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옛 모습을 찾아서

2020년 605억원까지 투입 복원 정비

경주신문 기자 / 2008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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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도 동편에 일부 복원한 경주읍성.
ⓒ 경주신문


경주시는 신라 수도 경주에 고려시대에 축성되었던 경주읍성(慶州邑城)을 연차적으로 복원 정비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실시되는 이 사업은 총 605억원이 투입되며 토지 2만6천469㎡를 매입, 건물 150호 철거, 복원 기본계획 수립, 발굴조사, 동·북쪽 성채 1만100m 및 동·북문 복원, 성내유적정비, 경관 및 주변 환경을 정비를 하게된다.
이에 따라 시는 용역비 1억2천만원을 들여 한국전통문화학교에 의뢰해 오는 연말까지 △경주읍성 복원 이론적 검토와 정비방안 구상으로 복원계획 수립 △성벽 1천100m, 치성 12개소 △동문 및 북문 복원 △경주관아 및 집경전지 등 성내 유적정비를 위한 기본계획수립 용역에 들어갔다.
시는 또 올해 사업비 27억4천여만원을 들여 토지 4천503㎡를 매입하고 건물15호 철거 및 철거지역을 정비하며, 동부동 49-1번지 외 156필지 1만5천153㎡에 대한 문화재 지정구역을 확대지정을 신청했다.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업비 140억원을 투입해 토지 1만2천801㎡ 매입, 건물56호 철거, 성체 75m 및 치성 1개소를 복원했다.
특히 월성이 신라 천년의 경주를 상징한다면 읍성은 신라 이후 천년의 경주를 상징한다는 의미가 있다.
향후 시는 사업비 437억원을 들여 토지 1만9천141㎡ 매입, 건물철거 79호, 발굴조사 및 실시설계, 성채 1천25m 및 치성복원, 동·북문 복원, 성내 유적정비, 경관 및 주변 환경을 정비해 경주읍성을 복원할 방침이다.
한편 사적 제96호로 지정된 경주읍성은 고려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로서 고려시대에는 동경유수관(東京留守館)이, 조선시대에는 경주부아(慶州府衙)가 읍성내에 있었다.
이 읍성은 고려 현종 3년(1012)에 축성되었으며, 고려 우왕 4년(1378), 조선 태종~세조 때에 개축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타고 허물어진 것을 인조 10년(1632)에 중수하고 성문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이 읍성은 영조 22년(1746)에 다시 개축되었는데 당시 둘레가 약 2천300m로 성문으로는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신문 등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 일부 남은 성채는 이때의 모습이다.
이 읍성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없어졌으며 일부 남아있던 동편 약 75m의 옛 성벽이 허물어져 2004년 복원할 당시 경주읍성의 치(성곽방어를 위해 돌출시킨 부분)보수를 위해 읍성을 해체하자 지반석을 비롯한 성곽 축조 당시의 유구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이후 북쪽의 도로변 일부를 발굴한 결과 치의 기초가 그대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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