가입니다. 제가 처음 연극무대에 서고 연극 작품을 만들 때, 표준말을 쓰려면 한 번씩 생각을 다시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제일 잘 쓰고 편한 말로 작품을 쓰게 됐는데 그게 경주 이야기와 경주 말이 된 것이지요. 또 그때는 경주말로 작품 한다는 것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는 말도 되고요”

그래서 전체 연극계를 통틀어 지방 사투리로만 본격적인 연극을 올린 것은 본인이 처음이지 않겠느냐고 단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주말로 쓴 첫 작품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가 초연된 것이 2004년 6월이었고 ‘감포 사는 덕이 분이 열수’는 2008년 작이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는’은 다시 3년 후인 2011년 5월에 초연했다. 이들 작품은 작품에 대한 평가도 좋아 ‘눈먼 아비~’는 2004년 거창 국제연극제 희곡상을 받았고 ‘감포 사는~’은 2010년 서울 연극제 인기상과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복사꽃~’의 경우 2009년 창작펙토리 대본공모 선정작이었고 2010년 창작펙토리 우수작품 짝지원 선장작이기도 했다. 초연된 2011년에는 서울연극제 대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석권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이를테면 경주를 배경으로 경주말로 쓴 작품들이 전국의 연극 관객들에게 경주를 각인시킨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들 작품들은 그 후 2017년까지 수차례나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앵콜 공연되어 왔고 경주에서도 경주시립극단에 의해 경주예술의 전당 등에서 순차적으로 공연돼 고향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비슷한 시기 사투리로 만들어진 작품이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2003년 작)과 평양성(2011년 작)이 최초의 작품이었음을 고려하면 영화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지는 장르인 연극에서 그것도 순전히 경주말만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보통의 열정과 배짱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손기호 감독이 경주에만 매몰되어 있는 연극인은 아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선돌극장을 통해 다양한 연극을 선보이고 있으며 지금도 가슴 설랜다(2013. 12월) ‘사랑을 묻다(2015년 5월)’, ‘엄마가 낳은 숙이 세 자매(2016년 5월)’ 년 등 꾸준한 화제작을 연출해 왔다. 특히 지난 해 11월에는 극단 이루 창단 15년 작품으로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를 공연,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을 공연하는 형식으로 평단의 신선한 평가를 이끌었다. 이에 앞서 희곡 ‘누굽니까?’로 제2회 노작홍사용창작단막극제에서 희곡상을 받기도 했다.

↑↑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포스터.

-2020년 경주 소재로 한 영화 크랭크 인, ‘돕는다는 차원 아닌 함께 만든다’는 생각으로 협력해 주길 !

이렇듯 연극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펼쳐온 손기호 감독이 지난해부터는 영화에서도 자신의 연출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손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영화공부를 하며 영화 연출 기법을 익혔다. 그러나 늦깎이 영화인으로 데뷔하기 위해 만만치 않은 시련의 과정도 겪어야 했다.

첫 해 도전에서는 전혀 다른 장르에서 응시하다 보니 포토폴리오가 준비되지 않아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이듬해 가서야 여러 가지 여건을 갖춘 후 영화아카데미에 등록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내친 김에 손 감독은 작년에 3편의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손 감독이 올해는 경주를 소재로 한 상업 영화를 기획해 두고 있으며 이미 제작사까지 확정됐다고 알려준다.

“지난해 멋모르고 만든 영화들에는 연극인의 근육이 남아 있어 조금은 이상한 영화가 됐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실험적이고 신선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제 영화제작의 기본을 익힌 만큼 훨씬 완성도 높고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야심찬 한 해를 계획하고 있는 손 감독인 만큼 경주에 대한 마음도 여느 해보다 각별하다. 손기호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서 경주에서 많은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이를 위해 경주시나 경주 사람들에게 ‘돕는다’는 차원이 아닌 ‘함께 만든다’는 차원에서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연극을 통해 경주를 알려온 손기호 감독이 과연 어떤 영화로 또 다른 경주를 알릴지 무척 기대된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