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어야 세계문화유산 보전할 수 있어”-국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현황2

하회마을, 주민이 유산 보전의 중심 백제역사지구 구조적 한계로 연계 어려워

이필혁 기자 / 2017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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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하회마을 전경
ⓒ (주)경주신문사


경주는 지난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가 세계유산에 지정된 이후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 2010년에는 조선시대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경주역사유적지구에는 불교건축과 생활 문화와 관련된 뛰어난 기념물과 유적지가 다수 분포돼 있어 노천 박물관이라 불린다. 양동마을은 조선시대 씨족 마을을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양반과 평민의 가옥 배치가 뛰어난 곳이다. 양동마을에는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역사지구 주변 주민들은 건물의 개보수 제한과 지자체의 이전 요구에 따라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이주에 포함되지 않은 주변 지역도 고도제한과 건축 규제 등으로 주민의 재산권 행사 등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경주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우수 사례를 취재할 계획이다.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단순히 지자체와 유네스코의 제약 등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 스스로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 백제역사지구 내 공산성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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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은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역사마을인 양동마을까지 3곳이다. 경주는 세계문화유산을 3곳이나 간직한 유일한 곳으로 다른 지자체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 가운데서 경주와 비슷한 유적을 가진 곳을 간접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경주역사유적지구와 비슷한 성격의 백제역사유적지구,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하회마을을 찾았다.

↑↑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무령왕릉
ⓒ (주)경주신문사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옛 수도였던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등 3개 도시에 남아 있는 유적으로 이웃한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했던 고대 백제 왕국의 후기 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3개 지역에 분포된 8개 고고학 유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웅진성(熊津城)과 연관된 공산성(公山城)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 古墳群), 부여 사비성(泗沘城)과 관련된 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관북리 왕궁지) 및 부소산성(扶蘇山城), 정림사지(定林寺址), 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부여 나성(扶餘羅城), 그리고 사비시대 백제의 두 번째 수도였던 익산시 지역의 왕궁리 유적(王宮里 遺蹟), 미륵사지(彌勒寺址) 등이다.

이들 유적은 475년~660년 사이의 백제 왕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의 도시계획 원칙, 건축 기술, 예술, 종교를 수용해 백제화(百濟化)한 증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을 통해 이룩한 세련된 백제의 문화를 일본 및 동아시아로 전파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경주역사유적지구와는 달리 세계유산 등재가 쉽지 않았다.

1994년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은 세계유산 잠정목록 리스트 작성 문화유산 8건(석굴암 석굴, 해인사 장경판고, 종묘, 창덕궁, 수원성곽, 삼년산성, 무련왕릉, 강진 도요지)과 자연유산(설악산 천연보호구역,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등을 신청 예정이었다. 하지만 무령왕릉과 함께 잠정목록으로 등재됐던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는 1994년 서계유산 등재에 신청대상이 되었고 1995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2000년에는 무령왕릉보다 이후에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와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 세계유산이 되었다. 이처럼 무령왕릉이 세계유산 등재가 늦어진 것은 타문화에 비해 독보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무령왕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문화재청의 지적에 무령왕릉보다 넓은 범위의 유적을 설정해 공주, 부여, 익산을 잇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탄생하게 된다.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재를 위해서는 또하나의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유적지구 관리가 충청남도, 전라북도,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 등 5개 지자체에 나눠져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5개의 도와 시군은 문화재청과 함께 2012년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을 출범, 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후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2016년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은 백제세계유산센터재단으로 변경해 세계유산 보전에 힘쓰고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 부여군, 익산시에 8곳의 유적지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경주의 경우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을 제외하더라도 경주역사유적지구는 멀지 않은 곳에 유적지구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시와 부여군, 익산시에 걸쳐져 있어 관리체계의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 생긴 곳이 백제세계유산센터다. 이 센터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보존관리계획, 관광·홍보계획 등을 수립하고 자치단체 및 주민협력 등 유산관리와 보존을 위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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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세계유산센터는 세계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지자체 간 관리의 통합, 운영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백제세계유산센터 김영식<인물사진> 유산관리팀장은 3개 지역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역이 나눠져 있어 한 번에 보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여건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경주의 세계문화유산은 거리적 측면과 보전에 있어 큰 강점이 있는 곳이다”고 말했다.

↑↑ 안동하회마을의 주민들을 관광객이 카메라에 담고있다.
ⓒ (주)경주신문사


-안동하회마을
양동마을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비교되는 곳이 안동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지난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로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500년 동안 조선을 주도했던 양반들의 문화가 남아 있던 곳이다. 마을은 거리상으로 90㎞ 정도 떨어져 있지만 14세기~15세기에 조성되기 시작해 18세기~19세기 후반까지 성장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마을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 마을 입지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이고, 지역의 기후 조건에 적합한 건물의 형태와 유교 예법에 맞는 가옥으로 이루어져 있다.

↑↑ 안동하회마을 탈춤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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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씨족 마을의 대표적 요소인 종가와 양반들이 살았던 크고 튼튼한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유교 서원과 서당 등이 남아 있다. 또한 평민들이 살았던 단층의 작은 흙집과 초가지붕을 얹은 초가집들도 있다. 정자와 휴식처에서 보이는 마을 주변의 산과 나무, 강의 경치는 17세기~18세기 시인들이 시로 읊었을 만큼 아름답다. 두 마을의 전통 가옥들과 마을의 입지와 배치가 이루는 탁월한 조화는 조선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잘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힌다. 특히 씨족 마을의 형성이라는 특징적인 체계는 500여 년 동안 발전해 왔다. 안동하회마을보존회 류한철 사무국장<인물사진>은 아직도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로 지역민이 마을 보존 중심이라고 밝혔다.

류 사무국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관광객 증가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불편은 말로 할 수 없다”면서 “사람이 있어야 문화재도 보존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민들이 중심이 돼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는 것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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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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