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향교 지원법 발의한 정종섭 의원, 단순 건축 보존 뛰어넘어 교육·체험·생활화 위한 포석

최대 규모 향교와 6곳 서원…, 제정되면 경주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률

박근영 기자 / 201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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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 경전을 즐겨 보는 정종섭 의원.

경주출신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대구 동구·갑)이 서원과 향교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관심이 모아진다. 정종섭 의원은 지난 12일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통해 「향교․서원문화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법률은 지난 7월6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대표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처음 제안된 관련 법률이고 특히 전국에 걸쳐 서원과 향교가 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방색과 상관없는 전국적이고 거시적인 법률제안으로 평가된다.

특히 경주의 경우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 때도 살아남은 서원이 2곳(옥산, 서악), 훼철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보존된 서원이 4곳(용강, 도강, 구강, 운곡)이나 되며 전국에서 제일 큰 규모의 향교가 있어 이 법안이 제정·발효될 경우 적지 않은 혜택을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종섭 의원이 대표발의 한 「향교․서원문화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향교와 서원문화의 계승·발전 및 지원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재정적 책무를 규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향교와 서원의 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한 콘텐츠 개발,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과의 연계 등을 포함하는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하며 ▲시·도지사 등은 향교, 서원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해 지역주민, 시민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둘 수 있도록 하고 ▲향교와 서원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기관 설립이나 지정,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장학금 등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 마련 ▲국가와 지자체가 향교·서원문화체험관을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총4장 12조에 걸친 이번 제안은 서원과 향교를 단지 건축만 보호하자는 안이 아니고 서원과 향교가 지녀온 참된 교육과 유학의 길을 재현하여 이를 현대문화로 제조명하기 위한 일련의 장치를 두고 있어 더 주목된다. 특히 서원과 향교의 보존을 위해 전문인을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장학금을 지급하여 전문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세부안은 중요한 국가 문화재에 대한 전문적이고 장기적 관리를 제안했다는 측면에서 일부 유명한 서원을 제외하고는 후손이나 비전문 관리인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는 서원과 향교에 대해 진일보한 보존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법의 시행은 서원과 향교가 있는 관할 시·도 지자체가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이 시행되더라도 지자체의 능력에 따라 법사용의 쓰임이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 2010년 공자가 이야기 출판기념회를 주선한 정종섭 당시 서울대교수 (맞은 편이 꿔란 여사).

-서울대 법대 학장시절부터 제자들에게 유학 중요성 가르쳐. 곡부, 맹부 등 답사하며 유학교육도 병행, 행자부 장관시절부터 관련법 연구 

우리나라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것이 효시다. 이후 퇴계 이황이 서원을 적극 장려하며 그의 요청으로 명종이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어필(御筆) 현판을 하사하고 과 서적과 노비를 내려줌으로써 이른바 사액서원이 성립됐다.

이후 서원은 조선 왕조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업이 되어 명종 대에 경상도 지방에 주로 건립되었고 선조 대에 본격적으로 전국에 보급됐다. 서원이 대거 늘어난 것은 숙종과 영조 대로 특히 숙종 대에 새로 건립된 서원이 166개소, 서원과 같은 기능의 사우(祠宇 )가 174개소 새로 설립되었고 사액한 서원이 105개소, 사우가 27에 이른다.

그러나 조선말에 이르면서 서원이 617개소, 사우가 562개소에 이를 만큼 난립하게 되었고 사액 받지 못한 사설 서원도 전국적으로 발호하며 이로 인한 폐해가 막심해졌다. 이에 흥성대원군이 1864년(고종1년)부터 서원을 철폐하기 시작해 1871년 47개소를 제외한 전국서원을 철폐했다. 현대사에서는 후손들과 지방 유림의 보존책으로 잔존 서원들의 보존이 이루어져 왔다.

한편 향교는 고려 성종 시대에 전국 12목에 걸쳐 경학박사를 파견해 교육기관을 마련하고 1142년(인종 20)에 처음으로 ‘향교’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후 조선은 숭유억불을 국시로 본격적인 국립교육을 실시하여 태조 때부터 향교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태종 대에 전국 360여 개의 향교가 세워질 만큼 향교를 장려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서원·서당 등 사학이 힘을 얻으며 쇠퇴하기 시작했고 지방의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역할로 자리매김했지만 현대사로 접어들면서는 교육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유지에 급급한 지방문화재로 전락했다.

정종섭의원이 이처럼 서원과 향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종섭 의원은 국회에 등원하기 전 서울대학교 법대학장과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을 지낸 법학자지만 집안 대대로 유학에 전념한 대표적인 유가 출신이자 자신도 평생 동안 고전과 서예를 손에서 놓은 적 없는 정통 유학자로서도 유명하다. 정종섭 의원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도 법관이 되지 않고 교수의 길을 택한 것 역시 집안에 학풍이 이어지기를 바란 집안과 개인의 소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정종섭 의원은 서울대 재직시절 제자들에게 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유학경전을 읽는 독서 모임을 지도하기도 했고 제자들과 함께 공자의 고향이자 사당이 모셔진 곡부와 맹자의 사당을 모신 맹부 등을 답사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 공자 79세 직계 손인 꿔란(柯蘭) 여사와 교분을 넓히며 꿔란 여사의 공부(孔府)에서의 자서전인 ‘공자家 이야기(도서출판 선)’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당시 정종섭 의원은 직접 출판사를 추천하고 출판기념회를 주선함은 물론 표지 추천서를 쓰는 등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정종섭의원은 이번 법안 발의에 대해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지 않느냐?”는 말로 이 법안발의에 대해 숙명성을 부여했다.

정종섭 의원은 이미 행정자치부 장관이던 2015년 이후 경주에서 향교와 서원 및 고택과 관련한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 왔으며 2018년 12월 이후 구체적인 법안 발의를 위해 대토론회를 열고 적극적으로 법안마련을 위한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종섭 의원은 “향교와 서원은 역사와 건축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교육측면에서의 가치 또한 매우 뛰어나다”고 밝히며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지역 공동체가 활성화 되고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져 민족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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