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심사하다 웬 부시장 길들이기?

시의회 내부 예산 삭감하며 공무원 길들이기 발언 ‘파문’

이상욱 기자 / 2014년 12월 22일
공유 / URL복사
↑↑ 경주시의회는 지난 16일 제200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예산안 등을 의결했다.
ⓒ (주)경주신문사


경주시의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 중 문화관광통인 김남일 부시장이 상정한 예산을 대부분 삭감하면서 ‘부시장 길들이기’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예산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소위 일컫는 ‘갑’의 위치에 있는 시의원이 공무원 길들이기에 더 집중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는 것.

시의회는 지난 16일 제200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1조520억원의 2015년도 경주시 예산안 가운데 총 178건, 115억원을 삭감해 수정 의결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삭감 건수와 금액이다.

앞서 시의회는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심사한데 이어 11일부터 12일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삭감규모를 확정했다.

시의회는 이 가운데 김 부시장의 제안으로 올린 문화관광과 예산 총 21여건 중 5건만 원안 가결시켰으며, 일부 삭감 3건, 나머지 13건은 전액 삭감시켰다.

김 부시장은 지난 11월 1일 경주시 부시장으로 취임하기 직전 경상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을 역임할 만큼 문화관광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외부 시각에서 바라 본 경주 문화관광 활성화 방안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사업을 직접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제안한 사업은 경주 맛집 발굴 및 관광상품화, 신라 천년의 숲 조성, 금척은척문화상품 개발 등 대부분 신라문화융성 정체성 정립과 관련한 사업이다.

그러나 이번 시의회의 무차별적 예산 삭감으로 사업 대부분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시의회 내부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김 부시장 길들이기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의원 자질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경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시의회가 본연의 역할인 엄격한 예산심사는 소홀히 한 채 공무원 길들이기에 혈안이 돼 있어 한심스럽다”면서 “경주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감정적으로 삭감한다면 제대로 일할 공무원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B 시의원은 “전체적으로 행사성 예산이 많아 삭감하게 된 것이지 다른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어렵게 확보한 국·도비 지원 사업 대폭 칼질
경주시의회가 2015년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경주시가 국회, 정부, 경상북도 등을 상대로 어렵게 확보한 국·도비사업의 대응투자예산을 무더기로 삭감했다.

이번에 확정된 예산안 삭감조서에 따르면 국·도비 지원사업에 대응투자해야 할 시비 17건, 28여억원을 칼질했다.

이는 한 푼의 예산 확보가 아쉬운 상황에서 경주시가 대응투자를 못하게 돼 확보한 국·도비를 고스란히 반납해야 하는 것으로 지역으로서는 손실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첨성대 보수정비(국비 7억원, 도비 9000만원), 경주읍성 복원(국비 17억원, 도비 2억1800만원) 등 문화재 보수정비 및 복원 사업비에 대한 시비 2억원과 5억여원을 각각 삭감시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됐다.

국보 31호 첨성대의 경우 지난 9월 붕괴 위험성과 관련한 언론 보도 등으로 인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10월 1일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한 문제는 없다’고 결론 냈지만 현재 북측으로 205.05mm 기울어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정비 사업은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시는 첨성대 부재 부식과 기울어짐에 대한 보수 정비를 해 문화재 보존 유지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확보한 국비에 시비를 대응투자해 올렸지만 시의회는 외면했다.

또 문화엑스포 상설공연 ‘플라잉’ 지원(도비 3억원)에 대한 시비 3억원을 삭감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어오던 플라잉 공연이 내년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문화엑스포가 추진하려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국제행사 기념공원 조성(광특 50억원, 도비 25억원) 사업과 엑스포공원 숲길 조성사업(도비 1억5000만원)도 시비 각각 10억원, 1억5000만원을 전액 삭감시켰다.

경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에밀레종 테마파크 조성사업 또한 국비 7억5000만원, 도비 2억2500만원을 확보했지만 시비 5억2500만원 전액이 삭감돼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이외에도 동학예술제(도비 3000만원, 시비 7000만원),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주변정비(국비 4억9000만원, 도비 6300만원, 시비 1억4700만원)도 시비를 전액 삭감했다.

이처럼 어렵게 확보한 국·도비 지원 사업에 대해 시의회가 시비를 전액 또는 일부 삭감하면서 경주시 내부에서는 시의회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공무원 A씨는 “정부와 경북도 등을 오가면서 힘들게 국·도비를 확보한 사업에 대해 시비를 삭감하면 앞으로 열심히 일할 공무원이 어디 있겠느냐”며 볼멘 목소리를 냈다.

#원칙 없는 예산 심사 도마에 올라
시민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상임위에서 삭감된 예산을 예결위에서 되살리는 등 원칙 없는 심사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8, 9일 각 상임위별로 열린 예산안 심사에서 문화행정위원회는 신라문학대상 공모전 예산 45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또 경제도시위원회는 바르게살기운동읍면동위원회와 경주시협의회 운영비 3000만원, 1700만원 등 총 4700만원을 전액 삭감해 예결특위에 올렸다. 이로 인해 이들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신라문학대상 공모전은 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가 사업 주체로, 이 단체 회원들은 ‘신라문학대상 관련 예산 삭감 불가’를 위한 집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특히 “26년째를 맞는 신라문학대상은 경주의 정체성이며 대한민국 문학의 본적”이라며 강하게 시의회에 항의했다. 또 바르게살기운동 경주시협의회 등도 예산삭감에 따른 불만을 표출했다.

상임위에서 예산 삭감 후 예결특위 심사과정에서 시의회에 강하게 항의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결국 시의원들은 이들 단체의 눈치를 보다 예결특위에서 예산을 되살렸다.

#경주에 더 이상 힐링은 없다
경주시의회는 이번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예산 과목에 힐링이 포함된 사업을 거의 삭감했다.
경주시보건소 건강증진과에서 올린 △힐링인증네트워크 운영 및 간판제작 500만원 △힐링인증네트워크업소 비콘 제작 2200만원 △힐링아카데미 힐링박람회 현수막 제작 300만원 △힐링시티조성 홍보물 자료집 제작 400만원 △힐링다큐제작 8000만원 △5-STEP힐링프로젝트 1억800만원 △대한민국 힐링마을 힐링명상 캠프 2200만원 △경주힐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프로젝트 2200만원 △힐링명상 4950만원 등 9개 사업은 상임위에서 전액 삭감됐다.

이 중 힐링다큐제작, 경주힐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프로젝트, 힐링명상은 예결특위에서 각각 6000만원, 1700만원, 3000만원으로 일부 삭감 수정의결했다.

이처럼 힐링과 관련된 예산이 대부분 전액 또는 일부 삭감되면서 향후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할 때 힐링이라는 단어는 없어질 것이라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일었다.

#문화관광과 예산 대폭 삭감
경주시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 1조520억원 가운데 178건, 115억원이 삭감돼 수정 의결됐다. 경주시의회는 지난 16일 제200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열고 2015년도 세입·세출 예산안을 확정했다.

2014년 예산안 심사에서 56건 42억5700만원, 2013년 44건, 66억4700만원을 삭감한 것에 비해 건수 및 금액이 2~3배가량 증가했다. 문화관광과에서 특히 많은 예산이 삭감됐다.

전체 삭감액의 40.5%인 53건, 46억6000여만원이 삭감됐다. 김동리 문학관 건립 8000만원 전액을 삭감한 것을 비롯해 골든시티 글로벌 문화교류 네트워크사업 1억원, 실크로드 도시청소년 화랑 예술캠프 9000만원 등을 삭감했다.

특히 경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친환경 녹색관광 탐방로 조성 7억원, 금장대 주변 야간 경관조명 1억원 등도 전액 삭감돼 사업 중단이 불가피하게 됐다.

관광객과 시민들에게 제공해 크게 사랑받던 문화 공연인 ‘찾아가는 봉황대 뮤직스퀘어’ 사업비 6300만원도 전액 삭감돼 막을 내릴 위기에 놓였다.

이외에도 경주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관광 32경 홍보물 선정과 제작 및 용역비 6000만원, 벚꽃명소 거리공연 4500만원, 시민과 함께하는 연등축제 1800만원 등의 관광사업비도 전액 삭감돼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시정새마을과 소관 화백포럼 운영 예산도 일부 칼질했다.

화백포럼 강연집 발간 1500만원, 화백포럼 동영상 제작 400만원은 전액 삭감되고, 화백포럼 운영 예산은 당초 6000만원에서 절반을 삭감한 3000만원으로 확정됐다. 이처럼 경주시의회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삭감한데 대해 한 시의원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했다”면서 “내년 4월 열리는 추경에서 재검토해 살릴 예산은 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주시가 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던 신규 사업에 대해 무차별적인 삭감으로 향후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한 것은 잘 한일이지만 경주가 향후 문화관광으로 도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관련한 신규 사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시의원들이 사업을 제대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등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X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