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헌시>

아내의 편지

경주신문 기자 / 2007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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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헌시>

아내의 편지

박연자

경주시문인협회

찔레꽃 향기 스치고 간
유월이 오면
가슴에 묻어 둔 당신의 이름
불러 봅니다.

모습 보여주지 않아도
당신은
눈부신 햇살로 다가 오기도 하고
산그늘 바람으로 내 뺨을 간지르기도 하지요.

때론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당신은
삶이 힘겨워 지쳐있는 내 어깨를
쓸어주기도 했어요.

타래붓꽃, 으름풀 흐드러진
청보리 언덕을
고이적삼에 검정고무신으로
걸어오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
옥이네 담장 넝쿨장미가
유난히도 붉었습니다.
그날 밤 소쩍새는 왜 그리도
구슬펐던지요.

번져가는 초록의 무덤위에
하얀 찔레꽃만이
유서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당신의 모습인 양하여
하염없이 목 놓았지요.

내 부모 내 가족이 사는 땅.
내 한목숨 바쳐 지키겠노라고
뜨거운 가슴 하나로
검붉은 폭풍 속으로 달려갔던 당신

온 몸을 던진 충정은
용광로보다 뜨거웠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가신
당신이었기에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넋은
우리 자식들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
세상의 빛이 되어 가고 있답니다.

빗물로 허기를 채우면서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엄동설한
삭풍 같은
모진 세상에서
쓰러지지만 말자고 버티었던 건
당신이 떠나면서 남기신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살아 올테니 기다리라’

뜬눈으로 날밤을 새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소식 없이 기다리던 세월에
속가슴은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쳐진 눈꺼플처럼 속절없는 세월이
지나고 난 지금
이제는 압니다.
당신은 약속을 지키었다는 것을.

돌아오지 못할 곳에 있어도
나를 지켜주었으니까요
늠름하게 자라고 있는
당신의 아이들에게 살아
숨쉬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자리가 얼마나 크다는 걸
눈물 한방울의 의미를
되새길 때마다 알게 되었지요

한 날 한 시도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답니다.

눈을 뜨면 슬프도록 맑고
푸른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포화에 이지러졌던 산하.

상흔을 말끔히 치유하고 우뚝 선
당신과 나의 조국이 있지요.
내 사랑하는 자식들의 땅이 있어요.

힘찬 박동소리 들리지 않나요?

당신이 닦아 놓은 길이라 여기며
한발자국, 한발자국을 힘을 주
어 걷습니다.

이 발걸음이 멈추는 날까지
당신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입니다.

머리 맞대고 살아가는
정겨운 우리네 땅을 당신은
지켜주었어요
주춧돌이 된 당신을 기억하며
영원히 기다릴 겁니다.

모두에서 생명이 되고
스러지지 않을 사랑이 되어 준 당신

당신은
영원히 지지 않을 빛으로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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