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키덜트 뮤지엄 김동일 관장

영사기·축음기·골동품, 인형·만화 캐릭터… ‘신개념 박물관’
네이버 상위검색 핫 플레이스, 주말엔 천 명 넘게 방문

박근영 기자 / 2019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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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덜트 뮤지엄 입구를 지키고 선 마징거Z.

“경주에 유적 빼고 뭐가 있어요?”

경주에 색다른 볼거리가 없다는 사람들의 섣부른 질문이다. 이들이 키덜트 뮤지엄을 방문한다면 그 질문이 이런 탄성으로 바뀔지 모른다.

“경주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경주시내에서 동궁원을 지나 보문호수로 올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흰색 원형건물 ‘콜로세움’이 눈에 띈다. 이 건물 3층과 1층 일부에 자리잡은 ‘키덜트 뮤지엄’은 존재자체가 경이롭다. 이런 곳이 지금까지 경주사람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놀라움이고 이곳에 소장돼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장품이 두 번째 놀라움. 이미 이곳이 네이버 ‘경주에서 가볼 만한 곳’ 검색 상위에 랭크돼 주말에는 1000명 이상이 찾을 만큼 경주를 찾는 방문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 세 번째 놀라움이다. 관광문화 측면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에 목말라 하는 경주에 단비 같은 곳이 아닐 수 없다. 키덜트 뮤지엄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키덜트(Kidul)’는 Kids(아이) + Adult(어른)의 합성어다. 다시 말해 키덜트 뮤지엄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생기발랄함에 세대별 어른들의 추억과 감성을 모두 살려낼 수 있는 곳이 바로 키덜트 뮤지엄인 것이다.

그런데 그 질적인 수준과 규모가 어지간한 전문 박물관 몇 개를 거뜬히 세우고도 남을 정도로 방대하다. 세분화 하면 제대로 된 소리박물관, 영사기 박물관, 인형·피규어 박물관, 문구박물관과 골동품 박물관, 만화박물관을 각각 따로 세우고도 남을 소장품들 5만여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박물관에 전시된 품목은 실제 소장품의 20%에 불과하다는 사실. 전체 소장품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천억 원은 족히 될 만큼 가치 있다고.

이렇게 귀한 소장품을 한 명의 이름 없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박물관의 네 번째 놀라운 일이다. 박물관 창업자이자 이 많은 소장품을 무려 40년 동안 모아온 김동일 관장(65)은 의외로 덤덤하다. 젊은 시절 인테리어 사업으로 큰돈을 번 김동일 관장은 우연한 유럽여행에서 각양각색으로 디자인 된 라디오를 보고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그때 라디오를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 엄청난 소장을 하게 된 계기라고 밝힌다. 이 말에서 보듯 키덜트 뮤지엄에는 기상천외한 모습의 라디오들이 수백 점이나 전시돼있다.

박물관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섯 번째 놀라운 사실이 또 다시 드러난다. 어지간한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소장품들이 수 없이 많은데 이들이 그야말로 창고에 ‘박스때기’로 쌓듯 전시된 것. 예를 들어 200년 전에 제작된 최초의 촛불 영사기들과 사람의 손으로 직접 그린 가장 초기의 원판 필름들이 온갖 소장품 속에 제대로 된 이름표도 없이 전시돼있다. 뿐만 아니라 영사기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장품들이 모두 이런 식이고 라디오와 축음기의 발달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소장품들이 또 이런 식이다. 이들의 실제 영상조명을 볼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전시하고 스토리텔링화 한다면 교육적 효과와 재미가 몇 배는 될 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전시만 하기에도 버거운 상태.

피규어들도 초기 애니메이션인 캔디, 철인28호, 마징거Z 등에서부터 현재의 세일러 문과 원피스, 마블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까지 엄청난 양과 수가 있지만 이들 역시 비좁은 공간에서 제 가치나 비중에 맞는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4미터짜리 초대형 ‘헐크 부스터(어벤져스 시리즈 3편에 등장해 아이언맨이 들어가 헐크와 싸울 때 타고 있던 대형 전투머신)’는 박물관 천장이 낮아 전시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수장고에 누워 있다고.

↑↑ 키덜트 뮤지엄에 전시된 중세 기사 형태의 라디오.

-5만점 소장품이 고작 300여평에···80%는 빛조차 못 봐, 지자체 협의해 장기임대·조건부 기부도 고려, 강원도 T시 등 적극적 구애상태!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박물관 전체가 고작 300여평이라는 ‘좁아도 너무 좁은’ 전시공간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제가 사 모으는 데는 소질과 열정이 있었는데 이것을 전시하고 관리하는 것에는 도통 무신경하고 소홀했던 탓이지요. 이제는 전시를 떠나 보관문제까지 염려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키덜트 뮤지엄은 제대로 된 전시보다는 이 엄청난 소장품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보관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박물관이기도 하다. 그것이 3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최소한도 내에서 관람객들의 기호를 충족시키며 진화한 것이 그나마 지금의 전시형태로 굳은 것. 그러나 아직도 80%의 소장품은 대형 창고와 컨테이너에 방치돼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동일 관장은 이들 소장품들을 항구적으로 전시하고 관리할 만한 방법을 모색 중인데 그 중 하나가 적절한 지자체와 협의해 장기간 임대하거나 조건부 기부하는 식의 아이디어다. 마침 강원도 T시 등 몇 군데 지자체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제시하며 김 관장과 접촉하는 중이라고. 그러나 김 관장은 자신이 평생을 걸고 수집한 소장품들이 제대로 빛을 보기 위해서는 아예 서울에 있거나 그게 아니면 경주처럼 인문적 환경이 갖춰져 있고 전국 혹은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굳이 경주에 터를 잡았다고 단언한다.

“경주가 경주다우려면 1000년 전 조상들이 그랬듯 또 다른 1000년을 위한 우리시대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소장품들이 경주에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그런 역할을 해낼 것이라 자부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특별한 광고나 마케팅 없이 인터넷 소문만으로 주말에는 1000여명의 관람객이 붐빌 만큼 이 박물관이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세대를 초월해 각광받고 있다. 이들 방문객들의 쾌적한 관람환경을 위해 대형 공기청정기를 곳곳에 설치하고 레고와 블록체험 공간에 자외선 살균 소독기를 설치하는 등 안전을 고려한 것은 ‘어른이’ 방문객을 위한 박물관의 세심한 배려이자 귀중한 소장품을 보전하기 위한 비책인 셈이다.

김동일 관장의 80% 넘는 또 다른 소장품들이 제대로 세상과 만나 제 기능들을 다 할 수 있다면 키덜트 뮤지엄은 경주의 또 다른 미래자산으로 남을지 모른다. 경주시를 비롯한 경주의 관광문화 각계의 관심이 모아질 때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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