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세계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문화유산 보전 주민이 주인돼야”

시민 역할과 함께 정부지원 강조

이필혁 기자 / 2017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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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 (주)경주신문사


“체코의 문화유산 보전은 국가와 주민의 관심과 사랑 덕분” -미하엘라 리 주한체코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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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라 리 원장은 체코가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국가와 주민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복합적이며 체계적인 제도, 전문적인 관리, 지속적인 재정적 지원과 국민의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국가는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어야한다. 거기에다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보전을 위한 노력 등이 뒤따라야 다음 세대로 문화 유산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국가의 지원과 주민들의 의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체코 문화재 보존은 18세기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문화 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깨달아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으로 문화 유산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1850년 문화 유산을 인식하고, 보존 하기 위해 주로 건축가로 이루어진 건축물/건축 유산 보존 중앙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전문가 단체와 협력했다. 1911년 이 건축물/건축 유산 보존 중앙 위원회는 전문적으로 문화 유산의 목록을 만들면서 연구를 실시하는 연구소를 운영하는 전문 기관으로 변경됐다.

↑↑ 홀라쇼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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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가 창립된 후부터 정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만들어진 기존 제도에 이어 문화 유산 보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종교적인 건축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1949년 정부의 결정을 기반으로 국가교단국이 설립됐으며 1950년 30개 도시의 시내들은 도시 보존 지구에 등재됐다. 국가는 당시 문화유산 보존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법제도는 아직 단편적이라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법 제정이 필수적이었다.

1958년 문화유산 법이 개정돼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 기록 관리, 복원과 문화적인 활용에 관련된 원칙과 의무가 정해졌으며 그 이후 국가 행정 개혁과 현대적이고 전문적인 요구를 이유로 1987년 개정된 국가 문화유산 보존법은 국가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 문화유산의 기준과 모든 국가 문화유산을 문화유산중앙목록에 등록해야 하는 의무를 정확히 정했으며 현재까지 여러 번의 수정되면서 법률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 지붕 잇고 있는 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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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주민들 불편함 감수하면서 살아야해”-양동마을 이동헌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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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역사마을인 양동마을까지 우리나라에서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대한민국에서 지정된 12곳의 세계문화유산 중 3곳을 보유한 곳으로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세계문화유산이 지정돼 관광객은 늘었지만 주민은 온갖 규제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양동마을은 규제로 인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다.

양동마을 이동헌이장(사진)은 양동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는 그야말로 토박이 주민이다. 그는 양동마을은 불편한 점이 많은 마을이지만 고향을 찾아 다시 되돌아 오게 되는 곳이라 말한다.

“양동마을은 전체 1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주민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을 떠났다가 나이가 들어 다시 마을에 되돌아 온 이들도 많다. 지금도 불편하지만 이곳에 되돌아오려는 주민이 많이 있다. 이곳은 어릴적 고향을 찾아 돌아온 주민들로 연어가 회귀하듯이 주민들도 되돌아 온 주민이다. 지금은 빈집이 없어 못 돌아오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동헌 이장은 양동마을이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곳 집들은 모두 주민이 거주하는 곳으로 빈집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동네 주민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며 경제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동마을 뒤편에는 넓은 농지가 있어 예로부터 농사를 지어왔다. 농사가 경제활동의 대부분으로 관광객 상대로 한 경제활동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양동마을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좋은 점도 많지만 오히려 불편한 점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규제로 인한 어려움이 크다는 것.

이 이장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마을 주민들은 불편한 점이 더 많아졌다. 특히 사유재산임에도 고장이 나도 마음대로 고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집하나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살수 있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관광객이 들어와서 마을의 활성화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다. 관광객들이야 세계문화유산이 좋을지 몰라도 이곳에 사는 주민은 좋지 않다. 관광객이 오면 동네사람을 초가집에 산다며 미개한 것처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각종 규제로 차라리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됐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양동마을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마을을 지키는 것은 자긍심 때문이라 강조했다.
“양동마을 주민들은 자긍심하나로 고향을 지키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 백제역사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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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그 속에 주민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유영자 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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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인 유영자(사진) 씨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선정도 중요하지만 그 역사를 지키려는 주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1971년 성산리 고분군에서 무녕왕릉이 발견되었고 무녕왕릉 안에서 400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웅진에서 왕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관북리 유적에서 왕궁이 발견되고 익산의 미륵사지가 발견되면서 3개 도시가 연결유산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면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경주역사유적지구와 비교하면 솔직히 볼거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문화유산을 와서 볼거리가 많이 없다고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은 단순히 볼거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세계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하회마을 주민을 관광객이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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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관광지가 아닌 역사마을”-안동하회마을보존회 류한철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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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하회마을보존회 류한철(사진) 사무국장은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주민이 거주해야만 문화재도 지킬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하회마을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관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주민이 늘어났다. 농사를 짓는 주민이 30%정도이며 숙박업과 기념품 등 가계를 하는 곳이 30%, 나머지 주민이 저잣거리, 식당, 상가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주민들은 이제 범법자가 되어 버렸다. 각종 규제로 인해 내 집하나를 고쳐도 불법 건축 등으로 범법자가 된 것이다. 또한 차, 음식물 등 팔지 못하게 하는 등 각종 규제로 범법자 마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규제만 있다면 누가 마을에 들어와서 살 수 있겠나?”

류 사무국장은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이 수익금은 하회마을 관리에만 쓰여 주민에게 경제적 이득을 줄 수 없는 형편이라며 주민이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역사마을이다. 마을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규제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마을은 사람이 우선돼야 한다. 문화재도 사람이 없으면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주민이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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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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