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의 득과 실, 주민은 떠나고 관광객만 남다-해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

중부 유럽의 역사 가진 도시, 체스키 관광도시로 변모 지역민은 모두 떠나버려

이필혁 기자 / 2017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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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유럽의 역사를 간직한 체스키 크롬로프는 체코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매년 전세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체스키를 찾고 있다.
ⓒ (주)경주신문사


경주는 지난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가 세계유산에 지정된 이후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 2010년에는 조선시대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건축과 생활 문화와 관련된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돼 있어 노천 박물관이라 불린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씨족 마을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양반과 평민의 가옥 배치가 뛰어난 곳이다. 양동마을에는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역사지구 주변 주민들은 건물의 개보수 제한과 지자체의 이전 요구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이주에 포함되지 않은 주변 지역도 고도제한과 건축 규제 등으로 주민의 재산권 행사 등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경주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우수 사례를 취재할 계획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단순히 지자체와 유네스코의 제약 등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 스스로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전세계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한 나라들이 많다. 그 가운데 체코는 오랫동안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장 잘 보전하고 있는 나라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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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는 수많은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체코 프라하 역사지구와 체스키 크롬로프 역사지구, 텔치 역사지구, 에드니체·발티체 문화경관, 리토미슐 성, 브르노의 투겐타트 별장, 올로모우츠의 성삼위윌체 석주, 젤레나 호라의 성 얀 네포무츠키 순례 교회, 쿠트나 호라, 크로메르지시의 정원과 성, 트르제비치의 유대인 지구와 성 프로코피우스 바실리카, 홀라쇼비체 역사 마을 보존지구 등 10여 곳이 넘는 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이 가운데 체스키 프롬로프 역사지구와 홀라쇼비체 역사마을 보존지구를 비교했다. 이 두곳을 통해 보존의 중심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수 있었다.

↑↑ 체스키크롬로프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체스키는 관광객을 위한 도시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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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온전히 유지해온 체스키 크롬로프
체스키 크룸로프는 다른 나라의 전쟁과 간섭 등의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약 5세기 동안 경제적으로도 발전된 지역이다. 중부 유럽의 작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이 도시는 중세 시대부터 계속해서 평화롭게 발전해 왔으며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구조물과 건축물들을 남겼다.

도시는 위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블타바 강 유역에서 성장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발전 과정은 여러 건물과 도시 기반 시설에서 드러난다. 이곳은 평화로운 역사를 가진 덕분에 중세시대 도시의 구조와 역사적 건축물들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일부 보수 작업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도시 경관이나 원래의 구성 요소를 잃지는 않았다.

체스키 크룸로프 유적은 동서를 연결하는 고대 교통의 중심지였다. 기록에 의하면 남 보헤미아 지방을 통치하던 비트코비치(Vitkovici) 가문의 자손의 성이 이곳에 있었으며 동쪽의 라트란(Latrán)과 중앙 광장 건너편의 강가는 거주지로 개발됐다. 이러한 다중 결절지역(結節地域) 구조의 도시 계획은 중세 도시의 특징 중 하나였으며, 특히 북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14세기 중반부터 300년 동안은 고딕 양식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하였는데, 당시 이름 높은 예술가들이 작업에 참여해 시민들의 주택까지도 우수한 품질로 건설돼 도시의 가치와 경제적 부유함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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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성의 중앙 광장에서부터 뻗어 나간 방사상 도로가 있는 중세시대 계획도시의 전형적인 구조를 가졌다. 고딕 양식, 중세시대의 전성기 고딕(High Gothic)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등의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는 크룸로프 성은 도시의 크기보다 크게 지어졌다.

이 성은 1766년에는 바로크 양식의 극장을 더하면서 전체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변형됐다. 성안에 있는 극장은 기계식 무대 장치를 갖추었으며 지금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정원, 벨레르(Bellaire) 여름 궁전, 겨울 승마 학교가 추가로 들어섰으며 라트란과 강 건너편 지역에는 전성기고딕 시대부터 있던 시민 주택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곳의 주택들은 건물 전면, 내부 구조, 특히 목재를 다듬어 만든 섬세한 르네상스 양식 천장 장식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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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떠나고 관광객만 남은 체스키
중부 유럽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체스키는 체코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는 곳으로 관광지로 변모했다. 매년 수백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 도시는 시민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규제는 늘어났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책과 제도는 개선되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늘어나는 관광객과 각종 규제로 도시를 떠나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2000명에 이르던 체스키 거주 주민은 2017년 들어서 100여명 채 남지 않게 되었다.

체스키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각종 규제로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데 규제가 많아 졌고 시에서는 체스키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 주민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반영되지 않게 되었다. 그로인해 시민들은 하나 둘 도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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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 에바(EVA. 여·인물사진) 씨는 “관광지가 되고 규제가 심해지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현재 주민 10%만 남아 살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인근 지역에 살면서 경제생활을 위해 체스키에 들어와 일하고 돌아 간다”고 말했다.

또 “관광객 덕분에 일자리도 생겨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 되어 버린 것이 문제다. 이곳에는 생필품을 사는 그 흔한 마켓조차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선물가계나 음식점 등으로 변해버렸다”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떠나야 하는 시민이 있다는 것을 정부에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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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주민 마르티나(Martina. 여·인물사진) 씨는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이곳을 보전하고 지킬수 있었지만 마을 주민은 지킬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곳은 100% 관광객을 위한 도시가 되었다. 주민이 필요한 시설이 하나도 없이 오직 관광객을 위한 도시로 변했다. 세계유산이 되면서 관광객이 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져 도시는 지켜냈지만 지역민은 모두 떠나버린 곳이 체스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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