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문 건축사의 10년 예언-황리단길 변화의 중심에 선 서양건축사의 한옥 열정

한옥의 장점과 현대식 편의성, 공간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주변의 경관까지 고려한 정겨운 누각

박근영 기자 / 2019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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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남동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손명문 대표.

건축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 건축에 몸 담은 사람의 느낌이 가장 편안하고 아늑함에 이르렀을 때이다. 여기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장치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특히 한옥은 우리의 정서와 온전히 익숙해 잘 지은 한옥은 편안하고 아늑함은 물론 자연과 어울려 마음을 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황리단길이 뜨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이 길에 눈에 띄는 한옥들이 차곡차곡 지어졌다. 기존의 우중충하고 낡은 한옥들 역시 그 원래의 뼈대와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돋보이게 단장돼 화실로 쓰이거나 훌륭한 카페로 거듭났다.

이 변화의 중심에 건·환 건축사무소 손명문 대표가 있다. 놀랍게도 손명문 대표는 기자와 첫 인터뷰를 했던 2010년에 황남동과 사정동의 중요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그는 10년 전부터 황남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는데 그 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황리단길을 그는 20년 전부터 내다보며 보존가치를 주장해왔던 것이다. 건축사 손명문 대표의 특별한 혜안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성입니다. 신라의 고분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고 조선시대 건축과 일제감정기 가옥, 해방 이후 지어진 오래된 집들과 근래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까지 여러 시대와 세대의 정감을 간직하고 있지요. 그래서 새로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도 그 오랜 기법과 역사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건축주를 설득해 리모델링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손 대표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대릉원에서 황남동쪽으로 내려오는 초입의 소설재를 가장 먼저 소개했다. 한식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되는 이 한옥은 과연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에서부터 10개로 나누어진 크고 작은 마당, 시원한 대청과 온돌식 한옥이지만 양옥의 편의를 추구한 화장실, 방마다 마당과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창들과 집 한쪽에서 마당으로 단아하게 뻗은 소나무까지 한껏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특히 2층 구조로 지어진 누각방에 오르자 황남동 일대는 물론 대릉원과 멀리 수도산, 남산과 반월성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작 2층 정도의 높이에서 이렇게 넓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경주라는 지형적 특성까지 고려한 세심한 배려라 할 것이다. ‘소설재, 작은 이야기들(小說)이 있는 집’이라는 이름답게 방이건 마루건 정겨운 이야기들의 조근조근 들려올 법하다.

“한옥은 나무와 흙으로 지은 건축입니다. 벽도 그렇지요. 때문에 이를 보호할 처마가 길게 드리워져야 하고 처마를 받치려니 여러 가지 보와 공포가 필요한 겁니다. 지붕에서 물이 떨어져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돌로 만들어진 기단(쭉담)이 만들어졌고 그 위에 집을 얹힌 것이지요”

건축에서 형태란 것은 그 재료와 기능이 일치됐을 때라며 한옥의 기본 품성을 설명하는 손 대표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황리단길에 늘어선 손명문 표 한옥들, 역사성에 정겨움, 실용성 돋보여

그런 한편 손 대표는 최근에 겉은 한옥인 채 속은 시멘트 콘크리트인 무늬만 한옥인 집들이 무분별하게 경주에 만들어지는 것은 지나치게 단시안적이라며 개탄한다. 경주의 긴 역사성에서 볼 때 한옥은 한옥답게 나무와 흙으로 지어야 경주라는 도시의 역사성에도 맞고 그렇게 하는 노력이 쌓여 경주를 경주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원래 전공이 서양 건축인 손 대표가 이토록 한옥연구에 매달린 것은 한옥을 전문적으로 짓는 건축가들이 지나치게 전통기법이나 전통적 구조에만 천착한 나머지 새로운 기능과 현대적 창작에 소홀했기에 이런 고정관념을 허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대표가 전공인 서양 건축에 소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서양건축 경력은 국내 최고 반열의 실력과 실적을 갖추고 있으며 건축업계에서의 경력도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경희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거쳐 경북건축사 대표를 지낸 바 있고 대한민국 건축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대한민국 건축디자인 검토위원도 지냈다. 그 외 경북과 경주의 크고 작은 심의의원과 각종 위원직함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30대에 경주로 와 안착한 손 대표답게 경주의 근화여중고 문화중고, 동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황성동 성당 등 경주에서 그의 설계를 거친 건축물도 다수다. 그런 그가 도중에 전통한옥의 보존과 현대적 조형에 눈 뜬 것은 오로지 경주의 미래자산의 한 축이 한옥이라 믿은 때문이다.

한옥 소개를 시작한 손 대표는 황리단길에 새로 지은 ‘손명문 표 한옥’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특히 황리단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골목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한다.

“골목은 삶이 녹아 있는 길이지요. 이런 골목이 황리단길처럼 조밀하게 조성된 거리도 이제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런 골목 하나하나가 특별한 이야기와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날 때 황리단길의 생명이 길어지겠지요”

황리단길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나치게 트랜드에만 집착한 이름이라 마땅치 않다고 하면서도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보여준 놀라운 마케팅 능력에는 어쩔 수 없이라도 공감한다는 손 대표는 앞으로 한옥들이 좀 더 지어지면 황리단길이 트랜드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이름으로 새로 지어지기를 바란다.
손 대표와의 건축기행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기와 건물과 현대식 기법의 가옥들까지 돌며 이들이 어떤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실용적으로 리모델링했는지 찬찬이 설명한다. 설명을 들으며 걷다보니 이들 집들 앞에 유래와 변화를 알리는 작은 설명문이라도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 대표와의 대화는 역시 손 대표가 설계하고 지은 ‘황남관’을 지나 통유리가 멋진 카페 ‘BEEZZA’로 접어 들었다. 이곳에서 보이는 메타세콰이어와 황남동 고분, 멀리 보이는 오릉 숲과 경주남산의 운치가 가슴 가득 안겨든다.

“바로 이런 곳이 경주지요. 이 풍경과 어울리는 한옥들이야말로 경주가 오래 지키고 보존해나가야 할 유산일 겁니다”

경주는 새로운 것을 자꾸 만들기보다 지금 있는 것들을 잘 보존하기만 해도 된다고 주장하며 황리단이 여러 시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듯 지금의 모습도 언젠가는 역사가 되고 또 다른 후손들이 그것을 찾게 될 것이라 장담하는 손명문 대표.

10년 전에 그랬듯, 지금 손 대표의 예언이 꼭 실현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럴 즈음 황리단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한옥들보다 더 돋보이는 한옥들이 경주의 새로운 볼거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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