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매화도의 일인자 남리 최영조 화백-매화향기 끝에서 진한 예술을 만나다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전국 미술인들 발길 이어져, 호평!

박근영 기자 / 2019년 0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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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리의 매화도.

남리(南里) 최영조 화백의 서울 인사아트센터 전시회(3월 13일~18일)를 찾는 사람들이 숨을 죽인다. 120호 넓은 화폭에 바다가 열렸고 안개 속에 섬이 떠 있고 그 앞으로 아웃 포커스 된 선명한 매화들이 하늘거린다. 어느 화폭에는 푸르디푸른 봄 하늘을 배경으로 진눈깨비가 내리고 드문드문 꽃송이에 눌린 가지가 느릿한 팔을 드리웠다. 거친 매화둥치에 한 송이 한 송이 핀 매화 끝에서 은근한 향기가 퍼져 나올 듯하다.

이렇게 서울 인사동에 ‘남리 최영조’ 다섯 글자가 불도장처럼 분명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소재의 혁명을 완연하게 몸에 익힌 최 화백의 그림은 장지에 먹을 쓸 때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거침없다. 특히 캔버스의 투박한 질감이 매화나무 특유의 거친 겉껍질을 한결 더 승화시킨다.

전시회 동안 전국에서 최영조 화백의 매화도를 보겠다고 달려 온 사람들과 우연히 들렀다 기운이 생동하는 매화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의 탄성이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들려온다.

그들 중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감탄하며 존경심을 표한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최 화백의 그림은 너무 쉽고 분명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때마침 근처 갤러리들에서 몇몇 매화도들도 전시되고 있었는데 남리의 매화도 때문에 그림이 그림다워지지 못했고 꽃이 꽃다워지지 못했다. 남리의 매화도를 본 사람의 눈에는 어떤 매화도건 전부 매화를 본 뜬 흉내로 비칠 뿐이다. 그런 최 화백의 그림에도 뜻밖의 벽이 있었다.

“이 바닥에 누워 잠이라도 자면 영락없이 매화밭에서 자는 것 같을 거라···”

전시회 둘러보던 한 인사가 매화도에 반해 한 마디 한다. 최영조 화백이 웃으며 대답한다.

“매화밭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는데 제 작품 밑에서 자보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오늘 한 번 자 볼까요?”

어쩐 일인지 그 뒤로 이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솔거가 그린 소나무에 속은 새들이 벽화를 들이받고 떨어져 죽었다 했는데 최 화백의 그림은 아직도 최 화백에게조차 그림으로만 존재한다는 현실이 불현듯 아쉬웠다.

“아, 지나친 욕심이다···!”

속으로 스스로에게 나무랐다. 그 순간 만약 최 화백이 ‘저도 그래서 실제로 제 매화 밑에서 자보았습니다’라고 했다면 오히려 ‘이 환쟁이가 미쳤나?’ 소리 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저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을 뿐입니다. 그림을 그릴수록 부족함이 더 느껴집니다”

말을 듣는 순간 최 화백에게 강하게 제동 걸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친 겸손이라고!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최영조 화백의 이 고백이야말로 그의 그림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 좋아지는 원초적인 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봄이 깨어나거나 깨어날 기색만 보이면 어김없이 탐매(探梅) 떠난다는 최 화백의 치열함이 지금 이토록 생생한 매화를 그려낸 원동력 아니었을까?

↑↑ 남리 최영조 화백 전시회 전경,

전시장을 빠져 나오는데 마침 휴대폰이 울렸다. 명필에 그림까지도 잘 그리는 모 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그 역시 남리의 그림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탄복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특히 120호 대작 ‘겨울연밭’에서 최 화백의 깊은 내공을 보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남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에 도사린 작법이 일반의 범주를 넘어서 있다. 먹을 다루는 방법과 장지를 다루는 방법이 달인 이상의 경지에 이르고서야 가능한 그림이다.

“야-! 나는 그런 대단한 작가가 경주에 있는 줄 몰랐어··· 왜 내가 여태 최영조 화백을 몰랐을까?”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탓에 미처 고향의 예술인을 알지 못했다며 한탄하던 그가 한 마디 더 했다.

“그런 작가는 경주에 있으면 안 돼.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기면 대번에 대성할 거야!!”

척박한 소비시장을 아쉬워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서울에서, 이 정도 남리의 그림이라면, 그가 조금만 꾸준히 자신의 이름과 그림을 알리고 다녔다면 이번 전시회의 그림이 죄다 주인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금 이대로라도 썩 나쁘지는 않다는 위안을 해 보았다. 아무리 늦은 때라도 남리 스스로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전시회 비용 부담을 안고 작품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엄연한 미술계 현실을 알고도 과감히 암흑 같은 정글로 달려온 최 화백의 용기 하나만으로도 그의 긍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함만으로 충분히 이번 전시회는 가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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