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 하나

향토사학자 김윤근 선생

전효숙 기자 / 2008년 0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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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을 가슴에 품고 사는 만년 청년과
야생화 닮은 아내, 그리고 부부의 길

나무 대문을 들어서자 온 마당을 가득 메운 채 와락 다가서는 야생화의 꽃마중에 가슴은 놀람 반 감탄 반이다.
털중나리가 제일 예쁘게 펴서 손님을 맞는다며 함박웃음 지으시는 박미자님. 70년대 말부터 가꾸기 시작한 야생화가 이제 지천으로 어우러져 나름의 향기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하루 내내 뜰을 거닐어도 꽃들과의 대화가 끊이지 않으신단다.

길을 말하는 이 많아도 길을 아는 이 적고 길을 아는 이 많아도 길을 행하는 이 적다
‘범은 정치 말고 갓만 지수라(범을 잡으려고 욕심만 부리지 말고 숲을 가꾸라)’ 욕심만 내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부모님이 회혼식에 적어주신 글귀를 늘 바라보며 사는 김윤근 선생은 열정적인 목소리와 소박한 웃음,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남다르지만 뒷모습이 아름다운 분이다. 이종룡 선생과 고청 윤경렬 선생을 마음속 스승으로 모시고 천년고도 경주를 너무나 사랑하며 경주의 품속에서 살아오신 분.
장기적으로 경주의 진면목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늘 고심하시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늘 애쓰고 계신다. 작년 퇴임 후 더 바빠진 선생은 현재 한림야간중고등학교장, 도서관어린이학교, 동국대학교 관광대학출강, 박물관학교, 향토어린이학교, 신라문화진흥원, 신라문화동인회 등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신다.
지금까지 70여명의 주례를 서 주었는데, 주례 전에 예비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촛불 켜고 향 피우고 물 떠놓고 맹세하게 했다고 한다. 혹 주례 선 부부의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들리면 불러서 가차 없는 꾸지람을 하며, “촛불은 녹아야, 타야 빛을 내는 법이다. 또 물은 건너뛰는 법 없이 낮은 곳을 채우고 나쁜 것은 정화시키며 작은 물이 모여 큰물 되어 바다로 간다.”는 말씀을 하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배기라며 물을 잘라 보이신단다.

남들이 보면 연꽃이고 가족들이 보면 가시연꽃
89년 전교조 해직교사시절의 힘듬이 지금도 앙금처럼 남아 있으시단다. 94년 복직되어 명예는 회복 되었지만 앞서서 노력한 자에게 아직도 바른 대접을 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스스로 삼키며 마음관리 하지만, 옆에서 말없이 받아준 아내와 반듯하게 자라준 자녀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하신다. 장남은 고고학을 공부해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바쁘게 살아오셨는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봉사하고 남들 안하는 일 혼자서 다 해 간첩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2남 1녀를 나아 키워도 아내가 배부른 모습이 기억에 거의 없다고 하며 “돌아보니 내가 참 가족에게 무심하였구나!”

이제 다시 부부만의 세월에 앉아 남편을 보며
“이제야 아셨어요?” 그리 아프지 않은 가시를 던지는 모습을 보며, 서로를 인정하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를 갖기에 참 많은 세월이 필요하였다 싶다.
남편의 큰 행적에 그림자처럼 지키고 서서 자신을 죽이고 힘듬을 견뎌내는 사이 곱디고운 새댁은 주름을 숨길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는 세월에 마주하고 앉아 인생의 힘든 길목도 이제는 여유롭게 돌아보고, 남들보다 10배나 더 열심히 살아온 남편을 이해하고 봉사의 기쁨을 알기 위해 스스로도 길을 찾고 계시다고 했다. 또 꽃에 유별나게 욕심 많아 20여년 가까이 한 이력으로 향기치료나 원예치료사의 길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으시다는 박미자님.
황혼이 깊어질수록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부부.
그 분들의 뒷모습에 그윽한 향기가 맴돈다.

전효숙 객원기자

↑↑ ▲야생화 핀 뜰에서 이야기 나누는 김윤근 선생 부부.
ⓒ 경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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